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장 : 어여쁜 포니 공주님은 빛나는 것을 좋아해



캐이댄스가 얼굴을 붉히며 멀어져가는 걸 선셋은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똑같이 멍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샤이닝 아머를 돌아보며 선셋은 질문했다.

"쟤 대체 왜 저래? 희한하네.."

엄청 뭘 창피해하면서도 걱정하는 눈치던데.. 선셋이 뭘 아주 잘못한 것 같진 않지만.. 영 신경 쓰이기는 매한가지였다. 캐이댄스가 저러는 걸 선셋은 보기 싫었고 말이다.

이제야 생애 첫 순간이동의 충격에서 헤어 나온 샤이닝 아머는 선셋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글쎄, 화장실이 급해서 그런 건가.."

'얘가 진짜..' 말도 안 되는 추론에 선셋은 불만스럽게 두 눈을 옆으로 굴렸다. 하여간, 암말 한번 안 사귀어본 티를 내요 티를 내.. 키스하는 것도 어설프고 말이야. 연습 많이 시켜야겠네..

그래도 샤이닝 아머의 입술이 선셋의 볼에 닿을 때의 그 기분은.. 정말 좋았다.

자기가 직접 샤이닝을 침대 위로 밀어붙일 필요 없이 샤이닝이 자발적으로 해준 키스는 그런 기분이었다. 처음 캐이댄스가 샤이닝 아머에게 자격미달이니 어쩌느니 딴죽을 걸 때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결과만 따지고 보면 오히려 캐이댄스에게 감사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샤이닝이 이렇게 노력해준 만큼 보답을 해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동적인 성격인 얘 치곤 이정도면 엄청 애를 쓴 거였다. 공공장소에서 공주에게 키스하는 배짱 좋은 일을 저질렀다는 것도 잊지 말자. 이런 위업(?)을 이루었는데 고작 볼에 쪽 하고 키스해주는 걸로 퉁치기는 싫었다.

적어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을 서로 착 밀착시켜가면서 입속에 혀까지 들어가는 진하디 진한 키스와 함께 엉덩이도 마음껏 더듬게 해 줘야지... 선셋은 타들어가는 욕망을 서로의 포옹으로 발산하며 자신의 체취를 샤이닝에게 영원히 남기고만 싶었다.

흐뭇한 상상이 선셋의 뇌리를 가득 체웠다. 샤이닝 아머와 선셋의 거리는 점점 아찔해질 정도로 가까워지고 있었고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선셋의 정욕은 점점.. 해소되기만을 갈망하고 있었다.

만약 지금 샤이닝 아머가 관계를 요구한다면, 선셋은 거절할 용의가 전혀 없었다.

"샤이니. 1교시 쨀래?"

선셋은 샤이닝의 귀에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지금 나랑 같이 가면 보건시간 성교육 만점 받게 해줄 수 있는데.."

뜬금없는 선셋의 요구 탓인지, 아니면 귀가 유독 민감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샤이닝의 몸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저..서-선셋..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그러나 선셋을 막을 만큼 멍청한 자 그 누가 있으랴. 누가 보든 말든.. 아니, 사실은 누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던 차였다. 학교의 학생들 앞에서 대놓고 샤이닝 아머가 선셋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당당히 각인시켜주고만 싶었다. 이 학교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유명하고, 가장 욕망이 넘치는 암말의 옆자리는 바로 학교의 멋쟁이들도, 운동선수들도 아닌, 귀여운 덕후: 샤이닝 아머의 차지였노라고.

하지만 샤이닝 아머는 명백히 불편해하고 있었으므로, 선셋은 샤이닝 아머의 심정도 약간 헤아려주기로 했다. 1교시까지는 시간이 약간 남았으니, 순간이동으로 다른 데로 가 볼까..

선셋은 짓궂게 웃으며 거의 일주일전, 샤이닝 아머와 만난 바로 그 주간에 학교 주변 여기저기에 심어놨던 비전 표식중 한 곳을 연상하며 뿔에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청록색 섬광과 함께 둘의 모습은 어느덧 학교 내에서 사라졌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선셋은 녹음이 우거진 곳의 잔디를 밟고 있었다. 나무의 그늘에 가려 주변에 건물 하나 안 보이는 한적한 곳이었다.

바로 이 곳, 캔틀롯 시 공원은 인간세계의 그것의 규모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했다. 하긴, 이 캔틀롯은 산 위의 도시인만큼 부지를 따로 내기도 어려웠을 테지만 말이다. 그래도 공원은 이른 아침 햇살을 받은 덕분인지 상당히 수려한 경관을 자랑중이어서 딱히 불평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날개 아래 바짝 껴안은 샤이닝 아머를 플어준 뒤 선셋은 미소를 지으며 샤이닝 아머를 돌아보았다. 아주 게슴츠레한 미소였다.

"자. 네가 불편해할까봐 공원으로 왔어. 아주 깊숙한 곳으로.."

이젠 공원에서 뭘 하면 좋을지에 대한 생각만이 선셋의 뇌 속을 가득 채웠다. 옥상의 딱딱한 바닥이나 빈 교실에서 하는 것보단 잔디 위에서 뒹구는 게 더 나은 선택일는지도 모른다.

선생님의 책상 위에서 몰래 하지 못한다는 게 영 아쉬웠지만 말이다. 위험부담이 높았지만, 그래도 선셋이 인간 세상에서 했던 것 중 가장 스릴 넘치고 아찔한 성관계 경험중 하나였다. 물론 인간세계에서 했던 그것은 무언가가 하나 빠진 기분이었다만, 그 무언가를 이제 샤이닝 아머가 채워 주게 되었으니까 뭐..

작은 태양의 공주는 유니콘에게 서서히 접근했다. 

"너와 나. 둘 뿐이야."

그럼 할 일은 딱 하나밖에 없지.

"엿볼 포니도 없고... 좋지?"

"서-선셋! 왜...왜 그런..."

샤이닝 아머가 황급히 부끄러워하는 목소리가 퍽 귀엽다... 곧 좋아 죽는 비명을 지르게 되겠지만...!

대답 대신 선셋은 아랫입술을 핥았다. 주어진 시간은 15분, 만약 샤이닝이 키스만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면 선셋은 키스보다 더.. 본격적인 일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선셋의 몸도 본격적인 해소가 필요했고 말이다. 아예 송두리째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셋 쉬머는 원하는 게 있으면 취하는 포니였다.

상대가 되는 포니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간에.... 잠깐...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자마자, 쌓아올려왔던 흥분이 거짓말같이 사라지고 죄책감만이 남았다. 지금 숫기 없는 얘를 잡아다가 의견도 제대로 묻지 않고 선셋 멋대로 휘두르고 있는 꼴이 아닌가? 어찌 보면 인간 세상에서 했던 짓보다 질이 나빴다. 전에는 없었던 물리력, 마력으로 억지를 부린 거나 다름없었으므로, 선셋의 심정은 더욱 더 참담해져만 갔다.

한숨을 쉬며, 선셋은 미안함으로 고개를 숙였다.

"미안.. 난 그냥..."

그냥 뭐? 널 이 자리에서 강제로 따먹어서 내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설명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그리고 애초에 왜 이런 식으로 샤이닝에게 '보상'을 해주겠다고 생각했던 걸까? 지만 좋자고 꾸며낸 허율 좋은 핑계가 아닌가?

"진짜 미안해 샤이니.. 학교로 돌아가자.. 미안.. 나도 모르게 예전.."

선셋은 고개를 좌우로 세게 저으며 말을 이었다.

"시-신경 쓰지 마. 가자. 빨리."

'진짜 이래서는 안 돼.' 선셋은 속으로 언성을 높여 자기 자신을 호되게 질책했다. 

예전 선셋도 이 정도로 막 나가진 않았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기만, 유혹, 조작, 위협 등의 수단을 가리지 않고 썼긴 해도, 언제나 넘어가선 안 될 일정 선을 그어두고 있었다. 때때로 물리적 수단도 쓰긴 했지만, 그건 언제나 강도나 빈집털이 같은 놈들에게서 자기보호수단으로 썼을 뿐, 인간 학생들이나 포니들을 협박하기 위해 대놓고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샤이닝 아머가 진지한 표정으로 선셋에게 물었다. "왜 그래? 선셋?"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거짓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런 자신에게 엄청난 거부감이 들었다. 샤이닝 아머에게 보답을 해준답시고, 순간의 성욕에 휩싸여 평생 용서 못 받을 짓을 저지르려고 했었으니까.

'아냐.. 그 정도는 아닐 거야...'

선셋은 속으로 자기변호를 시작했다. 전에도 이거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샤이닝 아머는 별 말 없었고, 그리고 스스로 너무 심하다 생각했을 때 그때처럼 알아서 제동을 걸었으니까. 예전과 달리 선셋은 권력욕에 심취해 모든 걸 차지하려고 눈이 벌게진 그런 괴물이 아니었다.

그렇게 선셋은 우두커니 서 있다가, 마침내 샤이닝 아머를 쳐다보았다. 아무 일 아니라고 그냥 은근슬쩍 넘어가고 싶었지만, 선셋의 마음 한편에서 크게 자라난 양심이 선셋의 이런 태도를 호되게 질타 중이었다. 결국 별 일 없이 끝났고, 또 선셋이 스스로 자제심을 발휘했다고 하더라도, 이걸 그냥 옆으로 치워두고 없는 일 취급하는 건 싫었다.

그래서.. 선셋은 긴 한숨을 내쉰 뒤, 힘이 풀린 눈으로 샤이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샤이니.. 이야기좀 할래?"

"저.. 근데.. 시간이.. 몇 분밖에.."

샤이닝은 쭈뼛쭈뼛 확답을 하지 않았고, 그 까닭에 선셋의 기분은 한층 더 가라앉았다.

"하-하-하지만.. 개근하는 것보단 네가 더 중요하니까.."

샤이닝은 선셋에게로 다가가 자기 몸을 착 붙였고, 선셋은 깜짝 놀라 샤이닝을 쳐다보았다.

"...빨리 끝낼 수 있지? 1교시 수업 종까지 약 10분남은 것 같으니, 빨리 안 들어가면 지각-"

더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선셋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무슨 새나라의 어린이신가, 어떻게 저리 멍청해 보일정도로 순진할 수 있는지...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아까 선셋이 느꼈던 자책감까지 섞어서 감정 섞인 앞발굽 한 방을 자기 머리에 내려찍어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리고만 싶었다.

물론..!

진짜 그런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선셋은 입으로 큰 숨을 들이쉰 뒤 내뱉었다.

일단은..

지금 닥친 문제부터 집중하는 게 좋겠다.

호르몬이 널뛰기하는 알리콘의 문제가 아닌, 오롯이 샤이닝의 문제 말이다. 일단 학생이라는 신분 상 출석 자체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테니 그 점은 이해해야했다. 그리고 샤이닝은 선셋이 빨리 이야기를 끝내주길 원했지만, 지금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다 하려면 시간을 멈추지 않고서야...

선셋은 잠깐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런 방법이 있었군!

"빨리 끝내줄 수 있어."

이렇게 말하고 나서 선셋은 잠깐 필요한 주문의 유효 범위를 대충 측량한 후, 뿔에 마력을 모아 샤이닝 아머와 자신의 주변에 마력의 막을 쳤다. 시전하는 중간에 운 없는 동물이 막 사이에 행여나 끼지 않도록 약간 신경을 쓰면서 말이다.

주문 시전이 끝나고, 선셋은 주문이 제대로 작용했는지 마력장 바깥을 살폈다. 제대로 된 것 같아 선셋은 벙찐 얼굴로 멍하게 서 있는 샤이닝 아머를 돌아보았다.

샤이닝 아머는 얼떨떨한 어조로 겨우겨우 말을 꺼냈다. "바...방금 뭐한 거..."

과학을 논할 시간이로군. 선셋의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음욕 같은 어두운 감정에 비해, 과학은 이성적이고 또 이론 자체만 두고 보면 순수했으니까.

"네가 지각할까봐 걱정하는 것 같기에, 한정 지역 시간 지체 마력장을 우리 주변에 걸어두고, 그 효력을 1000배로 증폭시켰지."

이렇게 대답하고 선셋은 이해를 도와줄 예시를 두런두런 찾기 시작했다. 그냥 주변에 널린 나뭇가지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 보다 더 확 와 닿는 예시를 찾아야만 했다.

"저.. 알아먹게 좀 이야기해줄래?" 샤이닝 아머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어조로 되물었다.

논문으로 내자면 100장 이상은 우습게 넘어가는 복잡한 내용을 요약하자니 갑갑했지만, 주문의 작동 원리를 세세히 설명하느니 차라리 결과만 딱 때서 설명하는 게 좋겠다고 선셋은 생각했다.

"시간을 멈췄어."

별 것 아니라는 어조로 말하며, 선셋은 마력장 밖에 보이는 공중에서 멈춘 새를 앞발굽으로 가리켰다.

선셋이 가리킨 쪽에 있는 멈춘 시간 속의 울새를 바라보며, 샤이닝 아머는 경악에 찬 표정으로 선셋을 쳐다보았다. 겁에 질린 표정인지, 아니면 그냥 대단해서 그러는 건지 선셋은 알 수 없었다.

둘 중 뭐가 되었든 선셋은 불편했다.

샤이닝 아머가 마치 범접 못할 걸 쳐다보는 것처럼 선셋을 쳐다본다는 이 사실이 말이다.

"이-이-이게 가능해?"

평소대로라면 기쁘게 대답해줄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지금은 별로 기쁘지만은 않았다.

"뭐... 최근까지만 해도 불가능하긴 했지."

전학 수속을 기다리는 동안 하릴 없이 새로이 얻은 마력을 이래저래 굴려보다가 알아낸 사실을 이야기하며, 선셋은 잔디밭 위에 앉았다.

"근데.. 어.. 절대 이 막 바깥으로는 나가지 마. 위험하거든.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어."

마력장의 경계면을 약간 더 확장시키며 선셋은 말을 이었다. 

"힉! 알았어!"

샤이닝은 겁이 난 듯 선셋의 곁에 바짝 붙었다. 이 얼어붙은 시간의 속에서, 둘의 체온과 호흡만이 고립된 듯 흐르고 있었다.

"그나저나.. 뭘 이야기하고 싶다는 건데?"

샤이닝 아머의 질문에 선셋은 하마터면 주문의 제어를 약간 흐트러뜨릴 뻔 했다. 대체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좋을지 이걸..

이야기해야할 게 너무나 많았다. 캐이댄스의 일부터, 선셋도 이퀘스트리아에 계속 있고 싶지만 떠나야만 한다는 거랑 트와일라잇의 일, 그리고.. 샤이닝 아머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게 머저리 같은 이유까지.. 꾹 눌러 담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옛 성격이 샤이닝 아머랑 같이 있을 때 튀어나온 바람에, 선셋은 '내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나.' 하는 회의감까지 들 정도였다.

그래서 선셋은 특히 샤이닝 아머를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에 대해서는 꼭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다.

샤이닝 아머도 꼭 알아야 했다.

"네가 널 여기 왜 데리고 왔을 것 같아?"

영 종을 잡을 수 없는 듯, 샤이닝 아머는 대답했다. "어... 이야기 하려고?"

처음에 선셋은 내 볼에 뽀뽀한 용기가 가상해서 상 삼아 한번 대주려고 했노라라고 있는 그대로 말하려고 했다. 제대로 키스하는 법도 가르쳐주려고 했었다. 볼에 쪽 하고 끝내는 건 선셋 입장에서는 키스도 뭐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것도 중요한 거 싹 뺀 자기변명에 가까웠다. 정작 샤이닝 아머를 구석에 몰아넣고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길 대놓고 유도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던 건 선셋 본마였다. 아무리 그동안 머뭇거리기만 하는 샤이닝에게 애간장이 다 녹았어도 이건 할 짓이 아니었다.

그래서, 선셋은 샤이닝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응당 그래야만 했었으므로.. 

다 끝나고 샤이닝이 선셋을 혐오하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샤이니는 선셋의 곁을 떠나 캐이댄스에게 선셋에 대해 말할 테고, 그렇게 캐이댄스와의 우정도 끝장나는 거고, 결국 셀레스티아는 선셋을 '다시' 한 번 쫒아낼테고, 그러면...

아니.. 단계적으로 몰락하는 미래에 대한 미친 예상은 일단 접어두자.. 선셋은 심호흡을 하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여기서 같이 섹스하자고 온 거야."

샤이닝은 화들짝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선셋은 헛웃음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날 싫어하기 시작했군..

"키스로 시작해서, 서로 몸 좀 더듬거리다가.. 분위기 타면 제대로 한 판 해볼 생각이었지 원래는..."

강제로 범하는 대신 유혹이라는 방법을 썼다고 해도, 결국 선셋이 원하는 방향으로 강제하는 거나 다름없으므로 순전히 선셋의 잘못이었다.

샤이닝 아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얼굴은 이미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있었다.

"뭐-뭣?!"

저 두 눈동자에 가득 담긴 경악도 곧 멸시와 분노로 바뀌겠지.. 하긴, 눈앞에 선 진면목을 알게 되었는데 무얼 더 바라겠냐만은..

작은 태양의 공주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판이 엎어진 걸 상관도 않고 여전히 육욕을 요구하고 있는 자신의 육체가 한심했던 까닭이었다. 

"더 최악인 게 뭔 줄 알아? 여전히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는 거야.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심지어 까딱 잘못했다간 널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당장 너랑 이 자리에서 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다고 지금!"

선셋은 공중에 멈춰 있는 날씨 관리 페가수스를 올려보며 말했다. "망할.. 나 진짜 한심하네.."

곧, 선셋의 어께에 가벼운 무게감이 느껴졌다. 측은한 표정으로 샤이닝 아머가 선셋의 어께에 앞발굽을 올린 거였다. 선셋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샤이닝을 쳐다보았고, 샤이닝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선셋.. 왜 이런 이야기를 해? 한심하다니 누가? 너 같이 멋진 포니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데."

저 바보, 난 너를 구해주려고 이러는 건데 왜 자꾸 달라붙고 난리야! 아 정말 짜증나!

"너, 나에 대하서 잘 모르는구나?"

선셋은 네 다리로 일어나 표정을 있는 대로 찡그렸다.

"고작 일주일 만난 것 가지고 아는 체 하지 마! 너, 전에 나 만나봤어? 아주 괴물새끼가 따로 없었거든?! 남이 괴롭든 말든 내가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다 가져갔고, 다른 포니들을 순전히 재밌다는 이유로 부려먹고 쓰레기 내버리듯 버렸다고! 근데 제 버릇 못 버리고 또 이러고 있으니.. 내가.. 아 씨발!"

아침 이슬에 잔디가 상당히 축축히 젖은 것도 아랑곳 않고 선셋은 자리에 푹 주저앉았다. 하필 꼬리를 깔고 주저앉는 바람에 황급하게 꼬리를 뺐고 대단히 쪽이 팔린 나머지 온 몸을 잔뜩 움츠렸다.

시간이 멈춘 세계는 바람조차 불지 않았다. 나직하게 깔린 적막함을 뚫고 샤이닝이 머뭇거리며 운을 떼었다.

"저.. 요점을 벗어난 것 같은데.."

문득 샤이닝 아머가 던진 말에, 선셋은 샤이닝 아머를 돌아보았다. 사려 깊은 눈빛으로 샤이닝 아머는 선셋을 살피고 있었고, 그 바람에 선셋의 가슴은 또 한 번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계속 날 신경 써 주는구나.. 난 그럴 자격도 없는 포닌데.. 

"대체 왜 그래? 왜 자꾸 그런 말을 내게 해주는 거야?"

혹시나 이러면 그만둘까 싶어 선셋은 샤이닝 아머를 노려보았지만, 샤이닝 아머는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샤이닝의 눈빛을 못 이기고 고개를 숙인 건 선셋이었다.

선셋은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 중이었다. 왜 샤이닝에게 자신의 본질에 관한 진실을 털어놓았을까? 샤이닝 아머랑 헤어지려고? 만약 선셋이 그걸 진심으로 원했으면 그냥 깔끔히 해어지고 말았지 이런 궁상은 떨지 않았을 것이다. 샤이닝을 속여온 죄책감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데 쓸데없이 육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선셋의 이성의 최후통첩인 것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미-미-미안."

선셋은 사과를 하며 뿔에 마력을 집중했다. 둘을 둘러싼 차원이 이지러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말 못해.. 당장 학교로 돌려보내줄게."

겁 주는 게 안 통한다면, 마법을 사용하면 잠깐 동안은 샤이닝 아머가 깊게 알려고 드는 걸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래도 점심심간에 샤이닝은 물론이고 캐이댄스까지 가세해 또 이거 비슷한 소동이 반복되겠지. 하긴, 고민 있는 친구의 고민을 해결해주는게 친구가 할 일 아니던가..

하지만... 선셋은.. 샤이닝 아머가 필요치 않았...

'아냐!' 눈을 깜빡여 눈가에 어린 눈물을 숨기며 선셋은 속으로 외쳤다.

'샤이닝 아머가 필요해. 진심으로. 친구도 되고 싶고, 애마도 되고 싶어. 걔의 모든 걸 가지고 싶은데 왜!'

그렇다. 언젠가는 샤이닝 아머랑 헤이질 수밖에 없었지만, 샤이닝 아머가 과연 선셋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에 관해서 자기 자신을 계속 속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샤이닝 생각으로 선셋이 정신이 흐트러져서 주문의 시전이 평소보다 더 늦어진 덕분에, 샤이닝 아머는 시전이 완료되기 전 아슬아슬하게 선셋의 뿔을 앞발로 감쌀 수 있었다. 아주 강하게 끌어안은 건 아니었지만, 주문을 취소시킬 정도로는 충분했다. 선셋의 시야는 순식간에 샤이닝 아머의 흰색 몸통으로 가려졌다.

"이러지 마."

굳건한 어조로, 샤이닝 아머는 선셋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네 곁에 있어야 될 것 같으니까. 자. 자. 괜찮아. 괜찮아. 화낼 필요 없어. 괜찮아."

저 차분한 목소리.. 선셋의 등골이 왠지 모르게 오싹했다. 샤이닝은 뿔에 올렸던 발굽으로 선셋의 갈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전에도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있는 듯한 발놀림이었다. 샤이닝 아머의 체취가 선셋의 감각을 휘감았다. 하지만 음습한 욕구는 더 이상 없었다. 저번에, 샤이닝 아머의 방에서 단 둘이 있었던 때처럼 샤이닝 아머의 품에 평생 안겨있고만 싶었다.

물론 둘의 관계가 어떻게 끝날지는 선셋 본마가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비단 이것뿐만이 아닌 어머니가 주는 사랑, 가장 친한 친구, 마법, 선셋의 삶의 목적까지.. 한 달 조금 못 되는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걸 다 놓고 떠나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으니까. 트와일라잇이 원래대로 우정의 공주로 자라나려면, 선셋 쉬머는 원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했으니까..

막막한 절망감이 선셋의 심리를 압도했다. 다시금 눈앞이 흐려졌다. 코를 훌쩍이며 고통에 가득 찬 탄식을 내뱉은 뒤, 선셋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샤이닝 아머는 어께를 내밀었고, 선셋은 그 어께에 기대 목을 놓아 울었다.

모든 게 다 불공평했다. 여러 고생을 해 가며 다시 찾게 된 행복은 순식간에 사라지게 될 헛되고 뒤틀린 환상에 불과했다. 어머니도 잃게 될 것이고 친구들과 샤이닝도 잃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걸 희생하는 대가로 선셋이 얻는 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싸구려 임대 아파트? 세계의 존망보다 게임의 승패를 더 중요시하던 멍청한 유인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세계? 허울뿐인 학교 공주의 직위? 싫어.. 가고 싶지 않아.. 선셋은 한사코 마음속으로 거부했다.

샤이닝은 계속 선셋을 껴안고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모든 게 괜찮게 풀릴 거라고 계속 선셋의 귀에 대고 속삭여주었다.

그럴 리가 없었지만.

상반된 두 개의 감정 사이에서 선셋은 갈등 중이었다. 괜찮을 리가 없잖아! 라고 버럭 소리 지르고 싶었다. 절대 샤이닝의 말 대로 괜찮게 끝날 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샤이닝의 따뜻한 품 안에 안겨 단호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를 받고 있자니.. 이 상황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선셋은 차마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몇 분.. 아니, 몇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선셋은 울음을 그쳤다. 선셋의 격한 감정 표현이 좀 잦아들었어도 샤이닝은 계속 선셋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선셋을 달래고 있었다. 이윽고, 선셋이 숨을 좀 고른 것 같아서 샤이닝은 선셋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기분 좀 풀렸어?"

선셋은 대답을 미루고 눈을 감으며 잠깐 동안 샤이닝 아머와 함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즐겼다. 샤이닝 아머의 심장이 뛰는 소리는 그 가슴에 품고 있는 마음씨만큼이나 자상하고 잔잔했다.

"약간은.."

자신의 눈물로 이미 흥건한 샤이닝 아머의 털에 얼굴을 묻으며 선셋은 대답했다.

그리고 선셋은 샤이닝 아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어떻게 저렇게 완벽한 대처를 할 수 있는 거지?

"샤이니.. 저...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 아니.. 그게 있잖아.. 엄청 익숙한 일인 것처럼 막 그러길래..."

"내 동생 정신과 상담의에게서 배운 거야. 트와일리는 일주일에 2번 정도 공황 발작을 일으킬 때가 있거든.. 그럴 때마다 꾸준히 옆에서 자기가 도와주겠노라고 응원을 해주는 게 좋다고 하더라.. 그리고.. 미안.. 네가 힘든 걸 빠르게 눈치 채지 못해서."

선셋은 한숨을 쉬며 샤이닝에게 자신의 몸을 완전히 기댔다. 왜 쟤가 나한테 사과를 하는 거람?

"사과는 뭘.. 바보짓 한 내가 먼저 사과해야지.."

샤이닝은 말없이 선셋의 콧잔등에 짧은 입맞춤을 해 주었다. 깜짝 놀란 선셋은 수줍게 양 볼을 붉혔다.

"선셋... 그럼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차근차근히 이야기해 줄 수 있어?"

이번에는 속절없이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왜 아까까지 목 놓아 울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직접적인 답변은 할 수 없었다. 제발 떠나지 말아달라고 선셋을 붙잡는 포니들을 무시하면서 인간 세계로 떠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미안.. 못 하겠어 샤이니.. 공주님들만의 일이야. 이해 좀 해줘."

샤이닝 아머는 대답이 없었다. 묵묵히 선셋을 끌어안고 있을 뿐이었다. 샤이닝이 옆에 있는 게 선셋은 마냥 좋았다. 펑펑 울어 감정적으로 완전히 지친 상태였으므로 타오르던 성욕은 이미 불이 다 꺼진 상태였다. 그냥 샤이닝과 함께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을 뿐...

"그나저나.. 아까 너의 말에 대답하자면, 솔직히 난 네가 일주일 전 어떤 포니였는지는 전혀 신경 안 써. 내가 아는 선셋 쉬머는 누구도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날 구해줬고, 속은 썩이지만 사랑스러운 내 동생의 평생소원도 들어줬고, 그 누구보다 우리 엄마를 공손하게 대해준 포니니까."

침을 꼴깍 삼키며, 샤이닝의 말은 잠시 멎었다.

"저..그...그리고.. 좀 야한 주제로 넘어가자면... 아깐 거짓말 안 하고 나도 속으로 은근히 바라고 있긴 했었거든."

샤이닝은 잠깐 눈을 깜박거리며 말을 이었다. 

"허.. 캐이댄스 말 대로네. 생각 하고 말을 하니까 말이 더 잘 나오네. 어-어쨌든, 너 혼자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건 아니니까.. 음.. 너무 죄책감 느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야. 기왕 말이 나와서 하는 이야긴데, 가끔가다 머릿속에 네 모습만 떠올라 주체를 못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난.. 음.. 알지?"

다행히 선셋의 정욕에 다시금 불이 붙기엔 선셋은 이미 감정적으로 녹초가 된 상태였다. 이미 내면의 갈등으로 인해 선셋의 내면은 만신창이인 상태였으니까. 게다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샤이니.."

선셋은 속으로 할 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비록 평소보다 오래 걸렸긴 했지만 말이다. 포니끼리 껴안고 있는다는게 이렇게 좋은 일일 줄이야..

하지만 이런 편안한 상황에서도, 선셋은 여전히 긴장 중이었다. 샤이닝에게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에 담고 있던 생각을 폭로해버린 이후로 계속 그랬다.

"무슨 소리야? 간단하지 않다니?"

선셋은 한숨을 쉬고 두 눈을 꾹 감았다.

'제발.. 이 이야기가 다 끝나고 날 무서워하지 말아주길..'

물론 이러면 샤이닝과 헤어지는 일이 더 쉽겠지만, 가급적 샤이닝 아머가 곧 떠나게 될 선셋에 대해 좋은 기억만 남겼으면 하는 게 선셋의 바람이었다.

"...내가 얼마나 강한지, 너도 잘 봐서 알지?"

"하하.. 응."

"내가 알리콘이 된 이후 얼마나 육체적 능력이 강해졌는지 스스로 실험해봤어. 뭐, 너도 오늘 아침에 내가 약한 지진을 일으키는 걸 봤겠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야.. 변화하면서 내 육체의 마력 연결이 어떻게 꼬였는지는 몰라도, 내가 격한 감정을 느낄 때마다 마력으로 강화되는 육체의 물리력을 잘 제어할 수가 없어. 까딱 화가 나서 발굽이라도 내려쳤다간 뭐... 사비로 재난복구기금을 마련해야할 정도이고, 하늘을 날면서 약간 흥분이라도 했다간 내 날개에서 터져 나오는 풍압 때문에 날씨가 바뀌고 말아."

선셋이 제체기 한번 잘못해도 샤이닝 아머가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고 있는데도 샤이닝 아머는 미동조차 없었다. 심지어 샤이닝의 몸에 기댄 선셋의 귀를 타고 들려오는 맥박도 전혀 변함이 없었다.

"..정말.. 종이로 만든 세상 속에서 사는 기분이야.."

샤이닝은 가만히 선셋의 갈기를 쓸어주었다.

"너무 네 자신에게 엄격한 것 같다. 나도 다친 적 없고, 트와일리도 다친 적 없는데."

싱긋 미소를 지으며 샤이닝은 말을 계속했다.

"쯧, 심지어 그 때 벅도 그냥 의식을 잃는 선에서 그친 것 같구만 뭐."

하지만 선셋의 속은 전혀 편해지지 않았다.

"그거야 그 땐 확실히 자제 중이었으니까. 널 처음 만났을 때도 자제 중이었고. 근데 우리가 계속 만날 때마다 자제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으니 그게 문제야. 자칫했다간 네가 크게 다칠 수도 있으니까. 망할.. 그냥 내가 가만히 대주고 있는다고 해도, 내가 너무 세게 조이는 바람에..  네... 거기가... 음... 망가질지도 모르고.."

비로소 샤이닝 아머의 온 몸이 공포로 바짝 움츠러들었다.

그럴 만 했다. 선셋도 별로 마음을 두지 않았다.

어떤 수말이라도 저런 반응이었겠지.

"아...!"

여전히 선셋을 쓰다듬고는 있었지만, 샤이닝 아머의 목소리엔 불편한 낌새가 역력했다. 샤이닝은 이제 뒷다리를 기묘하게 오므리고 있었다. 아마 저 안에 숨긴 내용물도 바짝 오그라들었을 것이다.

"아...아직 모르는 거잖아.. 그치?"

거시기가 박살나는 것보다 더 정신 나간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선셋은 까르르 웃었다. 

"그러긴 해. 그래서 학교 끝나고 난 뒤 도구들을 여러 개 사서 실험을 해볼 생각이야. 내가 절정에 달할 때 과연 가해지는 압력은 얼마 정도며, 물체의 강도는 또 어느 정도여야 안 망가지는지."

제 입으로 털어놓고도 정말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선셋은 배시시 웃었다.

"그..그...그... 그거, 정말 좋은 생각 같다...참..."

스스로도 정신 나간 소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샤이닝은 비꼬거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구석 없이 동의를 해 주고 있었다.

"엥?"

"그 실험.. 좋은 생각 같다고. 네가.. 어.. 나랑... 만약.. 할 때를.. 대비해서..."

샤이닝의 두 볼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선셋은 샤이닝이 귀여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흠~ 생각 좀 하고 말하라는 캐이댄스의 조언이, 막상 야한 이야기가 나올 땐 실천이 잘 안 되는 모양인가봐?"

샤이닝의 홍조가 더 깊어지는 걸 보며 선셋은 얇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불현듯 캐이댄스에 생각이 미치자 선셋의 기분은 다시 가라앉았다. 이런 좋은 친구들을 두고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자니 속이 아려왔지만.. 이것만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샤이닝의 실연의 충격을 완화할 방법은 딱 하나 있을지도 모른다.

"...널 진짜 좋아하더라."

"누-누가?"

갑자기 화재가 바뀌어 적응이 안 되는 듯, 샤이닝 아머는 말을 다시 더듬거렸다.

"캐이댄스."

샤이닝 아머의 표정만 봐도 그 생각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걔가?!"

"왜?"

"캐이댄스가 날 좋아한다고?"

눈을 반쯤 감고 뚱한 표정을 지으며 샤이닝 아머는 되물었다.

"불과 2분전만 해도 나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얘가?"

선셋은 쀼루퉁하게 두 눈을 옆으로 굴렸다.

"누군 네 앞에서 소리 안 질렀나.. 자기주장 강한 알리콘을 처음 만난 것처럼 그런다?"

씨익 웃으며 선셋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캐이댄스가 너보고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의미로 애정 섞인 잔소리를 하는 거지."

'지금 그대로도 완벽하긴 하지만.. 독려를 해 줄 필요는 있겠군.' 선셋은 생각했다.

"그리고, 야. 너 경비대에 입대할 생각이라면서? 훈련 교관이 하루 종일 심하게 쪼아댈 텐데, 이 정도도 못 견디면 어떻게 해?"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목소리라도 낮춰줬으면 ... 잠깐... 방금 걔가 날 좋아한다는 게, 네가 날 좋아하는 것처럼 좋아한단 이야기야?"

그렇다고 대답을 하려고 하다가 선셋은 망설이고 있었다.

이게 맞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선셋은 곧바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선을 넘으면 돌이킬 수 없음을 선셋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또 포니간의 관계를 함부로 조종중이군.. 나만 없으면 모두 만사형통이라는 게 사실일지도 몰라.'

하지만 선셋이 떠난다면.. 샤이닝 아머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포니가 꼭 필요했다. 사려 깊고, 자상하고, 끈질긴, 그러면서도 샤이닝 아머가 실연의 아픔을 딛고 제 정신을 차리게끔 독려를 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셋은 주저하는 마음을 털어버리고 명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니까? 어쩌면 나보다 더 널 좋아할지도 몰라."

여러 번 남자들과의 관계를 정리해본 경험에 따라 선셋은 미리 밑밥을 깔아두었다.

"너한테 잔소리를 하는 것도 아마 네가 걔한테 관심을 별로 안 가지니까 답답하고 짜증나서 그러는 거겠지. 내가 너한테 그런 쪽으로 관심이 있는 건, 달리 말하자면 걔도 너한테 그런 쪽으로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니까."

샤이닝 아머는 선셋 쉬머를 더 꽉 끌어안으며 머뭇거렸다. "나...난.. 네가 있는데-"

"알아. 그래도..."

선셋은 몰려오는 감정을 애써 진정시키며 입을 다시 열었다.

"가..가끔 생각하는 건데, 너한테는 나보단 캐이댄스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 걔는 더 예쁘고, 친절하고, 착하기까지 하잖아. 나중에 네가 결국 걔랑 사귄다고 해도.. 뭐 어쩔 수 없지.. 걔가 나보단 훨씬 나으니까.."

샤이닝은 묵묵히 선셋을 계속 끌어안고 있었지만, 캐이댄스에 대한 암시가 어느 정도 먹혀들어갔으리란 걸 선셋은 예상할 수 있었다.

"...아냐. 넌 캐이댄스보다 훨씬 멋진 공주님인걸."

받을 자격 없는 칭찬에 선셋은 한숨을 쉬었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이미 그러기엔 너무나 피곤했다.

큰 하품이 나왔다. 샤이닝의 몸을 배게 삼아 잠에 빠지고 싶었다.

"샤이니.. 잠깐만 이러고 있으면 안 될까? 나 피곤해.."

"어... 그럼,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지.."

"수업 종 칠 때까지?" 선셋은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피곤하긴 했지만, 현재 잔여 마력으로 시간 정지 주문을 얼마나 더 연장할 수 있을지는 충분히 계산할 수 있었다.

"2달 정도 걸릴걸.."

그리고 선셋은 땅 위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처음 부려보는 어스 포니의 마법은 신기하고도 기묘했다. 별로 의식하면서 마력을 조작하지 않아도 선셋의 발 아래로 흘러내린 마력은 땅 위에 돋아난 잔디를 거의 고급 침대나 다름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윤기 있게 변화시켰다. 알리콘으로 승천하기 전엔 미처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너 편할 대로 해 그럼.." 샤이닝 아머는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셋은 샤이닝의 가슴에 얼굴을 더 깊게 파묻은 뒤 바짝 무거워져오는 눈을 감았다. 

이건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 선셋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파국을 맞기 전에 마지막 단 한 번이라도 연모하는 포니의 체온을 가까이서 느끼고자 하는 욕망을 공주는 거부할 수 없었다.

----------------------------------------------------------------------------------------

2교시 수업 종료 종이 울렸다. 플뢰르 드 리는 책가방에 주섬주섬 교과서를 집어넣고 친구들과 함께 교실을 나섰다. 3교시가 친구와 같이 수업을 듣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그 다음 어퍼 크러스트는 지루하디 지루한 경영학 수업을 들으러 가고, 새시는 약간 좀 뭐랄까.. 잘못 소문이 퍼졌다간 명망 깎이기 딱 좋은 직업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새시의 큐티 마크가 의류 관련이긴 하지만, 왜 한사코 재봉술 수업을 듣겠다는 건지 플뢰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패션 업계가 캔틀롯에서 사회적으로 높은 취급을 받는 집단이긴 했지만, 모델과 의류 제작자 사이엔 매울 수 없는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한 필의 친구가 같은 업계쪽으로 진로를 정해줘서 플뢰르는 안심이 되었다. 같은 업계에 각자 다른 위치에서 서로를 도와가며 같이 올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한 포니가 의상을 제작하고, 다른 한 포니는 그 의상을 입고 마음껏 런웨이에서 그 자태를 뽐내 둘이 서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가는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진정한 절친의 의미가 아닐까?

절친이라.. 옛 기억이 떠올라 플뢰르는 미소를 지었다. 몇 년 전, 플뢰르는 여타 또래 암말들처럼 자신이 성 정체성을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서로 실험을 해 본 적이 있다. 그 결과... 둘은 그냥 친구사이가 편하다는 게 증명되었고, 둘은 그냥 절친사이로 쭉 남게 되었다. 또한, 플뢰르의 부모님도 플뢰르가 캔틀롯 상류층과 선을 봐 결혼하기를 원했고, 거기에 대해선 플뢰르도 별로 반항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다 플뢰르의 미래를 위해서 그러시는 것일 테니.

"지금 무슨 생각해?"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동안, 새시가 플뢰르의 곁에 다가와서 불쑥 말을 건넸다.

새시의 얼굴엔 걱정하는 낯빛이 가득했기에, 플뢰르는 친구를 안심시키기 위해 활짝 미소를 지으며 옅은 웃음소리를 냈다.

"미안. 잠깐 옛 추억 떠올리느라 여념이 없었네."

플뢰르는 방금 말을 건 친구를 쳐다보았다... 누군가가 빠진 것 같았다.

"크러스트는 어디 갔어?"

"그 얘가 가십이라면 사족을 못 쓰잖니. 선셋 공주님에 대해서 새로 뜬 핫 가십이 있다기에 앞뒤도 안 살피고 무슨 일 인지부터 알아보러 갔다니까 글쎄.. 3교시 수업 시간에 보재."

선셋 쉬머 공주. 그 이름만 들어도 플뢰르의 몸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어제 그 '불편한 만남' 이후로 플뢰르는 선셋 쉬머에 대한 여러 가지를 알아봤는데, 들리는 풍문만 해도 뭐 이런 포니가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어마무시했다. 일단,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학교 최우수 성적 학생이었으며, 마력의 강도는 그 학교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수들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는데, 이게 전부 선셋이 공주로 승천하기 전부터 떠돌던 이야기였다! 학교 먹이사슬의 최정점에서 군림했다는 점은 얼핏 플뢰르와 유사했으나 일단, 선셋과 플뢰르는 일단 다니던 학교의 급부터가 달랐고, 군림을 위해 주변마를 이용한 소셜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했던 플뢰르와는 달리, 선셋은 오직 독고다이 뿔 하나로 학교를 휘어잡았다.

선셋에게 도움 따윈 필요가 없었다. 이제 알리콘까지 되고 말았으니 그 힘은 끝 간 데를 찾아볼 수도 없다 하겠다.

하지만 선셋의 마력보다 더 두려웠던 게 뭐냐면 공주로써 선셋이 휘두를 수 있는 사회적 영향력이었다. 사실상 말 한마디만 해도 이퀘스트리아의 정치판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플뢰르의 아버지가 선셋 쉬머 공주의 기자회견이 실린 신문을 보면서 말씀하시기론 이 제법 강단이 있는 공주가 등장한 뒤, 곧 있을 이퀘스트리아-그리폰스톤 회담 때그리폰스톤과의 무역협정을 재조정하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고 했다. 

구토 왕의 쇄국 정책 때문에 그리폰스톤의 경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고, 인접국인 이퀘스트리아는 마도적 차원으로 그리폰스톤에 계속 경제적 지원을 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지원을 해 줘도 이렇다 할 개선 여지를 보여주지 않는 그리폰스톤에 환멸을 느낀 수많은 포니들이,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을 성미의 새 공주가 배째라식으로 나오는 그리폰 사절의 기를 팍 꺾어주기를 바라며 지지입장을 표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플뢰르가 작은 태양의 알리콘의 성질을 건드렸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선셋은 패션계 유명 인사에게 '저 암말 맘에 안 들어요.'라고 한마디만 하면 땡이다. 그 한마디에 플뢰르가 패션 계에 품었던 꿈도, 포부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해서, 공주와의 만남이 상호간에 유쾌하지 않게 마무리된 이후로 플뢰르는 한동안 선셋 앞에서 몸을 사리기로 했다. 이 선셋 쉬머란 포니는 벌레처럼 플뢰르를 밟아버릴수 있기에.

바퀴벌레 밟듯 자신을 밟는 선셋의 모습이 연상되자, 플뢰르는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덜어버렸다. 그리고 여전히 염려하는 얼굴로 자신을 살피는 친한 친구에게 서둘러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럼, 지체 말고 빨리 교실로 가자."

그렇게 두 필의 상류층 포니는 다음 수업이 있는 곳으로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반 정도 가고 있을 무렵, 새시가 문득 플뢰르에게 질문을 던졌다.

"드레스 선물하면.. 받으실까?"

"뭣?" 플뢰르는 의문에 가득한 눈길로 새시를 쳐다보았다.

"선셋 공주님말야."

순간, 플뢰르는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 했지만, 새시가 바로 마력으로 부축을 해준 덕분에 웃음거리가 될 일 없이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네가 선셋 공주에 대해 걱정하는걸 내가 뻔히 눈치 못 챘을까봐.. 그렇게 그 포니가 걱정된다면 선물로 환심을 사 보는 건 어떨까?"

본능과 수없이 쌓여온 습관이 무의식적으로 새시의 제안을 넙죽 받아들이려던 플뢰르의 뇌에 제동을 걸었다. 그랬다간 다들 플뢰르가 선셋에게 먼저 굽히고 들어간다고 오해할 테고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려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수양딸 정도나 되는 포니를 대놓고 적대했다간 국물도 못 찾으므로, 플뢰르는 애써 웃으며 벌벌 떨려오는 몸을 진정시킨 뒤, 억지로 밝은 척을 한 티가 풀풀 나는 목소리로 새시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거. 참. 좋은 생각인 것 같다. 하하."

어느 새 둘은 연금술 교실 앞에 도착했다. 교실 문을 열며 플뢰르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자신이 어쩐지 민망스러워, 선셋의 흠집을 양분 삼아 자신의 자신감을 보충할 생각으로 새시를 돌아보며 물었다. 

"근데 어퍼 크러스트가 들은 가십이라는 게 대체 뭘까? 선셋 공주에 관한 거라고 하던데.."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선셋 공주가 최근에 캐이댄스 공주랑 함께 데리고 다니는 그 수말 있잖아. 그 수말 안색이 지금 영 안 좋은걸 보니 혹시-"

"너흰 그 소문의 장본마 앞에서 대놓고 뒷담화를 하는 아주 대담한 취미가 있나보다?"

둘은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보았다. 두 쌍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졌다. 선셋 공주가 연금술 교실 제일 뒷자리의 구석에 앉아 날카로운 눈빛으로 둘을 째려보고 있었다.

아뿔싸! 제일 뒷자리에 앉아 있어서 눈치 채지 못 했었나?! 왜 하필 이런 곳에.. 하긴, 유니콘 학교에서 최고 수재였다면 굳이 앞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는데 열과 성을 다 하지 않더라도 높은 성적을 받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테니...

제 친구와 긴장에 찬 시선을 교환한 뒤, 플뢰르는 작은 태양의 반신에게로 다가왔다.

"저.. 공주님.. 제 말은 그게 아니고.."

선셋은 꼴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리더니,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둘을 지긋이 쏘아보았다. 그리고 둘 주변을 느린 속도로 돌며 입을 열었다.

"1호기, 2호기는 보이는데.. 3호기 어디 갔어?"

선셋의 어조에는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두 포니에 대한 경멸이 가득 실려 있었다.

압도적인 분위기에 플뢰르와 새시는 완전히 질려버리고 말았다. 공주의 흠집으로 자신감을 보충하려고 하다니.. 내가 대체 왜 이런 생각을 했담?

가까이에서 노려만 보고 있는데도 플뢰르는 졸도할 것만 같았다. 그동안 매우 비싼 연금술 미용요법을 받아 늘씬하게 쭉 뻗은 다리를 가진 덕에 키로는 선셋에 비하면 전혀 꿇리지 않았지만, 키만 컸을 뿐 선셋의 전체적인 체형에 비하면 나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플뢰르는 더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3...3호기라뇨?"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플뢰르가 물었다.

"알잖아. 약간 뚱뚱한 애."

새시와 플뢰르는 동시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어퍼 크러스트는 지금 가십을 수집하고 있답니다. 공주마마. 아마도 그 애의 흥미가 다 충족되기 전 까진 교실에 오지 않을 것 같은데요.."

짜증에 찬 한숨이 공주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둘을 한 대 맞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바짝 움츠렸다.

"..할 수 없군. 야. 너희 둘. 할 말이 있어. 그냥 넘어가줄까 했는데 도저히 기분이 언짢아서 안 되겠다."

공주의 어투는 메마르기 그지없었다.

"어떤..주제로..말씀이지요?"

플뢰르는 곁눈으로 오른쪽에 걸린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수업종이 울리기까지 2분 전. 교수는 그것보다 더 늦게 도착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학기 내내 그랬다.

"일단 내 뒷담화를 깐 것도 깐 거지만 뭐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 내 친구 캐이댄스 이야기부터 좀 하자. 걔가 너희들이 소위 보호해준답시고 설쳐대는 탓에 그동안 기분이 엄~~~~청 안 좋았다더라?"

선셋은 숫째 으르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참 나. 지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아나. 캐이댄스가 다른 포니랑 이야기 하는 걸 멋대로 차단하고 지랄이게. 그렇게들 생각들이 없나? 뇌를 셋이서 세트로 벌레에게 파 먹히기라도 했어? 응?"

플뢰르는 또 한 번 마른침을 삼키며 공포에 가득 찬 눈동자로 작은 태양의 여신을 올려보았다.

"저-저흰 그냥 그분을 도와주려고 했던 거에요 공주님! 천박한 부류의 포니들이 캐이댄스 공주님이 전학 오신 첫날, 단순히 그 분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그 분의 뒤를 계속 밟기에 어쩔 수 없이-"

"흥! 그러시겠지. 그리고 다른 포니들과 대화를 단절시켜놓으면 너희들 입맛에 알맞게 캐이댄스를 조종하기 쉬워질 테고! 내가 바본줄 알아?! 너희 수법은 다 꿰고 있어! 나도 그동안 너희 같은 방식으로 해 온 짓이 오죽 많았으니까!"

공주는 플뢰르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쳤다. 그것만으로도 플뢰르의 몸 전체가 불에 타는 것만 같은 아찔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곧, 선셋은 한숨을 푹 쉬더니 이빨을 부득 갈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뭐.. 그 덕분에 너희 같은 머저리들도 구제의 여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뭐랄까.. 약간 누그러진 어조였다.

"그래서 기회를 한 번 줘 볼까 해. 가서 캐이댄스에게 너희들이 한 짓에 대해 잘못했다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와. 안 그랬다간 아까 감히 내 면전에서 뒷담화를 한 벌까지 포함해서 너희들의 내면의 모습과 외면의 모습이 영영 일치하도록 만들어주겠어."

공주의 선고가 끝나자, 새시는 겨우 용기를 내 마음에 걸리는 것 하나를 공주에게 질문했다.

"저.. 공주님.. 내면과 외면이 영영 일치하도록 만든다는 게 대체..."

"제일 못생기고, 소름 돋고, 사회적으로 영영 외면당할 만한 생물을 하나 상상해봐."

선셋은 플뢰르와 새시를 거의 고개로 찍어 누르다시피 하며 말을 이었다.

"캐이댄스가 너희 사과를 안 받아들이기만 해 봐라. 그 모습으로 평생 살 각오를 해 두는 게 좋을 거야."

경악! 한창 그에 해당되는 생물을 연상 중이었던 플뢰르의 머릿속을 채운 감정이었다.

노새?!?

그러니까, 캐이댄스 공주가 사과를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면 선셋 공주가 그 자리에서 즉시 플뢰르와 새시를 더럽고, 악취 나고, 구역질 날 정도로 못생긴 노새로 바꿔버린다는 이야기인가? 기제류 중 가장 못생겼기로 악명 높은 그 생물로?!

플뢰르와 새시, 누가 먼저라 할 거 없이 공포에 찬 비명을 지르며 교실에서 뛰쳐나갔다. 이제 둘의 명줄은 캐이댄스 공주에게 달려있었다.



----------------------------------------------------------------------------------------------------------


일단 이 정도로 컷.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곧 출시될 하스브로의 장난감 상품군인 '가디언즈 오브 하모니.'에 관련된 코믹스의 프리뷰입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ㅏㄴ 포



오랜만의 코믹스 번역입니다. 전에 발간된 다른 코믹스는 다른 분께서 하셨으니, 보고 싶으시다면 링크==>http://gall.dcinside.com/board/lists/?id=mlp&s_type=search_name&s_keyword=dummy&g_s1=1&g_s2=&g_s3=


여기에서 봐주세요.



제가 예전에 비해 많이 여유로워져서 코믹스까지 작업할 짬이 생겼는데다가, 저 대신 하시는 분이 제게 다시 바톤을 넘겼으므로 제가 다시합니다요..


저작자 표시
신고




출처 : http://www.fimfiction.net/story/347321/1/the-coronation/it-seemed-like-such-a-good-idea



작가 코멘트 : 공주로 승천한 직후엔, 으레 대관식이 기다리기 마련.


당연히 선셋은 이 일생일대의 이벤트에 인간 세상에 있는 친구들을 초대했답니다.


뭐... 결과는 여러분이 예상했던 대로겠지요


(선셋 쉬머의 날을 기념해서 쓴 단편입니다.)



이퀘스트리아 데일리에서 주최한 '선셋 쉬머의 날'(http://www.equestriadaily.com/2016/09/sunset-shimmer-day-dawns.html)을 기념해서 하는 단편 번역입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죠. 


--------------------------------------------------------------------------------------------------




이거.. 처음엔 참 좋은 생각 같았는데 말이지..










길거리엔 "경  선셋 쉬머 공주님 즉위  축" 이라는 글귀가 적혀진 현수막이 방치되다시피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름아침부터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는 형형색색의 색지만이 버려진 거리를 채우고 있었죠.


선셋 쉬머는 조용히 어느 가게의 한 자리에 앉아, 앞에 놓인 더블 건초 버거가 알맞게 식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쟁반 위엔 이미 내용물을 다 짜내버린 마요네즈 한 봉과 바닐라 쉐이크 소용량 한 컵이 놓여있었죠.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쉰 뒤, 갓 즉위한 공주님은 가게 안에 어지러이 굴러다니는 빨대 하나를 집어서 컵에 꽂고 난 뒤 바닐라 쉐이크 한 모금으로 목을 축였습니다. 그 이후 잠시 머리에 썼던 왕관을 벗어 식탁 위에 올려놓고 얼마 동안 지긋이 바라보았지요.


가게 안에 아직도 대피하지 않고 남아있는 포니가 있어 선셋의 눈길이 쏠렸습니다. 이름표에 '딥 프라이'라고 적힌 이 포니는 어두운 남색 빛깔의 갈기 위에 건초 버거 모양 종이모자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도 영 어색해서 선셋은 그 포니에게 냅킨을 부탁하려다가, 순간 자기가 지금은 알리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만두었습니다. 강화된 염동력으로 뽑아올 수도 있는데 번거롭게 다른 포니 시키기가 영 그랬으니까요. 냅킨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적막한 가게 내에 쩌렁쩌렁 거릴 정도로 울려퍼졌습니다.


"..대피 안 하세요?"


선셋의 질문에 딥 프라이는 선셋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본사 방침이 그래서요."


"아.." 선셋은 다시 자기 몫의 건초 버거를 쳐다보았습니다.


"저, 새로운 공주님... 되시죠?"


"그....런데요?"


"본사 방침보단 공주님 명령이 우선이겠죠? 그래서 부탁이 하나 있는데... 제가 집에 좀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서리.."


선셋은 퉁명스럽게 두 눈을 옆으로 굴린 뒤, 지극히 냉소적인 말본새로 입을 열었습니다.


"나, 선셋 쉬머 공주는 승천한 알리콘 공주의 권능으로, 패스트푸드 가게의 딥 프라이가 당장 귀가할 것을 명하노라... 나 참.."


"잠깐.. 기왕 마심 쓰시는 김에 일당도 온전히 받았으면.."


"받게 해 줄 테니까 걱정 말고 가요." 선셋은 종이 하나를 소환해 몇 자 끄적거린 뒤 직원에게 홱 던졌습니다.


"앗싸!"


직원은 쏜살같이 문 밖으로 떠나버렸고, 선셋만이 홀로 남았습니다.


"언제나 충실한 국민의 하인, 선셋 쉬머 공주라네.." 선셋은 혼잣말로 무뚝뚝하게 뇌까렸죠.


그 순간 가게 현관문에 매달린 종소리가 울리고, 갈기 타는 냄새와 함께 누군가가 들어오는 발굽 소리가 들렸습니다.


날개 깃털과 몸 이곳저곳이 불에 그슬린, 반쯤 초토화된 행색의 트와일라잇 스파클 공주가 선셋 쉬머가 앉아있는 자리의 바로 맞은편으로 걸어와 앉았습니다. 아무 말 없이 트와일라잇은 선셋의 건초 버거를 가로채 자신의 입 안으로 단숨에 처박더니, 곧 선셋 몫의 쟁반 위에 놓인 건초 프라이와 바닐라 쉐이크마저도 게걸스럽게 축내고 말았죠.


"많이 힘들었나보네?" 선셋이 물었습니다.


입안에 넣은 걸 다 꿀꺽 삼키고 난 뒤, 트와일라잇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대답했습니다. 


"힘들어 죽을 것 같아.."


"레인보우들은?"


"그 속도대로라면 지금쯤 새들 아라비-"


트와일라잇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두 번의 초음속 파공음이 울려 퍼지더니, 곧 이 근방 모든 건물의 느슨한 철제 구조물들이 쩔걱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귀를 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상이 빗나가네. 둘 다 꾸준히 속도를 올리고 있었나봐."


"허.. 참... 그래. 누가 이길 것 같아?"


"모르겠어.. 내 쪽 레인보우는 원래 페가수스였지만, 네 쪽 레인보우는 페가수스의 마력에 굳이 의존하지 않는 순수 육체적 능력만으로도 체육 쪽으로 최상위였으니까.. 체력 싸움으로 가면 네 쪽 레인보우가 이길 것 같은데."


"근데 아무리 봐도 개가 평소에 날개를 못 달고 다니는 게 한이 맺혀서 지금 무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오히려 요령이 있는 쪽이 더 승률이 높지 않겠어?"


약간 남은 건초 프라이를 집어 올리며 선셋이 말했습니다.


"그럴지도.." 트와일라잇의 대답이었습니다.


약 몇 초간 가게 안은 건초 프라이를 씹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죠.


"플러터샤이들은.. 좀 어때?"


마침내 할 말을 찾은 선셋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최대한 어색한 기분을 피하려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이지요. 포니빌은 이미 두 핑키 파이의 무차별 파티 용품 융단 포격으로 난장판이 되어있었습니다. 띠색지가 마치 눈보라처럼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죠.


"아... 두.. 둘이서 나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응."


트와일라잇도 황급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죠. 양 볼을 캐첩색으로 붉게 물들이면서 말이죠. 물론. 진짜 케첩도 덕지덕지 묻어있긴 했습니다.


"너도 봤어? 둘이서.. 그러는거?" 선셋도 약간 홍조를 띄며 재차 질문을 던졌죠.


"다시 생각해보니.. 샤이랑 너무 성격이 잘 맞는 다른 포니를 소개시켜 준 건...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좋지 않은 생각이었던 것 같아."


"뒤늦게 말이지?"


"응. 너무 늦었지만.."


선셋은 바닐라 쉐이크를 빨대로 빨아먹으려다, 빨대에 트와일라잇이 묻힌 케첩 자국이 있는 걸 보고 그만두었습니다. 대신 트와일라잇에게 쉐이크를 내밀었죠.


"너 먹어. 난 그냥 새로 하나 주문할 테니까."


"아.. 고마워."


트와일라잇은 쉐이크가 담긴 컵을 받아들었고, 선셋은 주문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만, 곧 자기가 직원을 집으로 직접 보내버렸다는 사실을 떠올렸죠.


"망할.."


선셋은 여전히 기름이 식지 않은 튀김기를 쳐다보았습니다. 한숨을 쉬며 선셋은 음식을 직접 만들기로 작정했죠.


"공주로써 처음 하는 일이 이거네.. 건초 버거 만들기."


"직원 분들은 어디로 가고?"


"미리 대피시켰어. 그냥 놔뒀다가 산더미 같은 색지에 깔려 다치게 할 순 없는 노릇이잖아."


"그랬구나. 잘했어."


트와일라잇은 본마가 텅텅 비운 쟁반을 내려 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저.. 미안한데, 나 먹을것도 만들어주면 안될까?"


선셋은 트와일라잇을 흘겨보았습니다. 하지만 곧 씨익 웃으며 대답했죠. "건초 프라이도 해 줄까?"


"응!" 트와일라잇이 앞발굽으로 박수를 치며 마치 신이 난 망아지 같은 웃음을 만연히 짓고 있어서, 선셋은 코웃음을 한번 쳤습니다.


"거울 너머에서 온갖 복잡한 것은 다 배워놓고는 정작 돌아와서 제일 먼저 쓰는 지식이 패스트 푸드점 튀김기 돌리는 방법이라.. 기가 막혀서 정말...!"


투덜거리면서도 선셋은 냉동된 프라이를 적당히 집어 튀김기에 집어넣었죠.


"튀김기 쓰는 방법은 어쩌다가 배운 거야?"


"인간 세계에서 돈이 필요하다보니까 알바하면서 배운 재주가 좀 있지. 근데 건초 조리해보는건 또 처음이네."


"맞다. 그랬었지.. 인간 세계랑 비교해보자면 여기 패스트푸드는 좀 어때?"


"식감은 별론데 더 부드럽긴 해.. 깊은 맛도 풍부하고. 처음엔 너무 느끼한 거 아닌가 싶었는데, 인간 세상에선 그것보다 더 느끼한 것도 먹었으니까 뭐."


새로 조리된 음식이 담긴 쟁반을 트와일라잇 앞과 자기 자리 위에 각자 내려놓으며, 선셋은 말을 이었습니다.


"근데 베이컨은 확실히 여기 게 나아. 식감이 더 바삭바삭하거든. 뭐랄까.. 인간 세계 음식에 너무 적응했는데도 이건 이질감이 별로 안 든다고 해야 되나.."


"흐~음."


트와일라잇은 약간 긴 시간동안 버거를 바라보며 인간 세상의 버거는 어떨지 사색에 잠겼습니다. 잠시 후, 건초 버거를 한 입 가득 베어 물며 안 그래도 케첩 범벅인 양 볼에 더 케첩을 묻힌 채로 트와일라잇은 말했죠. "난 그냥 건초면 될 것 같아."


"이 동네 원래 이렇게 썰렁한 곳이야?" 새로 뽑아온 바닐라 쉐이크를 홀짝거리며 선셋이 물었습니다.


"내가 재난 지역 선포한 것 때문에 그럴 거야 아마. 난리가 났으니 공주로써 뭐라도 해야지."


트와일라잇은 바깥의 색지로 가득 덮인 폐허(?)를 힐끗 보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하아.. 눈삽들 미리 주문해두길 잘했네. 다행히 이런 상황을 질리도록 겪어서 망정이지.."


"눈삽? 좋은 생각이네 그거. 근데 사고가 터진 게 한 두 번이 아닌가봐?"


"이 동넨 진짜 사고가 터져도 너무 많이 터져서 문제야 문제.."


"설마 그동안 이사해볼 생각은 한 번도 안 한 거야?"


"낸들 안했겠어.." 트와일라잇은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너 부동산에 크리스털 성을 매물로 내놓아 본 적 있어?"


"…….아니."


"하지 마. 절대 안 팔려."


"..참고하지." 선셋은 다시 쉐이크를 쪼르륵 마셨습니다.


두 필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무심하게 바깥 경치만 살폈습니다. 대피 통보를 듣고도 마을을 떠나지 않은 몇몇 어리석은 포니들이 필사적으로 색지의 늪에서 헤어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죠.


"애플잭들은?"


"여전히 싸워. 누가 더 일 잘하나, 누구 농장이 더 크나, 뭐 그런 이유였을거야."


선셋은 그냥 조용히 고개만 끄덕거렸습니다.


트와일라잇은 마지막 하나 남은 건초 프라이를 집어 케첩을 돌돌 묻히더니, 바닥에 남은 부스러기들까지 깔끔하게 갈무리했습니다.


"미드나잇 스파클은 도대체 어떻게 막은 거야?" 선셋은 마지막 질문을 던졌죠.


"공통의 약점을 사용했지. 바로 책."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어조로 트와일라잇은 대답했습니다.


"근처 다른 도서관들의 위치가 실린 약도도 내 서재 책상 위에 미끼로 놔뒀으니, 한 일주일동안은 난동 부리는 일 없이 잠잠할 거야. 그리고-"


잠시 말을 끊고 트와일라잇은 날개 밑에서 여전히 비색 마력이 번뜩이는 미드나잇의 안경을 꺼냈죠. 


"-안경 없이 앞을 잘 못 본다면 약 2주 정도 걸리겠고."


"살짝 질투난다 야. 왜 네 타락한 모습은 나보다 더 멋드러진건지 원."


살짝 의아해하던 트와일라잇의 두 얼굴에 약간 홍조가 올랐죠.


"아..아냐.. 나- 아니, 미드나잇 걘 완전 안경빨이고.. 넌 뭐랄까.. 좀 더 고전적인 퇴폐미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좀 더 화끈하기도 하고... 장난 아니라 진짜..."


"호오.. 그랬단 말이지? 좋은 거 알아냈어."


선셋은 히죽 웃은 뒤, 붉게 달아오른 트와일라잇의 표정을 감상하며 남은 바닐라 쉐이크를 끝까지 빨아 마셨습니다. 한동안 쀼루퉁하게 선셋을 보고 있던 트와일라잇은 화제를 돌리기로 마음을 먹고 입을 열었습니다.


"이제 어쩌지?"


"글쎄? 발굽만 빨고 있으라고 우리에게 왕관을 씌어준 건 아니니까-"


근처에서 또 파공음이 들려 선셋은 말을 멈췄습니다. 식탁 등 가게 내부의 기기들이 덜덜 떨릴 정도의 충격파가 몰아닥쳤죠.


"세상에, 아직도 속력을 내고들 있네? 안 힘든가?"


"모르겠다 진짜.. 나중에 어디 충돌해서 거대 크레이터를 만드는 게 아닐런지.."


"저러다 중요 기물에 충돌하지 않기나 바래야지... 쯧!"


선셋은 혀를 차며 쟁반 위의 쓰레기를 마력으로 뭉쳐 쓰레기통에 던졌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뭘 하냐면..."


선셋을 창밖을 쳐다보았지만, 수습 못할 상황에 암담해진 나머지 한숨만 푹푹 쉬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동감이야 진짜.."


트와일라잇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선셋이 책상위에 잠시 내려둔 왕관을 선셋에게 건네면서요. "자. 빼먹지 말고 잘 챙겨."


"아 맞다. 깜빡할 뻔 했네."


선셋은 그 자리에 멈춰 잠시 창밖을 쳐다보다가 다시 트와일라잇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럴 때 스승님이 어떻게 하셨더라... 아! 우리 그냥 째고 놀러나 갈까?"


"뭐?!"


"그.. 바닷가 같은데서 시간이나 보내다 오자고. 시간이 지나면 걔네들도 제풀에 지쳐서 알아서 그만두겠지. 게다가 미드나잇도 일주일동안은 잠잠할 거라면서?"


"야. 그래도-"


트와일라잇은 창문 밖을 보았습니다. 두 래리티는 둘이 함께 공들여서 데코한 마을의 조형물들이 쉴세 없이 밀려드는 파티 용품의 홍수에 점점 잠겨가는 사뭇 끔찍한 광경을 보며 세상에 종말이라도 닥친 듯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뒤에선 두 스파이크가 안절부절 래리티를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누가 원래 인간이고 누가 원래 포니였나 대략적으로나마 구분이 가능했죠. 에라 모르겠다.. 트와일라잇도 바깥의 아수라장을 아예 외면해 버렸습니다.


"...마침 적당한 곳을 알아. 메어리비안 해안에 가 봤어?"


"안 가봤는데? 거기 가자고?" 선셋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습니다.


"가자.. 까짓거." 트와일라잇은 쟁반 위에 남은 쓰레기를 돌돌 뭉쳐 쓰레기통에 투척했습니다.


"자 그럼 우리 트와일라잇이 너무나 좋아하는 노을빛이나 쐬러 가보실까?"


장난기 어린 선셋의 말에 트와일라잇은 선셋을 쏘아보았습니다.


"뭐래?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에이~ 잘 알면서 모르는 척 하긴."


혀를 비쭉 내밀며 선셋은 트와일라잇의 약을 살살 올렸습니다. 트와일라잇은 살짝 삐진 듯 콧방귀를 뀌었지요. 그리고 잠시 후, 청록색과 보라색의 섬광과 함께 둘의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가게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텅 빈 가게에는 주인 잃은 튀김기만이 부글부글 끓는 기름을 안으며 계속 작동하고 있었지요. 그리고 바람을 타고 창문으로 들어온 휘향찬란한 색지들이 잔뜩 가열된 튀김기 쪽으로 팔랑팔랑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그 날, 포니빌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는 메인하튼에서도 관측할 수 있을정도로 규모가 엄청났다고 합니다.


반면, 메어리비안은 평화롭기 그지없었죠. 모두 두 필의 공주님 덕택이랄까요...



==========================================================================================================



그 스승에 그 제자들

저작자 표시
신고

작업중.FF32

Posted by 졸역쟁이 기뮤식의노예





코믹스 번역이 다시 제게로 바톤이 돌아와서 코믹스 번역 재개합니다.


코믹스는 내일, 아니면 모래 정도에 끝장이 날 것 같고, 선셋 리셋은 18000단어 분량이라 금방 끝이 날 것 같진 않군요.


어쨌든 곧, 코믹스로 찾아뵙겠습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팔란의 파수꾼이 되어 다른 세계에 칩입합니...

꼐..꼐임/액션 | 2016.09.11 13:13
Posted by 졸역쟁이 기뮤식의노예






너네들끼리 다 해쳐먹을거면 대체 난 왜 불렀니;;


오래간만의 다크 소울 3 영상입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졸렬한 포니 번역)선쉽드! - 1

Posted by 졸역쟁이 기뮤식의노예







작가 코멘트 : 선스폰드!의 후속작입니다.






선셋 왈 : "여~ 글림글림! 글림글림이라고 불러도 돼지? 선버스트랑 왜 이리 지지부진한 거야? 벌써 서로 물고 빨고 난리가 났어야 됐는데."



-------------------------------------------------------------------------------





"어-뭐-뭐-뭣...! 당신 대체 누구야?!?!"




"선셋 쉬머라고 불러줘. 근데, 그거 말고 지금 중요한 것이-"


"왜 생판 남의 연애생활에 참견이시죠?! 아니.. 애초에 트와일라잇 공주의 성엔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선셋은 턱을 앞발굽으로 두드리며 대답했습니다.


"전부 다 마법 덕분이라고 하면 땡이긴 하지만, 특별히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첫째. 난 선버스트와 난 한 몸이나 다름없는 사이라, 걔가 앞으로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고, 그리고 둘째. 넌 아주 강력한 마력을 지닌 유니콘이니만큼, 널 꼭 닮은 튼튼한 망아지를 출산하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내가 일부로 거울 너머에서 넘어온 거? 다 그런 깊은 뜻이 있어서지."


"잠깐... 거.. 거울이요?! 성에 있는 그 거울?"


"물론, 마법 거울이거든 그거. 그럼, 다시 한 번 물을게. 무지무지 사랑스러운 소꿉친구가 바로 옆에 있는데 왜 이리 느리장을 부리고 있는 건데?"


스타라이트는 대꾸를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뭐라 형연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치는 바람에 얼굴만 붉히고 말았죠. 선셋은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니-그게-그러니까-그게-뭐라구요?! 뭐라구요오?! 선버스트랑 내 사이를-- 당신이 어떻게, 나랑, 선버스트랑, 당신은 대체... 뭐라구요?! 뭐라구요?! 뭐라구요오?!"


"학교에서 질문엔 의문문으로 대답하는 거 아니랬는데."


"왜 제가 당신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뭐에요? 갑자기 그 정신 나간 질문들은?!"


"엇, 잠깐.. 너 동성애자였어? 아님 무성애자인가? 뭐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고.."


"...뭐라구요.."


"네가 대답을 안 해주니까, 나 혼자서 알아맞히는 수밖에는 없지 않겠어?"


벽에 몸을 기대며 선셋은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아니면 혼전 순결 주의자인가? 흐음.. 그런 주의를 가지고 있는 포니들 생각을 이해 못 하겠지만.. 어쨌든 그냥 키스 정도는 섹스로 취급도 안 하니까 그럭저럭 타협은 가능할-"


"그런 게 아니라! ...신경 쓸 게 너무 많아서 연애 같은데 신경 쓸 틈이 없다니까!"


"이제야 대답하네. 솔직히 말하는 게 그렇게도 힘들었어?" 히죽 웃으며 선셋은 말했습니다.


"...당신 정말 치사하고.. 교활한 포니로군요." 스타라이트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예리한걸. 내가 좀 그렇지."


벽에 기대던 몸을 빼고 다시 중심을 잡은 뒤, 선셋은 스타라이트에게 앞발굽을 내밀었습니다.


"뭐, 그렇다고 우리가 친구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안 그래?"


"그...런가요?"


스타라이트는 선셋이 내민 앞발굽을 잡고 가볍게 흔들었습니다. 여전히 선셋을 경계중이긴 했지만요.


"하긴.. 저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네요."


"예전에 평등을 교리로 하는 사이비 종교를 세운 거 때문에 그러지 지금?


"당신이 그걸 어떻게?!"


스타라이트는 앞발굽과 몸을 뒤로 확 뺐습니다.


"지-지금은 뉘우치고 있지만.. 당신,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 거죠?!"


"나랑 트와일라잇이랑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라서 말이야. 어쩌다보니 네 이야기도 나오더라."


어깨를 으쓱거리며 선셋은 말을 이었습니다.


"미리 말해두는데, 난 네가 무슨 일을 했든 크게 신경 안 써. 나도 예전에 비슷한 짓을 저지른 적이 있어놔서리."


"...뭐라구요?"


"이차원에 사는 유인원들을 정신지배해서 이퀘스트리아를 점령하려는, 지금 내가 생각해도 정신 나간 짓을 벌이려고 했다가, 트와일라잇에게 한 방 맞고 제정신이 돌아왔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우리 클럽 하나 만들까?"


선셋은 한 쪽 발굽을 스타라이트의 어께에 두르고 나머지 한 쪽 발굽을 저 먼 하늘을 가리키며 활기차게 말했습니다.


"개심한 유니콘 클럽! ...근데 내가 아는 회원 자격 있는 유니콘들이 너랑 나 밖에 없네 지금.. 유니콘 아닌 얘는 하나 알고 있긴 하지만."


"트릭시라는 이름의 유니콘이 있긴 한데요-- 잠깐, 이게 아니잖아!"


스타라이트는 선셋의 앞발굽을 어께에서 치워냈습니다.


"왜 제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듣도 보도 못한 포니랑 제 연애생활 및 신변잡기에 대한 대화를 나눠야 되는 거죠?"


"아니, 왜 그런 시시콜콜한 걸 아직까지 신경 쓰고 그래? 약 45초전에 이야기 끝나지 않았나?"


선셋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습니다.


"당신 대체 누구야?! 이름도 모르는 포니가 갑자기.. 날 어렸을 때부터 아는 포니마냥 다가와서 마치 별 일도 아닌 것 마냥 내 개마사를 물어보는데 내가 지금 안 이러게 생겼어?! 심지어 난 당신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


선셋은 잠깐 눈을 끔뻑이더니 생각에 잠겼습니다.


"... 생각해보니 그러겠네.. 이거야 원.. 이래도 괜찮을 줄 알고 착각을 했지. 자. 그럼 제대로 다시 시작해볼까?"


다시금, 선셋은 앞발굽을 내밀었습니다.


"안녕. 선셋 쉬머라고 해. 예전에 선버스트랑 데이트한 적이 있지."


아주 잠시 동안, 스타라이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선셋을 쳐다보았습니다.


"그..그런가요? 어쨌든..좋아요."


갈기를 한번 뒤로 넘긴 후, 스타라이트는 선셋이 내민 발굽을 다시금 잡고 살짝 흔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스타라이트 글리머에요. 선버스트랑 소꿉친구 사이였죠.."


"그래. 잘 알고 있어. 그럼 우리 이제부터..."


선셋은 잠시 어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 오랜만에 이퀘스트리아에 와서 잘 몰라서 그러는데, 요새 포니들이 함께 어울릴 때 흔히 뭐 하면서 놀지?"


"음..."


스타라이트는 턱을 문질거리며 말을 계속했습니다.


"저도 다른 포니들이랑은 잘... 어울려본 적이 없어서.. 해본 거라고 해봤자 제 대의에 동참하라고 설득하거나, 아니면 내가 잘못한 걸 용서해달라고 한 적 밖에 없어서요. 그냥 당신이 하고 싶은 걸 같이 하는 게 편할 것 같네요."


"보드 게임이나 한판 할까?"


어께를 으쓱거리며 스타라이트는 대답했지요.


"네 그거 음.. 좋은 생각 같네요. 저.. 근데, 왜 자꾸 선버스트랑 저를 엮으려고 하시는 건지.."


"어어어어어어어~ 아까 말 했다시피, 걔가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고.. 걔 턱수염 때문에 눈이 돌아간 암말들 떼거리가 걔한테 부담스럽게 달라붙을게 뻔하니까, 아무래도 소꿉친구인 네가 지켜주는것도 좋겠다 싶어서-"


"아니, 왜 선버스트 턱수염에 암말들이 좋다고 달라붙어요?"


"?! ...잠깐.. 설마, 선버스트의 턱수염을 지금껏 못 보기라도 한 거야?"


"봤는데요? 그냥저냥 평범한 턱수염이던데.."


선셋은 엄청 충격을 먹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 왜 그래요? ..그리고 뭐에요? 지금껏 살아온 삶을 통째로 부정당한 듯한 표정을 다 짓고?“


"암말들 설마... 턱수염 별로 안 좋아하는 건가.."


"아니 그런 게 아니고요, 턱수염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는 명백히 개마 취향이긴 한데, 아주 보편적인 취향은 아니라고요. 당신도 암말이면서 어떻게 그런 것도 모를 수가 있어요?"


선셋은 뒤로 돌아 몸을 쪼그리고 홀로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간간히 '스파이시가 뭐가 어때서..' 라는 말이 스타라이트의 귀에 들렸습니다만, 그 의미를 알 수는 없었습니다.


잠시 후, 까닭 모를 멘붕이 약간이나마 회복되었는지, 선셋은 뒤로 돌아 맥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아까 내가 한 말은 그냥 잊어줘... 보드 게임 뭐 할까?"


----------------------------------------------------------------------------------------





잊으실 분은 없겠지만, 이 팬픽 시리즈 세계관에서 선셋은 선버스트의 복제품 비슷한 존재입니다.


비록 여러 우여곡절을 걸쳐 성격 차는 많이 나긴 하지만요.

저작자 표시
신고

졸렬한 포니 번역)선스폰드! - 하 (完)

Posted by 졸역쟁이 기뮤식의노예



전편 링크 : 선스폰드! -상    선스폰드!-중




셀레스티아 공주님 왈 : "오늘 여러 일이 터질 거라는 건 익히 예상했었지만, 이건 아주 의외로구나."






"좋은 의미로 의외라는 건가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선버스트는 물었습니다.


"그거야 두고 봐야 아는 거란다."


"난 이제 죽었다..." 선셋은 벌벌 떨며 작은 목소리로 한탄했지요.


이런 모습의 선셋을 보며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한 쪽 눈매를 날카롭게 올렸습니다.


"이제 죽었다는 포니 치곤 생생히 살아있는 것 같다만.. 하긴, 그게 지금 제일 신경 쓰이는 점이지만 말이다."


선셋은 두 눈을 깜빡이며 자기 본체의 스승을 올려보았습니다.


"바...방금, 농담하신 건가요?"


"선버스트. 처음으로 네가 암말을 데려와서 대견하다 싶어 계속 지켜보고 있었더니, 이럴 줄은 몰랐구나." 


태양의 공주님은 일단 선셋은 무시하고 말을 이었습니다.


"독립된 자아를 가진 개체를 생성하는 주문은 흑마법으로 취급된다는 사실은 아주 잘 알고 있겠지?"


"앗..네. 보통 이런 류의 주문들은 시전자의 영혼의 정수를 이용하던가 아니면--"


"혹은 다른 생명체의 정수를 이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


선버스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오-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사실 이건-"


"일단 너한테서 느껴지는 마력 장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니 네 정수가 소모된 것은 아닌 듯 하고.."


공주님의 눈초리는 점점 심각해졌죠.


"..이 암말을 생성하기 위한 영혼의 정수를 어디에서 끌어 온 거지? 솔직하게 대답하거라. 당장."


"저-절대 그런 게 아니에요! 애초에 전 얘가 자아를 갖게 될 줄도 몰랐단 말이에요!"


"말이 돼는 변명을 하거라. 그럼 저 아이가 겪고 있는 자아 정체성의 혼란이 다 네가 설계한대로만 행동하는 거란 이야기니 지금?"


"아-아니 그게.. 사실은, 행동을 설계할 시간도 없었어요.. 처음 생성되었을 때부터 쟤가 주문식이 잘못됐다면서 소란을 떠는 바람에-"


공주님은 표정을 바짝 찌푸리며 선버스트의 말 도중에 끼어들었습니다.


"그럼 장래 대책 없이 무작정 자아를 지닌 생명체를 창조했다는 이야긴데, 네가 얼마나 무책임한 짓을 저질렀는지 아느-"


"저기요! 무방향성 독립 복제형 개체 생성 주문을 썼는데 자아를 가진 생명체가 떡 하니 튀어나올 줄 누군들 예상이나 했겠냐고요!"


버럭 셀레스티아의 말을 막고 나선 포니는 다름 아닌 선셋이었습니다.


"독립 복제형 개체... 그 주문이? 지금 날보고 그 순수 이론뿐인 주문이 이런 고차원적인 창조물을 만들어냈다는 말을 믿으란 이야기냐?"


"단순히 이론뿐이고 성공 사례가 아예 없었다면, 대체 왜 그 주문이 고수준 마법 사용자를 위한 창조 마법 가이드북에 수록됐겠어요?! 심지어 수록된 책이 한 두 권이 아니구만!"


"허나, 실제로 그 주문은 한 번도 성공적으로 시전된적 없-"


"그거야 그냥 확률로만 따졌을 때의 이야기죠! 성공적인 시전의 사례가 여기 떡 하니 서 있는 거 안 보여요?"


"선셋..! 미쳤어?! 왜 스승님에게 시비를 거는 거야?" 


선버스트는 필사적이었습니다.


"아니, 저 포니가 도통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발굽사레를 치며 선셋은 말을 이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 제공자께서 내가 생성된 게 불가능하다는 듯이 말을 하고 계시니까 갑갑해서 이런다! 왜? 내가 별개의 자아를 가진데다가, 지금 내적으로 완전 혼란스러운 이유도 따지고 보면 저 양반이 음침하게 기숙사 암말 샤워실로 숨어들어가서 그런 거잖아, 지금!"


"잠깐! 네가 그건 어떻- ...아니 아니 내 말은.. 내가 애초에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잖니?"


"어머나~ 세상에! 그러세요?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하실 건데요?!"


선셋은 입고 있던 드레스 자락을 와락 들쳤습니다. 노란색과 붉은 색이 조화된 태양 모양의 큐티 마크가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공주님은 잠시 멍한 얼굴로 선셋의 큐티 마크를 쳐다보았죠. 선버스트는 자리에 주저앉아 안절부절 이마를 문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군. 그런 거였나.."


무언가를 제멋대로 납득한 듯 공주님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말 기발한 장난이었다. 선버스트. 이거, 오랜만에 된통 골탕을 먹었구나."


"이건 뭐..." 건조한 어조로 선셋이 말했습니다.


"하마터면 완전히 속아 넘어갈 뻔 했군요. 맥락 없이 생성되어 자아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생명체 연기를 이렇게 잘 해내실 줄이야.. 이 큐티 마크는 날 흉내낸 건가요? 완전히 닮지는 않았지만 정교한 분장이로군요. 참으로 인상 깊은 연기였습-"


"그만!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 없으니까 잠자코 있어 봐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치는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말을 선셋이 가로막았습니다.


"뭐...라고?"


"도대체 뭐가 이해가 안 돼서 이러시는 거예요? 선버스트가 무방향성 독립 복제형 개체 생성 주문을 찾아냈고, 그 주문식을 복제된 결과물이 매개가 되는 암말의 잔류 마력에 따라 변형되도록 계량한 후에, 그 매개체가 될 암말의 갈기를 구하러 기숙사 암말 샤워실에 숨어들어갔는데 하필 구해온 게 당신의 갈기털이어서 내가 뿅! 하고 태어났다는 게 그렇게 이해가 안 가세요? 잘 생각해 봐요!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잖아요!"


"우리 그냥 불가능하다고 치고 넘어가면 안될까? 응?" 선버스트가 중얼거렸습죠.


"넌 그럴지 몰라도 난 안 그러고 싶거든?! 그래. 만에 하나 그 주문이 성공적으로 시전된적이 없다고 쳐. 그럼 넌 이론 만으로만 전해지던 주문을 실제로 시전한거나 마찬가지야! 이런 업적은 스승님에게 적극적으로 어필을 해야 할 것 아냐! 이 갑갑아!"


공주님은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발동 주문식이 언제나 주문 핵심 마력을 덮어버리는 탓에, 창조물 분야의 대가라는 스타스윌의 항수법을 대입해도-"


"아니, 이 주문을 쓰는데 다들 스타스윌식 항수법을 썼다구요?! 그러니 될 리가 있나!"


선셋 쉬머는 뿔의 마력으로 여러 가지 확률을 계산한 숫자 형상을 만들어 셀레스티아 공주님 앞에 내밀었습니다.


"이 주문의 발동 주문식은 발동 후에 기하급수적으로 퍼지게 되어있는데, 스타스윌식 항수법은 마력이 일직선으로 통할 때를 상정한 이론이잖아요! 그러면 미도우브룩 식 마법부여 공식을 사용했어야지, 뻔한 문제 아니에요?!"


"미도우브룩.. 미도우브룩은 보통 사물이나 자연물에 쓰이는 이론이지, 창조된 생명체에 대입되는 이론은 아니잖니?"


"물론 문서상으로야 그렇게 나와 있지만, 이론 혼합이라던가 응용을 해볼 생각을 해 본 포니가 이퀘스트리아에 한 필도 없었을 리가요. 정말 오랫동안 살면서 그 두 가지를 응용했단 예시를 한 번도 못 보신 거예요?"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대꾸를 하려다가 문득 말이 막힌 듯 약간 머뭇거렸습니다.


"... 그러고보니 700년 전 변방의 마녀 하나가 하던 말이 생각나는구나. 자기가 창조한 *'거울 연못'과 그 효과에 관해 부단히도 설명해대던데..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고 가정해도, 네가 독립된 자아를 가지게 된 이유는 여전히 설명이 되지 않는걸."


*역주 : Too many pinkie pies 에피소드를 참조하세요.


"그것부턴 기숙사 샤워실을 몰래 들락거린 당신 잘못이죠."


선셋은 가슴팍을 문지르며 말을 이었습니다.


"보통 암말의 잔류 마력을 썼다면 용량이 부족해 그 결과물도 아주 한정된 기능을 가질 수밖에 없었겠죠. 하지만 선버스트가 날 구축할 때 쓴 게 하필 몇 천 년 이상을 산 강력한 마력을 가진 알리콘의 갈기털 이였던 탓에 주문이 증폭되어서, 원래는 시전자의 명령 수행 정도만 겨우 할 창조물의 지능이 시전자 본체의 수준으로 껑충 뛰어오른 데다가, 심지어 나를 구축했던 핵심 마력이 닮아지기는커녕 점점 강력해지고 있다고요! 보통 유니콘의 신진대사처럼요! 이래서 내가 자아 정체성에 위기를 겪고 있는 거에요! 누구 씨 덕분에 주문의 위력이 기댓값 이상을 한참 초과하지만 않았어도 이럴 일은 절대, 절대, 절대 없었다고요!"


선버스트는 그 자리에 바짝 쪼그라든 채로 입을 열었습니다. "그거 참... 유익한 설명이었어.. 음..."


"네가 추가 설명을 할 수 있는데도 묘하게 조용하더구나." 선버스트를 보며 셀레스티아는 질문을 던졌죠.


"무서웠거든요.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싶지 않아서.."


"아니 네가 왜 무서워해? 흑마법으로 태어난 존재라고 의심받아보지도 않은 주제에! 정화 명목으로 잿더미가 될까봐 내가 얼마나 살이 떨렸는지 알아?"


선셋은 인상을 팍 쓰며 따졌습니다.


"실은, 너를 어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일주일간 연금해두고 네가 흑마법의 영향으로 엇나가지는 않을지 동향을 살펴볼 생각이었다만.. 진정한 네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심리 요법도 포함해서 말이다. 어흠.. 포니를 잿더미로 만들다니.. 당치도 않은 말이지."


"돌덩이로 만드는 건 괜찮고요? 그럼?"


"... 포니에게 그런 적은 없잖니."


"왜 자꾸 셀레스티아 스승님에게 시비를 거는 거야? 이 정도면 됐잖아!" 


"나도 몰라! 겁도 나고, 어쩐지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분했던 데다가, 스승님이 암말 샤워실을 기웃거린다고 생각이 퍼뜩 든 순간 정신이 대략 멍해져서... 혹시 암말 취향이신거야?"


순간 아차 싶었는지, 선셋은 셀레스티아를 돌아보았습니다.


"아니, 그게 잘못이란 말은 아닌데요.. 그래도 소름끼치잖아요! 학생들이랑 나이 차가 얼만데 왜 거길 출입하시는지-"


"사실 거기엔 변장을 하고 들어갔단다. '공주'라는 직함에 구애받지 않고 다른 포니들과 어울리기 위해서지."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건조한 어조로 해명했습니다.


"대체 왜요? 부족한 거 하나 없는 분이 뭐가 아쉬워서!"


"대신, 오로지 공주란 지위로밖에 포니를 평가할 줄 모르는 이기적이고 아둔한 자들 사이에 둘러싸여있기도 하잖니."


선셋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선버스트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논리대로라면 너도 공주겠네? 축하한다 야."


"그래 그래.. 하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선버스트는 말을 이었습니다.


"흑마법 안 쓴 것도 증명이 되고 했으니까.. 그럼 저 감옥에 안 가도 되는거죠?"


"대신 네가 설계한 주문식을 내가 확실히 분석하기 전까지 가택 근신 처분을 내릴 테니 그리 알아두어라. 네 행동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져야 하지 않겠니? 그나저나 이 아이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이름은 정해두었고?"


"...선셋 쉬머라고 불러주세요."


"그래. 선셋 쉬머 양이 이 땅에 태어난 책임은 너한테도 일부분 있으니 말이다."


"그... 그게 맞겠죠.. 네.."


"앞으로 전 어쩌죠? 뭘 어떻게 하실 계획이신데요?" 선셋이 물었습니다.


"일단은.. 나도 잘 모르겠구나. 생각을 해봐야겠군. 허나.."


공주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네가 진정 무방향성 독립 복제형 개체 생성 주문의 산물이라면, 선버스트의 기억을 일정 부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겠구나. 그렇지?"


"일정 부분이라뇨? 전부 다죠."


"너를 내 제자로 받아들이는 것도 고려해봄직 하겠군.."


공주님은 호흡을 크게 한번 한 뒤 말을 계속했습니다.


"슬슬 갈라 회장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구나. 필시 다른 포니들이 선셋에 관하여 궁금해 할 테니, 내 나중에 따로 너희 둘을 상석에 불러 선셋으로 하여금 무슨 동기로 선버스트를 만났는지 이야기를 시키도록 하겠다."


선버스트는 두 눈을 깜빡였습니다. "저-그-그래도 될런지 모르겠는데-"


"괜찮네요 그거." 머뭇거리는 선버스트를 대신해 선셋이 대답하고 나섰죠.


"그-그-그-그-그치만 쟤랑 나는.. 그게..."


"아까 내가 둘러댄 것보다 더 좋은 변명거리 꾸며낼 자신 있어?"


반박을 하려다가 말이 막힌 선버스트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습니다. "...못 할 것 같다.."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습니다.


"자, 이제 일단락되었으니 먼저 실례하마. 내가 자리를 비웠다고 귀족들이 호들갑을 떨고 있을게 뻔하니.."


그렇게 둘만 남겨두고, 공주님은 갈라 회장으로 돌아갔지요.


"..이렇게 됐네."


"응.."


"...설마 나까지 제자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실 줄이야."


"근데 너.. 이미 스승님 제자나 다름없는 입장 아니었냐?"


"아마도? 아니면 예전 이야기일지도.. 나도 원래는 너였으니까.. 아.. 햇갈리네 이거.."


"그러게."


선셋은 잠시 말 없이 자신의 발굽만을 바라보았습니다.


"만약에 말이야.. 내가 스승님의 가장 뛰어난 제자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뭐?"


"아무리 내가 복제품에 불과하더라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걸 입증할 수만 있다면.."


"아.. 그럼... 어..."


선버스트는 안경을 바르게 고쳐 쓰고 말을 이었습니다.


"나쁠 건 없겠네. 내가 평소 할 만한 짓은 절대로 아니긴 하지만-"


"!!.. 그럼 해 보겠어... 해내고 말 거야!"


"아... 잘 해봐 그럼.."


그렇게 둘은 자리에 앉아 무도회장의 거대한 문을 바라보았습니다.


"... 우리 지금 데이트하고 있는 건가?"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선셋이었지요.


"비슷하겠지. 뭐.. 애초에 데이트 하는 시늉 한번 내려다가 이 소란이 났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흠! 흠!"


"뭔데?"


"내가 만약 자아가 없었다면... 지금쯤 우린.. 알지?"


"뭘 알아?"


"...지금쯤 키스라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아... 그... 그랬을까?"


"해보자 그럼."


"뭣?!"


"키스.. 해보자고... 딱 한 번 정도는 괜찮잖아? 어렵게 생각하지 마... 난 암말 버전의 너나 다름없으니까."


"어...음... 아... 알았어... 해보자.."


몇초간, 둘은 어색한 시선으로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이윽고, 둘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점점 숙였죠.


마침내, 둘의 입술이 맞닿았습니다. 그렇게 4초 정도 흘렀으려나요..




서서히, 둘은 입맞춤을 풀고 상대방을 바라보았습니다.







"...윽... 역시 존나 이상하네 이거." 선셋이 말했습니다.


"동감이다.. 다시는 하지 말자."








====================================================================================================



선스폰드! 완.


다음작 선쉽드! 로 이어집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블로그 이미지

기뮤식의노예

최근 마이 리틀 포니 국내 방영으로 인해 인터넷 검색으로 이 곳에 찾아오시는 12세 미만 미성년자 여러분들과 부모님들에게 안내말씀 드립니다. 이 곳에 게시된 번역된 만화 및 소설류들은 아직 자아 형성이 덜 된 미성년자들이 보기엔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이 허다하므로, 미성년자 여러분은 열람을 자제해 주시길 바라며, 해당 부모님들은 철저히 관리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근데 이렇게 써 봤자 모바일에서는 이거 못 보는데..

카테고리

전체 (945)
꼐..꼐임 (166)
배설한 글 (62)
번역물(시리즈물) (225)
번역물(단편 및 기타) (465)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