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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장 : 선셋 쉬머 공주의 재판과 시련


방청석 여러 군대에서 소리 죽인 수군거림이 울려 퍼졌다. 선셋의 턱은 무겁게 쩍 벌어졌다. 


변신충이라는 누명을 쓰는 것은 마생끝장 시나리오 중 최고로 꼽히는 것 중 하나였다! 만약 무고함을 증명했다고 할지라도 다른 포니들과의 감정의 골이 생기는 등 후유증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선셋은 들은 적이 있었다.


누가 이야기를 해 주진 않았지만, 이퀘스트리아의 정치판에서는 간혹 정적을 변신충으로 몰아 실각시켰다는 걸 선셋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더러운 수작을 선셋에게 부릴 정도로 멍청한 포니가 있다는 사실에 선셋의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 새끼를 찾아다가 죗값을 받아내고 말겠어! 다들 보는 앞에서 산채로 불태워버리고 말테다!


그리고 대체 왜! 왜! 어머니가 재판에 참여하신 거지? 앞뒤가 맞지 않잖아!


모든 게 다 잘못됐어! 하지만..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 선셋은 오히려 점점 이성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니, 다들 선셋을 비난하는 상황을 두어 번 경험해봤기에 제 정신을 차릴 여유가 생겼던 건지도 모르겠다. 선셋은 벌렸던 입을 닫고 인상을 쓰며 생각에 잠겼다.


'침착하자. 선셋.'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선셋은 방청석을 살폈다.


'말이 안 돼는 상황일수록 주변을 살피자. 침착하게 숙고한 뒤 무슨 일인지 알아내자.'


누군가가 선셋 공주에게 변신충이라는 누명을 씌웠다. 그럴 만도 했다. 선셋은 캔틀롯 정치판에 친구가 별로 없었고, 변신충 누명은 포니들에게 있어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갓 승천한 눈엣가시 같은 공주의 정치적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누군가가 충분히 수작을 부릴 만 했다.


하지만 왜 어머니가 진지하게 그 말을 믿는 눈치일까? 선셋도 폭소를 터뜨리고 싶을 정도로 바보 같은 생각이었는데 말이다. 실마리가 필요했다. 어머니가 직접 이 재판에 참가한 이유를 알아낼 실마리가.


선셋은 요직에 앉은 포니들의 얼굴을 살피며 3년 동안 쌓인 기억의 먼지를 털고 그 이름과 직책들을 하나하나 기억해내기 시작했다. 귀족들과 평의회 의원들, 그중 군마 가문 출신이 포니들이 적어도 세 필은 섞여 있었다. 모인 포니들 중 모여서 작당을 할 정도로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포니는 최소한 선셋이 아는 선에서는 아무도 없었다. 


선셋은 어머니의 표정을 살폈다. 평소처럼 속을 알기 어려웠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 평소에 셀레스티아는 겉만 봐서는 도통 꿍꿍이를 알 수 없는 포니였지만, 잘못을 저지른 누군가와 마주할 때만 감정이 격해지는 면모가 있었다. 과거 셀레스티아와 보내왔던 시간이 많았던지라 선셋은 잘 알 수 있었다. 셀레스티아가 대역 죄인을 보는 시선으로 선셋을 내려 보거나, 혹은 얼굴 가득 냉소를 띄고 선셋을 흘겨보고 있지 않았으므로 선셋은 어머니의 속을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었다.



 평소에 셀레스티아는 겉만 봐서는 도통 꿍꿍이를 알 수 없는 포니였지만, 잘못을 저지른 누군가와 마주할 때만 감정이 격해지는 면모가 있었다. 과거 셀레스티아와 보내왔던 시간이 많았던지라 선셋은 잘 알 수 있었다. 셀레스티아가 대역 죄인을 보는 시선으로 선셋을 내려 보거나, 혹은 얼굴 가득 냉소를 띄고 선셋을 흘겨보고 있지 않았으므로 선셋은 어머니의 속을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었다.


선셋의 처우에도 이상한 점이 있었다. 물론 수많은 경비병들에게 포위되었지만, 선셋의 뿔엔 그 흔한 마력 억제 처리 하나 되지 않았다. 보통 위험한 포니는 뿔이나 날개를 구속시키는 거 아닌가? 하지만 선셋은 두 곳 다 묶이지 않았다. 발굽에 족쇄도 채워지지 않았다.


'근거도 없이 날 의심하는 멍청이들에, 폭군처럼 구시지만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어머니에, 제대로 구속되지도 않은 채 끌려온 나 자신이라..'


선셋은 상황을 요약해보았다. 아직 이 광대놀음의 진의를 파악할 순 없었지만, 선셋은 일단 장단을 맞춰주고 나서 다음 수를 계획하기로 했다.


일단 나를 고발한 포니부터 알아내볼까. 또 다른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테고... 적어도 나중에 복수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누가 날 보고 변신충이라고 한 거죠?"


선셋의 목소리는 힘이 당초 선셋이 의도한 것보다 약간 덜 실려 있었다. 주변 포니들의 반응을 살피느라 목소리에 감정을 더 실을 여력이 없었으니까.


"고발한 포니가 누구인지 알아야겠어요. 그럴 권리는 당연히 있겠죠?"


이번엔 그나마 괜찮게 됐지만, 여전히 무언가가 허전했다. 다음번엔 좀 더 감정을 실어서 발굽으로 땅을 한번 쿵 굴러볼까. 소규모의 지진이라도 내서 방 안의 모든 포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이게 선셋이 어렴풋이 예측한 대로 어머니가 내 주신 일종의 시험이라면.. 성질을 죽이고 얌전하게 일을 처리해야 모범답안이 될 것이다. '아오.. 어머니가 이렇게 심리전을 거는 거 진짜 싫은데..'


왕자에 앉은 어머니의 표정에 약간의 변화가 일었다. 찡그리는 건지, 웃는 건지, 콕 집어 말하기 힘들었다.


"네게 날개가 돋아난 이후로.. 여러 포니들로부터 네가 이상 행동을 한다는 제보가 있었다."


공주의 말을 듣고 나서 선셋의 표정은 대번에 일그러졌다.


"지난 주, 네 방을 청소하는 더스트 버니가 고하길 네가 평소답지 않게 방 정리나 청소를 도와준다고 했다. 그리고 여러 경비병들이 내게 보고하는 내용으론 네가 정원에서 평소에 즐겨 하던 고단계 주문 연습을 마다하고 기초적인 주문만 연습한다고 하더구나. 심지어 나마저도 여러.. 해괴한 장면을 목격한 바 있다. 특히나 내 조카, 사랑의 공주와 친분이 갑자기 깊어진 것은 어떻게 설명할 테냐? 말해 보거라."


고작 이런 이유 때문에......? 선셋의 자제력도 한계에 봉착했다. 결국-


"헤...헤헤..! 푸하! 푸하하하하하하!"


선셋은 목젖을 드러내고 폭소를 터뜨렸다. 자리에 모인 모든 포니들은 공포와 걱정으로 한 차례 술렁거렸다.


"왜.. 왜 웃는 거지?!" 귀족 암말 한 필이 소리 질렀다.


"함정이다! 다들 저 변신충의 함정에 빠졌어!" 선셋 왼편의 살이 뒤룩뒤룩 찐 수말이 고함을 질렀다.


"경비병은 뭐 하는 거야? 당장 막지 않고!" 군중 제일 뒤편에 있는 듯 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 수말 한 필의 아우성이었다.


"쿵!"


누군가가 묵직하게 발굽을 구르는 소리에 궁궐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선셋도 제 정신이 돌아왔다. 페가수스 몇 필이 구경꾼의 부추김에 휘말려 얼떨결에 선셋을 공격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선셋이 막 방어를 하려는 찰나, 하드 라인이 엄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이 오합지졸들. 당장 진정해! 지금부터 내 명령을 어기고 단 한필이라도 꼼짝하는 경비병이 있다면, 다음 해까지 화장실 청소를 하는 징계를 내리겠다!"


"진짜..이건..이건 대체 뭐-" 선셋은 말을 더듬었다. 날개가 꼼지락거렸다. 아까의 위험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는 신호였다.


또 한 가지 가닥이 잡혔다. 이건 셀레스티아가 계획한 시험도 아니고 장난도 아니었다.


이 궁궐에 모인 모든 포니들이 선셋이 진짜 변신충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들 진짜 장난하자는 거야 뭐야?!"


선셋은 참았던 분노를 터뜨리며 고래고래 외쳤다.


"아니, 포니가 좋은 일좀 했기로서니 변신충이라고 의심을 해?! 다들 미쳤나!? 정신들이 나갔어!?"


몇 초간의 정적. 그 이후 방청객석에선 폭발하듯 반론이 쏟아져 나왔다.


"거짓말! 진짜 선셋 쉬머가 그런 일을 할 리 없다!"


"네가 변신충이란 거 다 알고 있어!"


"말장난 치지 마라 이 괴물아!"


선셋은 주변마들의 비난을 대부분 무시했다. 캔틀롯 고등학교에서 선셋에게 쏟아진 비난에 비하면 이건 약과였다. 선셋을 미워할 이유도 충분치 않았으니 오히려 당당한건 선셋이었고 말이다.


인간 세상에서는 다들 선셋을 비난하는 와중에서도 꼭 인정받고픈 친구들과 주변 인물들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선? 다들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알 게 뭐람.


물론 단 한 필은 예외였다.


선셋은 어머니를 올려보았다.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무얼 말이냐?" 셀레스티아는 한 치의 동요도 없이 대답했다.


어머니가 너무 차갑게 말을 끝내자 선셋의 위장은 걱정으로 약간 쓰려왔지만, 물러날 수는 없었다.


"절 진짜 변신충이라고 생각하나요?"


선셋의 목소리에는 본의와는 다르게 불안감이 묻어나왔다.


"그 모든 걸 다 보셔놓고요? 어머니가 이 자리를 소집한 거 맞죠? 그것 때문에 제가 여기 와 있는 거고요! 세상에, 설마 저랑 캐이댄스랑 1주일간 계속 붙어계셔 놓고도 그 말도 안 돼는 거짓말을 믿어요?! 당장 무죄나 선고하시죠! 바보 같은 짓을 당장 끝내자고요!"


"내 주관적인 판단은 네가 변신충이 아님을 입증하는 일과는 전혀 무관하다."


셀레스티아의 날개가 약간 꼼지락거렸다. 공주는 선셋에게서 시선을 약간 돌리면서 말을 이었다.


"이제 2분 남았다. 그렇게 무고함을 입증하고 싶거든 변신충이 능히 할 수 없는 일을 해보이거라."


셀레스티아의 몸짓에 담겨있는 의미.. 좋아. 이 정도면 됐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선셋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높으신 분들이라..' 어쩌면 진짜 저들이 한 마음으로 모여 작당을 했을 수도 있다, 혹은 선셋이 다들 이 자리에 모인 이유를 확실히 밝혀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증거만 보여주면 다들 입을 다물 테니까.


'마력 억제구따윈 없으니까..'


선셋은 자신의 뿔을 쳐다보았다. 아까 파악이 끝난 또 하나의 이상한 점이었다. 물론 셀레스티아는 그 자체로 강력한 포니었고, 여러 포니들을 대동하고 있었다지만, 선셋은 알았다. 어머니는 절대로 잡아 놓은 변신충이 마음대로 활개를 치게 놔둘 정도로 부주의한 포니가 아니라는 걸.


'잠깐.. 포니에게 쓰는 마력 억제구가 변신충에게도 통하던가.'


선셋은 고개를 저어 의심을 털어버렸다. 지금은 문제 해결에 집중할 때다.


그리고 시간제한이 있었지.. 셀레스티아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확실해졌다. 이건 분명 셀레스티아가 선셋에게 낸 또 하나의 시험이었다. 물론 평소에 내는 시험의 양식과는 판이하게 달랐지만, 이건 분명히 시험이었다. 이유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선셋의 직감은 이게 시험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아까 페가수스 경비병들이 선셋을 진심으로 공격하려고 한 건 여전히 수수께끼지만 말이다.


'근데 대체 무엇 때문에 보는 시험이냐고!'


선셋은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진짜로 변신충이 아닌 걸 입증해야 되는 건가? 아니면 더 깊은 목적이 있는 건가? 아니면 보여주길 거절하고 저들이 얼마나 멍청하고 바보 같은지 논리적으로 말해줘야 하는 거야?


"시간 됐다." 셀레스티아가 말했다.


어머니의 말에 선셋의 분노는 폭발했다.


"아 쫌 기다려 봐요!"


선셋은 두 뒷다리로만 땅을 딛고 일어선 뒤 양 앞발굽을 힘차게 굴렀다.


지진이 일어났다. 방 안의 거의 모든 포니들은 삽시간에 혼비백산에 빠졌다. 하드 라인도 그 자리에 넘어져 놀란 소리를 냈고 페가수스 경비병들은 공중에서 선셋의 주변을 에워쌌다.


"우릴 공격한다!" 라는 외침이 어디선가 들려왔다. 군마가 아닌 포니들은 모두 겁을 집어먹고 비명을 지르며 출구 쪽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유니콘 경비대들은 허겁지겁 전열을 추슬렀지만 곧 빠져나가려는 포니들의 발굽에 깔려 차이는 신세가 되었다. 페가수스 경비대들 중 심기가 약한 몇몇 장교는 본능에 따라 날아가 도망치려고까지 했다.


"조용!"


셀레스티아의 일갈노성이 대기를 쩌렁쩌렁 울렸다. 흰 알리콘의 뿔에서 눈부신 황금색 마력이 뿜어져 나와 방 안의 모든 포니를 감쌌고 선셋은 이를 악물었다. 선셋을 제외한 방 안의 모든 포니들이 마력이 휘감겨 일시 정지했다. 공중을 날고 있는 페가수스들도 멀뚱히 그대로 떠 있게 되었다.


이퀘스트리아의 공주는 다른 알리콘을 내려 보았다.


"재치 있는 변호였다 딸아. 살짝 과한 감은 있지만서도."


다른 포니들을 찡그린 표정으로 쭉 둘러보며 셀레스티아는 입을 열었다.


"내가 그대들을 이 자리에 부른 이유는 국가를 다스리는데 도움을 주십사하고 불러 모은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 서게 됐으면 중요한 자리에 있는 포니답게 진지하고 진중하게 처신을 할 줄 알아야지요!"


셀레스티아는 엄격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아까처럼 메아리가 질 정도로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방 안의 모든 포니들은 셀레스티아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허나 그 대신, 그대들은 고작 한 필의 암말이 성을 냈는데도 다들 공포에 질려 길길이 줄행랑을 쳤습니다. 이게 될 말입니까?"


공주는 한숨을 한 번 쉬었다.


"선셋. 내 사과하마. 좀 더 좋게 끝낼 수도 있었건만.."


공주는 슬픈 어조로 말하며 선셋을 한 번 본 뒤,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를 계속했다.


"자 이제 다들 진정하고 이리로 모여 주십시오. 그대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셀레스티아의 마력에 휘감긴 방 안의 모든 포니들이 강제로 선셋 쪽으로 끌려왔다. 물론 대부분 그 사실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며, 개중에는 여전히 겁에 질려 소리를 지르는 포니들도 있었다.


"히이이이이익!"


"죽는다! 모두 다 죽을 거야!"


"셀레스티아 공주도 변신충이었어! 이퀘스트리아는 망했다!"


"분명 내 조용하라 일렀을 텐데!"


다시 한 번, 귀를 찢는 듯한 셀레스티아의 일갈에 모든 포니들은 입을 다물었다. 공주는 그들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왕좌는 어느새 셀레스티아의 분노로 검게 그을려 있었다.


"당초에 그대들이 증거를 들고 와서 내게 선셋이 변신충이라고 고발했을 때, 나는 그걸 허용했다. 왜냐하면  이퀘스트리아가 개국된 이례로 존재해온 오래된 적을 겁이 난다고 외면하는 것 보단 만전을 기하는 게 나았기 때문이다!"


셀레스티아는 잔뜩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대들이 이 상황에 대처하는 꼴을 보니 본 공주는 과연 그게 잘 한 일인지 의구심마저 드는구나. 이 모든 진행 과정이 변신충 문제보다도 더 질이 나빠 보였다면 설명이 되겠는가?"


"그대들은 선셋 쉬머, 이퀘스트리아의 새 공주를 변신충이라고 고발했다. 무슨 이유에서였지? 전보다 좋은 포니가 된 것 때문에? 설마 진짜 그런 아둔한 이유에서였나? 제 이기심과 의혹을 해결하기 위해 이유는 무어든 좋았던 게 아니라?"  


"만약 그대들이 진심으로 남이 더 나은 포니가 되었다고 해서 변신충이라는 의심을 시작했던 거라면. 아아.. 이퀘스트리아의 미래는 암울하구나. 겁이 나는 게 있으면 자세히 알아볼 생각도 않고 폭도로 돌변하는 자들에게 내 무얼 믿고 맡긴단 말인가? 그자들의 눈엔 자기와 생각을 달리 하는 포니는 분명 포니로 변신한 변신충으로만 보일 게 분명하거늘!"


"하..하지만, 실제로 우릴 공격했지 않습니까!" 군중에서 한 암말이 큰 소리로 항의했다.


선셋은 인상을 찌푸리며 아래를 보았다. 선셋이 아까 발을 구른 자리엔 큼지막한 금이 거미줄처럼 쩍 나있었다.


누군가가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려 선셋은 뒤를 돌아봤다. 하드 라인이었다.


"어험! 브라이들 의원님. 선셋 양은 증거를 보여 달라는 그대들의 요구에 답을 한 것뿐입니다만.."


모든 포니는 순간 조용해졌다. 셀레스티아는 마력으로 모든 포니의 고개를 돌려 선셋이 딛고 있는 바닥을 보게 했다.


"지적해주어서 고맙습니다 경비대장."


셀레스티아는 약간 누그러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자. 요직에 앉아있는 그대들이라면.. 어험! 변신충의 생태에 대해 잘 알고들 있겠지요. 변신충들은 고유의 마법으로 유니콘이나 페가수스는 잘 모방할 수 있지만, 어스 포니의 태생적인 힘만큼은 모방할 수 없습니다. 어스 포니를 제외한 다른 두 종족으로의 변신 빈도가 높은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지요. 그런데 여기 이 부서진 바닥을 보십시오. 선셋 쉬머는 평범한 어스 포니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이게 바로 선셋 쉬머가 무고하단 증거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누명은 벗었지만, 선셋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지르지도 않았던 잘못을 해명하느라 기분만 더 더러웠을 뿐이었다. 셀레스티아가 증거라고 지목한 것은 셀레스티아가 선셋을 격양시킨 행동의 결과물이었고 그것 때문에 선셋의 마음은 뭐랄까 더.. 무거웠다. 재판 중에 셀레스티아가 선셋에게 했던 말은 새로 얻은 알리콘의 능력으로도 방어할 수 없는 상처를 선셋의 가슴에 내고 말았다.


"잘 됐네요... 이제 변신충 아니라는 게 밝혀졌으니까 가도 되죠?"


선셋은 날이 돋친 목소리로 질문했다. 셀레스티아는 선셋을 잠깐 유심히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거라. 바보 같은 소동에 말려들어 고생 많았다. 내 방에 가서 기다리고 있거라. 이 일에 관해 설명할 게 많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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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롱 위더스의 경솔한 고발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오간 후, 모인 포니들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돌려보내다 보니 어느덧 거의 한 시간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리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하나 앞으로 선셋이 돌봐야할 자들이기도 했으므로, 셀레스티아는 그들을 적절하게 조율해둘 필요가 있었다.


하긴, 변신충이 연관된 이상 이건 예측된 반응이긴 했었다. 현대의 발전된 이퀘스트리아도 변신충 이야기만 나왔다 하면 다들 횃불과 죽창을 들고 우루루루 몰려가는 게 현실이었으니까.. 까딱 크리살리스가 풀려나왔다는 소문이라도 일반 포니들 사이에 돈다면 오늘 본 이 소동은 소동 축에도 못 끼게 될 것이다.


다행히 변신충이 이퀘스트리아를 그렇게 이른 시일 내에 침공할 것 같진 않았다. 크리살리스의 전언을 액면가 그대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크리살리스가 셀레스티아 공주에게 중점적으로 복수를 할 계획이라면 섣불리 변신충을 노출시켜 원대한 계획에 차질을 빚을 그런 경솔한 수는 두지 않을 터였다. 피해를 감수하면서 무턱대고 전쟁을 벌일 리도 없고 말이다. 최소한 그 점에 있어서는 크리살리스는 신용할 만 했다. 


그래도 군사 기관과 정보기관의 몇몇 포니에게 이 사실을 경고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퀘스트리아에 중대 위협이 될 무리를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아예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상황을 정리한 공주는 한숨을 한번 쉰 뒤, 옥좌에서 내려와 출구까지 길게 깔린 붉은 양탄자 위를 걸었다. 경호원들과 하드 라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공주는 약간 인상을 구기며 하드 라인을 쳐다보았다.


"경비대장. 잠시 나랑 산책좀 할까요? 나머지는 해산해도 좋습니다."


페가수스 경비병들은 경례를 하고 오와 열을 맞춰 해산했고, 그 모습을 다 보고 난 뒤 셀레스티아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대가 최근 내 딸이 이상 징후를 보이는 것에 대해 목격자들에게서 취조한 정보를 스트롱 위더스 의원에게 넘겨주었다고 들었습니다만.."


하드 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공주님."


"그럼 이런 소동이 일어날 줄 예상하셨습니까?"


공주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선셋과 하드 라인 사이에 잡음이 있다는 건 셀레스티아도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만약 그것 때문에 선셋에게 앙심을 품고 이 일을 자행한 거라면..


경비대장은 몸을 움찔거렸다.


"아-아닙니다 공주님. 그저 위더스 의원의 개마적인 조사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넘겼지요. 나 원, 캐이댄스 공주님 때도 꼬치꼬치 캐묻는 게 많았던 포니라... 저.. 마지막에 결국 선셋 쉬머가 체통 없이 구는 걸 막지 못해 공주님의 심기가 많이 불편하시겠군요.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공주님의 심기가 불편.. 하! 맞는 말은 하나 있군' 공주는 불쾌함을 감추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저 포니는 공석에서는 언뜻 공과 사를 잘 구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셀레스티아와 둘이서만 이야기를 할 때에는 어김없이 사심을 드러내는 문제점이 있었다. 아예 말을 않는 것이 좋을 때도 말이다.


선셋 쉬머에게 권력을 승계하기 위해 해야 할 수많은 일 중 한 가지가 늘었다. 언젠가 셀레스티아의 자리에 앉을 선셋을 위해 하드 라인을 적당한 핑계를 대 좌천시키고 다른 포니를 경비대장으로 선출하는 것.


"캐이댄스 그 아이를 재판장에 데리고 오지 말라고 내가 직접 명령을 내린 거 기억하십니까?"


캐이댄스의 증언만 있었다면 청중들을 좀 더 효율적으로 설득할 수 있겠지만, 선셋은 여러 포니들의 비난 공세에도 감정을 폭발시키는 일 없이 의연하게 버티는 법을 배워야 했었다.


셀레스티아는 그로 인해 일어난 일을 후회 중이었긴 했지만.. 선셋은 오랜 세월 동안 이퀘스트리아를 이끌어 나가야만 했다. 셀레스티아는 그런 선셋을 어엿한 한 필의 공주로 가르칠 시간이 촉박했고, 이퀘스트리아에 다가올 진정한 위험에 대비할 시간도 촉박했다. 이런 비교적 사소한 정치 문제쯤이야 셀레스티아가 약간만 수를 쓰면 금방 해결됐지만, 자칫 선셋이 직접 경험해야 할 소중한 기회를 앗아갈 수도 있었다.


모퉁이 길을 지나갈 때 쯤, 경비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공주님."


"그랬었죠.. 흠. 오늘 스트롱 위더스 의원과 직접 대화한 적은 있습니까?"


경비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공주님. 재판이 시작되기 직전 짧게 한번 만났습니다. 선셋 쉬머의 정체를 꼭 드러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셀레스티아는 미심쩍게 한 쪽 눈썹을 올렸다.


"그렇다는 건, 그자는 선셋이 변신충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단 이야깁니까?"


놀라운 사실이었다. 아무리 변신충 경계를 더 강화하자는 주장을 늘 하고 다니는 의원이라지만, 이렇게 앞뒤를 안 가리고 맹목적인 면모가 있었을 줄은 처음 알았던 것이다.


하드 라인은 고개를 몇 번 젓더니 말했다.


"검증된 핏줄도 아니고 운 좋게 투표로 선출된 자들이 오죽하겠습니까? 결국 그들이 가진 생각이라고 해 봤자 에버프리숲에 부는 바람처럼 변덕적이고 부질없는 것을.. 오늘 일어난 일들을 보니 저들이 선견지명이 없다는 사실 하난 제대로 알 수 있더군요. 근시안적인 멍청이들 같으니라고..."


귀족 입장에서 평의회 의원들을 한껏 낮추어 보는 그 오만함에 셀레스티아 공주는 또 한 번 인상을 구겼다.


"그대의 지론은 아주 잘 알겠습니다. 하드 라인."


개마실 앞에 다다른 뒤 셀레스티아는 뒤로 돌아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궁금한 것이 뭔 줄 아십니까? 그 자가 과연 진심으로 내 딸이 변신충이라고 생각해서 고발한 건지, 아니면 그 외에 다른 꿍꿍이가 있어 내 딸을 쫒아내고 싶어서 그랬는지 그 진의를 알고 싶다는 겁니다."


이 질문을 하자 하드 라인은 공주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오른쪽으로 눈동자를 돌렸다. 무언가 켕기는 구석이 있다는 육체의 신호였다.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공주님. 위더스 의원이 선셋 쉬머에 대해 꽤 감정을 실어서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 뭐랄까..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하는 것 같달까요? 미리 준비를 해 온 것 같았습니다."


"흠. 알겠습니다. 이만 들어가세요."


하드 라인이 저만치 걸어갈 때쯤 셀레스티아는 다시 그를 호출했다.


"아참! 추가로 해 둘 말이 있습니다. 아직 내 딸이 즉위식을 아직 안 올린 몸이라곤 하나, 오늘 그대의 행실을 보아하니 상하 관계를 확고하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앞으로 선셋을 부를 땐 '선셋 쉬머 공주님'이라고 칭하며 존칭을 써 주십시오. 둘 사이의 극히 개마적인 이유로 왕실의 예의와 법도가 헤이해지는 것, 보기에 별로 좋지 않습니다."


경비대장은 똥을 씹은 표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공주님."


하드 라인은 복도 저편으로 걸어갔다. 이제 선셋만 남았나.. 셀레스티아는 선셋과 이야기하는 게 겁이 났다. 그래도 한 시간 동안 여유를 뒀으니 이제 머리에 오른 열이 좀 식었겠지.. 혹은 조용히 부글부글 끓고 있던가.


"하긴.. 그렇다고 방치하고 있을 수야 없으니.."


공주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자신의 개마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셀레스티아의 개마 처소는 언제나 국무를 마치고 난 힘든 하루의 활력소가 되는 곳이었다. 개마시간은 이제 4시간가량 남았다.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살아왔어도 안락하게 꾸며진 흰색 벽과 거기에 걸린 시대를 초월한 명작 그림들은 절대로 질리는 법이 없이 셀레스티아의 기분을 다시금 맑게 환기시켜주었다.




셀레스티아의 개마 처소는 언제나 국무를 마치고 난 힘든 하루의 활력소가 되는 곳이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살아왔어도 안락하게 꾸며진 흰색 벽과 거기에 걸린 시대를 초월한 명작 그림들은 절대로 질리는 법이 없이 셀레스티아의 기분을 다시금 맑게 환기시켜주었다.


벽난로의 불길이 춤을 췄다. 연기를 마법적으로 처리해 굴뚝이 필요 없도록 설계된 벽난로였다. 벽난로 앞엔 흰색 소파와 여러 가지 책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있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호박색 알리콘이 그 책중 아무거나 한 권을 빼 읽으며 배를 깔고 거기에 앉아있었다.


셀레스티아가 문을 닫자, 선셋은 읽던 책에서 시선을 때며 얼굴을 찌푸리고 셀레스티아 공주를 노려보았다.  이퀘스트리아의 고대사에 대한 논문을 읽고 있었나 보군. 기억이 정확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드-디어 오셨네요.'


선셋의 말엔 아직도 가시가 돋혀있엇다. 가늘게 눈을 뜨고 선셋은 물었다.


"제가 여기 와 있는지 이제야 기억이 나셨나보죠?"


걱정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선셋은 아직도 화가 덜 풀려있는 것 같았다. 이번엔 셀레스티아도 선셋을 나무랄 수 없었지만.


"네가 남겨놓고 간 포니들의 뒤처리를 하느라 바빴단다." 인자한 어투로 공주는 대답했다.


"뭐에요!? 그래서 날더러 사과라도 하라는-"


"그럴 필요 없다."


딸이 꼬치꼬치 따지기 전에 셀레스티아는 말을 끊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한테 사과를 바라지도 말았으면 좋겠구나."


선셋의 표정은 한층 더 일그러졌다. 셀레스티아는 한숨을 푹 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대신... 납득할 만한 설명은 해 줄 수 있단다." 셀레스티아는 고개를 약간 갸웃하며 말했다. "얌전히 듣고 있겠다고 약속을 해 주거라."


몇 초간의 정적 후, 선셋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하아..... 결국엔 이것도 일종의 시험이었다는 거죠? 망할.."


"그렇게 생각했니?" 공주는 한 쪽 눈매를 올리며 물었다.


"흥! 그것 말고 다른 가능성이 또 뭐가 있어요? 어머니는 내가 변신충이 아닌걸 뻔히 아시면서 왕좌에 아무 표정도 안 짓고 그대로 앉아있고, 또 저를 변호해줄 캐이댄스도 자기 방으로 쫒아 보냈죠. 그리고 경비병들에게 일부로 내 성질을 돋워서 제가 의심을 못 하게 하라고 명령을 내리셨겠죠. 대체 왜 그랬어요? 억울하게 군중 앞으로 끌려오면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려고 그러신 거에요?"


"하드 라인에게 네 성질을 돋우라고 명령을 내린 적은 없었는데.." 셀레스티아는 중얼거렸다.


"어이구, 그러시겠죠! 그 장난감 병사들이 공주님 명령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독단으로 판단을 내릴 정도로 등신에 바보 천치였던가 보네요. 그럼!"


선셋은 내뱉듯 셀레스티아의 말을 받아쳤다.


"이럴 거면 넌 더 이상 내 학생이 아니라는 말은 도대체 왜 하신거에요? 네?"


셀레스티아가 거짓으로 꾸며낸 담담한 표정은 이 질문에 깨지고 말았다. 공주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선셋을 바라보고 말했다.


"선셋... 들어보거라."


태양의 알리콘은 깊은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내뱉었다. 이런 말을 할 때는 감정이 실려선 안 돼는 법이다.


"좋다. 궁궐 내에서 내가 벌렸던 일은 당초 세 가지의 목적이 있었다. 첫째. 너에게 내리는 시험. 둘째. 장차 이퀘스트리아의 지도자가 될 자에 대한 시험. 셋째. 네 미래의 정적을 제압하기 위해 파놓은 함정."


여전히 선셋은 화가 나 있는 것 같았지만, 셀레스티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는 있는 것 같았다. 


"함정이라니... 그게 뭐죠?"


"네가 알리콘이 된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선셋. 권력을 갖춘 포니들은 새 공주의 등장을 경계 할 수밖에 없지."


공주는 주변에 엿듣는 포니는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선셋이 약간 어질러놓은 책을 다시 제 자리에 정리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 말인즉슨, 네가 새로 얻은 날개를 파닥이고 있을 때, 다른 포니들은 과연 너의 존재가 이득이 될지 안 될지 일찌감치 너를 재보고 있다는 뜻이다. 개중 널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어떤 포니들은 네가 정치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쏟기 전에 널 제거하려고 할 수도 있지."


소파를 앞발굽으로 내리치며 선셋은 외쳤다. "그럼 막아주셨어야죠! 캐이댄스가 처음 나타나서 다른 포니들이 질문을 던져댔을 때는 캐이댄스 대신 앞장서서 캐이댄스를 훼방 놓는 포니가 없도록 답변을 다 해주셨으면서! 걔는 해 주면서 왜 나만 그래요? 왜?!"


선셋이 이렇게 따지자 공주는 오히려 기뻤다. 딸이 속으로 묵은 감정을 쌓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화를 내서 푸는 편이 더 나았으니까.


"캐이댄스의 특성 때문에 그랬다고 해야 할 것 같구나. 다들 변방에서 올라온 분홍 공주가 정치에 대단히 관심이 있을 거라고는 딱히 생각하지 않았기에 관심들을 기울이지 않았단다. 때문에 아둔한 정치가들의 눈을 가리기 위해서 나의 약간의 언변 정도만 있으면 되었지. 하지만 선셋 쉬머는? 자력으로 승천하고 나서부터 정치꾼들의 시기와 질시가 끊이지 않았지. 나의 수제자라는 위치도 위치거니와, 유력한 정치가들과도 딱히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으니까."


잠깐 생각하던 선셋 쉬머의 입가엔 어느새 냉소가 떠올랐다.


"혹시 왜 진작 그 포니들과 친구가 되지 않았느냐고 잔소리 하실 생각이라면-"


셀레스티아는 코웃음을 치면서 대꾸했다.


"허! 그 멍청이들 말이니? 사실, 그 치들과 우정을 쌓지 않았다고 해서 딱히 뭐라 할 생각은 없단다."


오히려 그랬다면 선셋의 탈선은 더 심해졌을 것이다. 과거의 선셋이 마력도 모자라 정치권력에까지 맛을 들였다면...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그들을 대놓고 냉대하면 더더욱 그들이 너를 증오할 이유를 주는 거나 마찬가지란다. 보거라. 그리하여 아까와 같은 사단이 발생하지 않았니?"


물론 그들 중에선 단순히 군중 심리에 휩싸였을 뿐인 선량한 포니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걸 구분해서 중용하는 건 지금 셀레스티아의 일이었지 선셋의 일은 아니었다. 이건 장차 정치판을 이끌어나갈 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일들 중 하나였다.


"그래도.. 막아주실수는 있었잖아요...." 


선셋은 더 이상 말이 없었고, 셀레스티아는 차분히 기다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순 있지. 하지만 미래를 생각해볼 땐 이게 더 너한테 바람직한 일이였단다. 무슨 일이 날 때마다 어머니의 다리 뒤에 숨는 포니에게서 다른 포니들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니? 물론 너에게 고생만 시키는 것 같아 나도 안타깝다만, 조화를 국가 이념으로 내세우는 나라치고는 이퀘스트리아의 정치판은 그렇게 조화롭고 깨끗한 곳은 아니란다. 그런 곳에서 살아남고 또 성공적으로 통치하려면 너는 지금 배워야할게 아주 많지."


선셋은 콧방귀를 뀌었다.


"아직 현역으로 쌩쌩하게 뛰고 계시는 분이 걱정도 팔자시네요! 네?"


큰 소리로 외치며 선셋은 소파 위에서 훌쩍 내려왔다.


"말이 돼는 소리를 하셔야죠! 언젠가 저한테 이퀘스트리아의 모든 걸 맡길 것처럼 이야기를 하시는데, 제가 보기엔 어머니는 저보다 더 만수무강 하실 것 같거든요? 아니, 어차피 이퀘스트리아의 최고통수권자 자리를 쭉 연임하실 거면서 굳이 나한테 몸으로 부딫혀가며 정치를 배워보라는 이유가 뭐죠?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거에요?"


자칫 잘못 대답했다간 큰 일이 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셀레스티아는 입술을 핥았다. 한편으론 나이트메어 문에 대한 사실을 선셋에게 털어놓고도 싶었지만... 캐이댄스가 무지하게 부담스러워 했던 전례를 생각해보면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인 것 같았다. 심지어 캐이댄스는 셀레스티아의 후계자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너는 이제 나와 동등한 공주의 몸이다. 내 하수마가 아니라. 언젠간 너도 자립해 나가 네가 직접 제정한 법령을 세상에 포고하는 날이 올 게다."


셀레스티아는 목소리에 평정을 유지하는데 거의 힘을 다 쓰고 있었다.


"하지만 네가 생각한데로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닐 것 같구나. 그러니 그 때 까지만 이라도 내가 네 장애물들을 치워줄 생각이란다. 가령 허술한 계략으로 너를 이퀘스트리아에서 추방시키려고 한 그 포니들처럼 말이지."


선셋의 찡그린 표정이 풀렸다. 대신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선셋은 물었다.


"추방이라구요? 잠깐만요! 변신충 혐의가 확정된 그보다 더한 형벌을 받을 텐데..."


셀레스티아는 한 쪽 눈매를 세우며 말했다.


"정녕 스트롱 위더스와 그 모리배들이 네가 변신충이 아니라는 증거를 보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했니? 그들에게 있어서 네가 변신충인가 아닌가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단다. 전에 그들이 내게 그러더구나. 네가 다른 포니들을 해치기 전에 5년간 추방한 뒤 진위여부를 살피는 게 어떠냐고.. 네가 만약 얌전히 그들의 제안을 들어줘도, 내 장담컨대 저들은 네가 무고함을 입증하고 돌아와도 또 똑같은 수작을 부릴 게 분명하다. 캔틀롯 정상에서 떨어트려도 시원치 않을 작자들 같으니..!"


셀레스티아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해서, 스트롱 위더스가 그 지지자들을 대동하고 두 번째로 내 앞에 나타났을 땐, 내 짐짓 믿는 척을 하며 그 자에게 '선셋 쉬머 공주의 재판'이라는 밧줄을 하나 내려주기로 했다. 잡고 올라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기 목을 옭아맬 밧줄 말이지. 거기에 더해서... 변신충들이 다시 나타났다고 공표했을 때 포니들의 대략적인 반응이 어떠한지도 살필 생각이었다."


"잠깐만요, 무슨-"


"무슨 이유로 그랬느냐고? 위더스 의원의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예전에 변신충들을 가둬놓은 화산으로 가 보았다. 벌써 몇 년 전에 탈출한지 오래더구나."


선셋은 뭐라 말을 하려다가 말문이 덥석 막히고 말았다. 너무 놀란 바람에 자신이 화를 내고 있었다는 것도 까먹었다.


"뭐라구요?! 그 등신들이 실제로 맞는 구석이 있었다는 이야기에요?"


"그렇단다."


셀레스티아는 한숨을 한 번 쉬고 구슬프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 일어난 이 소동을 보고 결정을 내렸다. 역시 몇몇 포니를 제외한 모든 포니들에게는 알리지 않는 편이 좋겠구나. 변신충 한 기가 나타났는데도 이 정도라면 크리살리스가 탈출했다는 소문이 퍼지는 날에는 재앙이 따로 없겠지... 부탁 하나만 하겠다. 이 사실을 가급적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아다오."


선셋은 잠시 멍한 눈으로 셀레스티아를 쳐다보다가, 곧 한 쪽 눈매를 매섭게 올렸다.


"그러니까 지금.. 내 입을 강제로 막으시려구요?"


"방금 분명 내가 넌 나와 동등한 존재라고 했지 않았니." 셀레스티아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 결정이 옳지 않다고 생각되거든, 지체 말고 나한테 그 이유를 말해주려무나. 물론 넌 날개를 얻기 전에도 그리 하던 아이였지만 말이다. 네가 정녕 내 결정이 최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네가 옳다고 생각한 바를 행하려무나. 너와 캐이댄스한테는 마땅히 그럴 권리가 있으니까."


"아니.. 그냥 말하는 게 더 좋지 않나요? 난리가 일어나는 건 일단 둘째 치고 이 나라에 사는 모든 포니들이 다 절 쫒아내려고 한 포니들처럼 바보들은 아니잖아요! 게다가 변신충들이 활개를 친다면.. 아무래도 모두에게 알리는 게 피해자를 더 줄이는 방법 아닐까요?"


셀레스티아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지적이다. 하지만 그러지 말아도 될 이유가 두 가지가 있단다. 첫째. 스트롱 위더스가 널 고발해준 덕에, 예정된 것보다 더 빨리 크리살리스가 탈출했다는 걸 알아낼 수 있었다. 심지어 크리살리스 본마조차도 내가 눈치를 챘다는 걸 모르고 있겠지."


줄곧 포니들은 변신충들은 같은 생각을 공유한다고 생각하고들 있지만, 셀레스티아는 알고 있었다. 그걸 증명해줄 증거는 아직 없다는 것을..


"두 번째는 크리살리스가 정복이 아닌, 나를 향한 개마적인 복수를 계획하고 있다는 거다. 그 점만 알고 있으면 여왕의 계획을 예측할 수도 있고, 그 계획에 역공을 가할 수도 있을게다. 그리고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퀘스트리아는 그렇게 위험한 상황이 아니란다. 변신을 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변신충들이 대규모로 움직일 경우, 오히려 더 발견하기 쉽지. 결과적으로 최근 몇 년간 정체를 알 수 없는 포니들이 집단으로 이주했다는 소식은 없었다. 또한 지금 크리살리스는 이퀘스트리아의 국경을 넘은 다른 곳에 가 있단다. 힘을 모으고 나한테 복수를 할 완벽한 기회만을 노리면서 말이다."


그 버러지는 셀레스티아 공주만큼이나 질기게도 오래 살아왔다. 5년, 10년, 혹은 15년의 준비기간 정도야 변신충 여왕에겐 짧은 시간일 것이다.


그래도.. 변신충 군단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장차 딸이 다스릴 이퀘스트리아에 위험의 소지가 될 만한 요소를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변신충들을 추격해야만 했다.


공주는 변신충들이 숨을 만한 가능성이 있는 곳을 몇 군대 떠올려보았다.


"놈들의 특성 상 다른 국가에 잠입해 있을 것 같구나.. 변신충들이 그리폰, 얼룩말을 흉내 낼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변신충들이 포니 외에 다른 종족을 습격했다는 기록은 아직 없지만, 기록이 없다고 해서 가능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다른 종족 국가 정상들을 만나서 변신충들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회담을 해 보는 게 좋은 생각일지도..


"윽...!" 선셋은 신음을 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요약하자면, 사악한 벌레 새끼들이랑, 날 쫒아내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는 높으신 등신들이랑... 거기에 더해 다음 주 월요일 학교 갈 것까지 걱정해야 된다는 이야기네요.."


선셋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셀레스티아를 올려보았다.


공주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전 수제자를 내려 보았다.


"선셋. 그 누가 알리콘의 삶이 평탄하다 그랬겠니. 마생은 가혹하단다. 때때론 여러 가지 문제들이 차례를 기다리지도 않고 한꺼번에 몰아닥칠 때도 있지. 다섯 가지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와중에 열두 가지 문제가 새로이 생기는 일은 우리네 삶에선 생각보다 흔하단다. 하지만 그러기에 더더욱 네 곁엔 언제나 널 도와주고 지지해주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있다는 사실을, 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다오."


선셋은 마음이 복잡한 듯 탄성을 한번 내며 말했다.


"끙... 말씀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캐이댄스도 변신충에 대한 일을 알고 있나요?"


"아직은 모르겠지." 셀레스티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따가 직접 알려 주자꾸나."


잠시 이마를 문지르고 난 뒤, 선셋은 네 다리로 일어서서 천천히 셀레스티아의 방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곧 선셋은 다시 셀레스티아를 돌아보며 질문 하나를 던졌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볼게요... 어머니도 그 때 다른 포니들처럼.. 제가 진짜로 변신충이라고 생각하셨나요?"


민감한 질문이었다. 셀레스티아는 순간 평정을 잃어버릴 뻔 했다. 공주는 딸의 눈에 공포가 어려 있는 걸 본 뒤 불타는 장작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공포는 강력한 감정이란다. 딸아. 공포에 질린 포니는 거짓을 덜컥 믿어버리기도 하지. 이성을 마비시키고, 그 포니로 하여금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게 바로 공포란 감정이란다."


셀레스티아는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선셋을 바라보았다.


"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도 순간 공포에 휩싸였다... 찰나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공포가 내 지각력을 뒤덮도록 방치했지. 비록 비어있는 크리살리스의 감옥을 보고 난 후 단 몇 초 뿐이었긴 했지만, 결국 난 나에 대한 너의 믿음을 잠시나마 져버리고 말았다 선셋. 진심으로 미안하다."


선셋의 콧등에 주름이 잡혔다. 분노, 고통을 포함한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을 공주는 딸의 눈에서 읽을 수 있었다.


선셋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축 바닥으로 늘어뜨렸다.


"여전히 절 다루는 방법을 잘 아시네요. 그죠?.... 전 괜찮아요 어머니... 다들 간혹 바보 같은 일 한 번씩 할 때가 있잖아요... 아까 왕궁에서 있었던 일은 그냥.. 넘어가기로 해요. 다만 절 또 정략용 미끼로 쓰신다면.. 그 땐 지금과 같은 반응은 기대 안 하시는 게 좋으실 거에요."


셀레스티아는 마른 입술을 핥고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그럴 일은 결단코 없단다."


초조함을 가리기 위해 공주는 미소를 지었다.


"자. 어서 캐이댄스에게 가보자꾸나. 그 아이는 너처럼 쉽게 용서를 해 줄 것 같진 않다만... 너무 심각해질 것 같으면 옆에서 캐이댄스를 좀 말려주겠니?"


"캐이댄스가요? 그 핑크색에다가 보고 있기만 해도 당뇨에 걸릴 정도로 달달한 애가요? 에이.. 설마요."


당신은 형편없는 어머니라며 호되게 질책하던 캐이댄스의 모습이 공주의 뇌리에 떠올랐다. 


고대의 알리콘은 몸을 한번 부르르 떨며 대답했다.


"그건 네가 뭘 몰라서 그런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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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세상과는 다르게 셀레스티아와 그 주변 포니들은 캐이댄스가 바꿔치기를 당하기 전에 크리살리스가 탈출한 걸 미리 알게 되었습니다.


이게 또 무슨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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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마이 리틀 포니 국내 방영으로 인해 인터넷 검색으로 이 곳에 찾아오시는 12세 미만 미성년자 여러분들과 부모님들에게 안내말씀 드립니다. 이 곳에 게시된 번역된 만화 및 소설류들은 아직 자아 형성이 덜 된 미성년자들이 보기엔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이 허다하므로, 미성년자 여러분은 열람을 자제해 주시길 바라며, 해당 부모님들은 철저히 관리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근데 이렇게 써 봤자 모바일에서는 이거 못 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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