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중47,작업중15

Posted by 졸역쟁이 기뮤식의노예









요사이 나라에 일들이 많았죠. 


다 나라가 성장을 하느라 진통을 겪고 있는 거겠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주목하느라 번역에는 잠시 한눈을 팔게 되었습니다. 밀린 게 많고, 보고 싶으신 것도 많을 테니 저도 슬슬 제 본분을 다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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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1~8   9~10 11~15 16~20

2부 : 1~5 6~10 11~15 16~20 21~26

3부 : 1~5 6~10 11~15 16~20 21~25 26~30 31~32

4부 : 1~5 6~15 16~23





잠시 저 여성 떼껄룩 아가씨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여기 나오는 캐트리나는 마이 리틀 포니 1세대에 나왔던 악당으로, G1 티비 스페셜 Escape from Catrina의 주요 악역입니다.


캐트리나는 '마녀의 풀'로 만든 물약의 약기운을 이용해 거대화 및 여러가지 마법을 부리는 악역입니다. 그리고 저 만화에서 결혼했지만 사별했다고 나오는 '렙'은 원래는 캐트리나의 부하로, g4의 변신충처럼 여러 생물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캐트리나를 짝사랑하고 있기도 하죠.


달아난 부쉬울리들 대신 포니들을 노예로 삼기 위해, 부하 '렙'을 시켜 '빛의 무지개'(지금으로 따지자면 조화의 원소 격인)를 훔쳤고, 우여곡절중에 이 이야기의 주요포니중 하나인 포니, 베이비 문댄서를 납치해 마녀의 풀 용액이 담긴 웅덩이에 빠트리려고 했지만 부하인 렙에 의해 저지당합니다. 그리고 대신에 그 웅덩이에 빠질 위기에 쳐하죠.




구덩이 벽에 손톱을 박아넣고 위태위태하게 버티던 캐트리나는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맹새한 뒤, 본인의 힘으로 마녀의 풀 물약을 만드는 기계를 부숴버립니다.


사건도 해결되었으니 이어지는 포니들의 파티.. 거기에서 캐트리나는 렙과 함꼐 친근한 분위기로 어디론가 나가죠.


이게 대략적인 g1에서의 캐트리나의 행적입니다. 근 몇 년 동안 잊힌 채로 있다가, 근육 유동 작가분에 의해 재발굴되었죠.


과연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저 떼껄룩 미망인이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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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제 1장 제 2장 제 3장 제 4장 제 5장 제 6장 제 7장 P1 제 7장 P2 제 8장 제 9장 제 10장 제 11장 제 12장 p1 제 12장 p2 제 13장 제 14장p1



캐이댄스의 바람과는 다르게 점심 식사 시간은 너무나 늦게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아마도 점심 식사 시간이 오늘 일과 중 갑자기 가장 기대되는 시간이 되었으니 기다리기가 지루해서 그런 거겠지. 평소처럼 선셋, 샤이닝 아머와 밥을 먹는 무난한 일과 대신 플뢰르와 진중하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오늘 아침, 선셋과 신치 교장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선셋은 교내 식당 바깥에서 유난히 혈기 넘치는 작은 태양의 공주를 기다렸다.


다른 학생들이 유난히 후다닥 자리를 비키는 곳만 찾으면 됐으므로, 선셋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선셋의 몸집이 꽤 컸기도 했거니와..


"선셋! 여기야!"


호박색 알리콘은 저 멀리 복도 쪽에서 캐이댄스를 힐끔 쳐다보더니, 곧장 캐이댄스가 있는 곳까지 걸어왔다.


"어, 캐이댄스. 무슨 일이야?"


"저... 오늘 아침에 같이 이야기하기로 했었잖아. 기억 안나?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 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사랑의 공주는 잠시 말을 머뭇거렸다.


"그러니까.. 옥상? 거기가 좋겠지?"


이 이야기를 다른 포니들이 듣는 걸 선셋도 달가워하진 않겠지.. 캐이댄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제안에 선셋은 한 쪽 눈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곧 뭐 어떠냐는 듯 어께를 으쓱하더니 한 쪽 날개로 캐이댄스를 감싸 쥐고는 자신의 마력으로 시공간에 균열을 만들어냈다. 또 한 번 선셋이 뜻도 모르고 한 '페가수스식 애정 공세'에. 캐이댄스의 양 볼은 삽시간에 화끈 달아올랐다. 뭐, 선셋 나름대로 신뢰를 나타내는 표현이리라. 라고 캐이댄스는 생각했다. 사실,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일수도 있지만.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봐."


한 차례의 순간이동 후, 교내 식당의 음식 냄새 대신, 캔틀롯 고지대의 상쾌한 바람을 캐이댄스는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배는 고팠다. 음식 냄새를 맡고만 와서 그런지 공복감은 심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었으므로 캐이댄스는 일반 포니의 몇 배는 되는 양을 먹어치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알리콘의 주린 위장을 달랬다. 이 일이 끝나면 빨리 식사를 하는 게 좋겠다. 캐이댄스도 명색이 공주이니만큼 살짝 새치기를 해도 별 말 하는 포니는 없을 테지.


선셋의 날개 품에서 나오자, 선셋과 이야기해야 되는 소재 한 가지가 더 떠올랐다.


그래서 캐이댄스는 고개를 돌려 선셋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선셋의 갈기가 바람에 멋들어지게 휘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저 활짝 편 날개.. 평범한 삶을 사는 페가수스라면 꿈도 못 꿀 강대한 익력(翼力)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분명 캐이댄스는 포니를 따질 때 외모에만 정신이 팔리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눈앞의 선셋은 퍽 멋있어 보였다. 아니.. 멋있어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캐이댄스는-


'그만! 더 이상 허튼 생각 말자. '


속으로 빽 소리를 지르며, 캐이댄스는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혔다.


캐이댄스는 선셋을 동경했다. 그게 다다. 동경하는 감정 때문에 판단을 어지럽혀선 안 된다. 캐이댄스는 사랑의 공주지, 골이 빈 철부지 소녀가 아니다!


절친한 친구를 보며 짝사랑에 빠지는 그런 일은 절대 해선 안 되었던 것이다!


특히나 그 친구와 어떤 수말간의 연애를 캐이댄스가 밀어주고 있는 이 상황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선셋과 샤이닝 아머는 캐이댄스가 이어줘야 할 커플이었다! 비록 계산 결과가 좀 나쁘게 나오고 또 솔직히 선셋의 곁에는 선셋을 잘 꿰고 있고 그 불같은 성격을 공석에서든 사석에서든 잘 제어해줄 '다른 포니'가 필요할지라도, 둘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다면 캐이댄스는 그걸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샤이닝 아머의 자신감을 촉진시키고, 선셋의 감정을 잘 발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주어 둘이 서로 어울리는 한 쌍이 되게끔 이끌어줘야만 한다.


이게 해답이다.


이게 모두에게 해피엔딩인 것이다.


그리고 해피엔딩으로 이끌 책임은 오롯이 캐이댄스가 쥐고 있었다!


전에 어머니의 사랑을 잃게 될까봐 겁에 질려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던 선셋을 이미 한 번 외면한 이상, 캐이댄스는 선셋에게 빚을 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캐이댄스는 선셋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사랑해 줄 포니를 준비해주는 것으로 그 빚을 갚고자 했다. 셀레스티아 이모님이 주는 어머니의 사랑. 캐이댄스가 주는 완전 플라토닉한 친구로서의 사랑. 샤이닝 아머가 주는 남편이자 연마로써의 사랑... 비록 캐이댄스가 샤이닝 아머를 철저히 단련시켜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래?" 선셋이 질문했다.


캐이댄스는 속으로 약간의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지금 자기 마음은 선셋에게 명백하게 끌리고 있는데, 선셋은 이런 마음을 헤아리지도 못한 채 샤이닝 아머만 생각중일테고, 정작 샤이닝 아머(우습게도 캐이댄스와 가장 잘 어울리는 포니라고 계산된)는 이 자리에 없고 지금쯤 원래 자기 친구들이랑 속 편하게 밥이나 먹고 있을 테고.. 모든 게 복잡했다.


"신치 때문에 불렀어." 감정을 추스르며, 캐이댄스는 선셋의 질문에 대답했다.


호기심 반, 걱정 반이 섞인 표정이 선셋의 얼굴에 떠올랐다. 인상을 약간 일그러뜨리며 선셋은 자리에 앉아 앞발짱을 꼈다.


"그 개년 일은... 내가 처리할게. 아무리 어머니가 너 보고 직접 해결하라고 했어도 이거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분노에 찬 한숨을 내쉬며 선셋은 말을 덧붙였다.


"물리적, 마법적 수단을 동원하는 건 자제할게. 넌 분명 그런 걸 싫어할 테니까 필요하면 각서라도 써 둘게. 그 쓰레기 같은 년을 상대하는데 너 같은 착한 포니의 발굽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내가 하는 편이 낫지."


아무리 선셋이 스스로 삼가겠다는 말을 했어도, 어쩐지 불편한 감정이 캐이댄스의 가슴에 남았다.


"...너, 지금 예전의 너나 할 법한 소리를 하고 있어. 알아?"


"잘 알고 있어. 어쩌면 예전의 내 방식이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선셋은 분노에 찬 어조로 대답하며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은 거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와도 같았다.


"너무 걱정 마. 뭐 아주 흉악한 짓을 저지르려는 건 아니고, 교육부 장관에게 찾아가 공주 명령으로 감투 벗기 싫으면 당장 신치를 파면하라고 귀띔이나 좀 넣어두려고."


캐이댄스는 화들짝 놀라 외쳤다. "잠깐, 잠깐만! 그러면 안 돼지!"


선셋 또한 놀란 표정으로 캐이댄스를 쳐다보다가, 이내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말을 받았다.


"뭐가 안 돼?! 신치를 즉각 잘라버릴 수 있는데!"


"생각해 봐! 직접 우리의 권한을 이용해서 신치를 압박한다면, 신치는 자기가 가진 모든 연줄들을 동원해 우리가 악의를 가지고 정치 공세를 펴고 있다고 언론 플레이를 펼치겠지. 그렇게 되면 일만 더 복잡해지고, 별 이득 없이 우리 명성만 더럽히게 될 거야. 벅 위더스 일을 생각해 봐. 신치가 설마 그걸 안 걸고넘어질까?"


이건 전에 캐이댄스가 신치에게 벅 위더스의 퇴학을 요구했을 때 신치에게 직접 들은 협박의 내용이었다. 비록 선셋과 셀레스티아한테는 그 날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이야기해주지 않았지만 말이다.


심호흡을 하며 가슴을 진정시킨 뒤 캐이댄스는 설명을 계속했다.


"벅 위더스는 스트롱 위더스의 아들인 거 잘 알고 있지? 그리고 스트롱 위더스는 너한테 변신충이란 누명을 씌우려고 했던 포니고. 내가 이미 벅 위더스를 퇴학시키라고 압력을 넣은 이상, 신치는 전에 있던 일로 우리들이 스트롱에게 보복성 압력을 가하려고 한다고 물고 늘어질 거야. 결정적으로 벅 위더스가 그 날 샤이닝 아머에게 가한 폭력을 목격한 포니는 너랑 나 밖에는 없으니 조금 분한 말이지만 모르는 포니가 볼 땐 실제로 우리가 보복을 가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선셋의 구겨진 표정은 더 일그러지기만 할 뿐이었다.


"일단, 난 천성이 더러워서 명성이 더러워지든 말든 그딴거 신경 안 써. 정치적 후폭풍이 그렇게 걱정된다면, 좋아. 넌 빠져도 돼. 어차피 나 혼자 한 일로 해둘 생각이었어."


이렇게 말하며 선셋은 캐이댄스에게로 서서히 걸어와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당장 깡패들이 내가 좋아하는 얘를 괴롭히고 있는데, 다른 포니들의 시선 때문에 직접 정의를 구현할 기회를 나 몰라라 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넌 포니 단단히 잘못 본 거야."


선셋의 날카로운 시선 아래에서 캐이댄스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부작용은 자기가 다 감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할 일은 해야겠다는 폭탄선언을 하는 선셋의 모습을 보며 느끼는 바도 있었다. 좀 순탄하게 살아보겠다고 당장 보이는 불의를 외면하자는 말을 꺼내다니..


부끄러웠다. 또 복잡한 일을 회피하려고만 하는구나. 나..

 

선셋은 지금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캐이댄스와 함께 옥상 위로 올라오기 전에도 여러 가지로 속이 복잡한 것 같아보이긴 했지만...


물론 선셋은 언제나 욱 하는 성격이긴 했지만, 캐이댄스가 알기론 선셋이 화를 내는 건 대부분 진심으로 화를 내는 게 아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감정적 문제를 외면하기 위해 짐짓 화를 내는 시늉을 하는 것에 가까웠다. 이모님의 사랑을 캐이댄스에게 뺏길까봐 성질을 냈었던 그 때 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 선셋의 분노는 아주 차가웠고 평소처럼 강하게 표출되지도 않았다. 그 점이 캐이댄스는 매우 걱정스러웠다.


"선셋... 너 지금 마음에 걸리는 거 있지?"


선셋은 눈을 부릅뜨고 캐이댄스를 노려보았다. 비록 아까 신치와 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만큼의 적의는 담겨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뜬금없이 뭔 소리야? 거기에 관해선 아까 다 이야기 하지 않았냐고.."


고개를 저으며 캐이댄스는 대답했다.


"아니, 신치랑 벅 위더스 말고 지금 너에게 무슨 일이 있는 질 말해보라고 하는 거야. 아까부터 묘하게 예민해져있던 것 같기에. 선셋. 솔직히 말해줘. 무슨 일 있었어?"


캐이댄스는 마음속으로 선셋이 제일 신경쓸만한 주제 여러 가지 중 하나를 골라보았다.


"..혹시 샤이니랑 잘못된 거라도.."


이름이 나오기가 무섭게 선셋은 격하게 몸을 움찔거렸다. 제대로 찌른 모양이다.


"아, 아니.."


뻔한 거짓말인걸 캐이댄스는 쉽사리 간파할 수 있었다.


"아니 그게.. 좀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있어서."


"그렇구나."


말 안할 생각인가.. 쟤 성격 상 너무 급하게 추궁해도 좋을 건 없지. 샤이닝 아머랑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낸 걸로만 만족하며, 캐이댄스는 지금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눈앞의 절친한 친구를 두 앞발을 펼쳐 목덜미채로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도와줄게 있다면.. 아니, 그냥 속이라도 털어놓고 싶다면 말만 해. 언제든 들어줄 테니까."


한참동안 말이 없던 선셋도 한쪽 앞발을 들어 캐이댄스의 등을 끌어안았다. 캐이댄스의 코에 선셋의 갈기 향기가 풍겨왔다. 못 맡아본 냄새가... 봄철 초목의 냄샌가? 희한하네. 걔가 쓰는 샴푸들 중 그런 향은 없었는데..


찾아오는 호기심과는 별개로, 캐이댄스는 그 향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선셋을 안은 두 다리에 힘을 더 꽉 준 후 친구의 냄새를 두 폐가 꽉 차도록 들이마셨다. 비록 침대 안에서만큼 편안함은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선셋과의 포옹을 캐이댄스는 절대로 풀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옥상 문이 덜컥 열리고 세 필의 암말들이 들어와 선셋과 캐이댄스의 단 둘만의 시간을 방해했다. 그 중 제일 키가 작고 포동포동한 노란색 털가죽의 암말이 이 광경을 보더니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은 뒤 다른 둘을 돌아보며 말을 꺼냈다.


"하! 것 봐! 내가 선셋 공주님이랑 캐이댄스 공주님이랑 커플이라고 그랬지? 샤이닝 아머는 그냥 선셋 공주님이 재미 삼아 욕구 해소 삼아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였다구! 캐이댄스 공주님은 너무 섬세하신 분이라 꽃 다루듯 다뤄야 되는 분이니까!"


캐이댄스가 만끽 중이었던 선셋의 따뜻한 포옹은 그 말이 나온 순간 숨 막히는 조르기로 바뀌었다. 아까 말을 꺼낸 암말의 뒤편에서 있던 두 포니는 아연실색을 하며 늦게나마 험악한 분위기를 파악한 노란 털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너희 셋.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지?"


싸늘한 목소리로 선셋은 물었다. 방금 들어온 세 필의 포니들은 부랴부랴 땅바닥에 엎드렸다.


"아! 그거. 내가 오라고 한거야."


선셋은 설마 하는 벙찐 표정으로 캐이댄스를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맘에 안 드는 게 있을 때 늘 짓는 그 찡그린 표정을 지으며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캐이댄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야...! 뭐하려고 저딴 것들을 불렀어?"


캐이댄스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선셋과 눈을 맞췄다. 더 이상 선셋이 화가 난다고 화염구를 자신에게 쏠 일은 없다는 걸 속으로 단단히 상기하며, 캐이댄스는 풀려오는 뒷다리에 힘을 바짝 주고 설명을 시작했다.


"도우려는 네 마음은 알겠어 선셋. 하지만, 아무리 진짜로 할 생각이 없다고 해도 다른 포니를 험악한 말로 협박하는 건 잘못된 거야. 자. 이렇게 다들 모였으니까 쟤네들에게 사과했으면 좋겠어."


"너 지금 장난해?! 야, 쟤네들이 너한테 어떤 짓을 했는데...!"


이를 앙다물며 선셋은 성난 목소리로 항변했다.


캐이댄스는 잠깐 말없이 선셋의 어께에 손을 올리고 얇은 한숨을 쉬었다. 선셋이 왜 화를 냈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혼자만 남겨지는 고통을 선셋은 매우 잘 알고 있었으니, 친한 친구가 같은 고통을 오랫동안 당한 걸 절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으리라.


"용서했어. 잊진 않을 테지만.. 자. 이제 네가 괴롭힌 것에 대해 사과할 차례야!"


뒤의 말의 억양에 무게를 더 실으며 캐이댄스는 말했다.


선셋은 이를 갈았다. 하지만 곧,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힘이 풀린 표정으로 캐이댄스를 쳐다보았다.


"알았어. 참 나..."


그리고는 옥상 문 앞에 서 있는 세 필의 포니를 바라보며,


"플뢰르, 새시... 아까 일은 사과할게."


또 한 번 이어지는 한숨.. 이번엔 약간 엷은 한숨이었다.


"뭐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약간 진심으로 미안해지고 그런다..."


"아-아뇨, 공주님. 우리 잘못인걸요!" 플뢰르는 바닥에 넙죽 엎드린 채로 선셋을 보고 이야기했다.


"너희가 아무리 이기적이고 멍청한 짓을 했다지만, 그렇다고 내가 잘못한 게 없어지는 건 아니지. 생각해보면 그냥 화풀이 상대가 필요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네. 그래서. 미안."


두 암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선셋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사과가 끝나자 선셋은 아까 근거 없는 소문을 지껄였던 노란 암말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너, 캐이댄스랑 나랑 커플이라는 쓰레기 같은 소리는 대체 어디서 주워듣고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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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학교 내에 돌고 있는 소문을 듣자, 선셋은 어퍼 크러스트를 당장 학교 옥상에서 떠밀고 싶은 생각을 억지로 참았다. 근거 없이 떠도는 소문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확장되는지 선셋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니...


구역질이 났다. 배가 텅 빈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교내 대다수 학생이 샤이닝 아머를 선셋의 무슨.. 애첩 비슷한 존재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열통도 터졌다.


정작 선셋 본마는 그러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는데도.. 


옆자리에 있는 캐이댄스도 그 루머를 듣고 잠깐 넋이 빠졌었다가, 곧 선셋처럼 분노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하긴, 누군가를 엔조이 식으로 먹고 버리는 걸 대단히 혐오하는 사랑의 공주가, 절친한 친구 선셋이 그와 같은 오명을 쓰고 있는 것을 두 눈 뜨고 용납할 리는 없었으리라.


근데 캐이댄스 쟨 내가 인간 세상에서 벌인 짓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모든 걸 털어놓은 그날, 캐이댄스는 뚜렷한 대답을 해 주지 않았었다. 그저 뉘우쳤으니 됐고,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겠다 라는 말만 했었지.


"좋아. 지금 이 기회에 단단히 말해두겠어."


선셋은 노란 털 유니콘을 보며 단호한 어조로 어두를 열었다.


"나랑 샤이닝 아머는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친구 관계야. 걔 옆에 있으면 즐겁고, 성격적으로도 본받을 면이 많다고 개마적으로 생각하고 있어. 다들 내가 걜 무슨 욕구 배출용으로.. 데리고 다니는 거라고 단단히 착각하나 본데..!"


다들 선셋과 샤이닝 아머를 그동안 어떤 시선으로 쳐다봤을까? 선셋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야! 샤이닝이랑 알게 된지 고작 1주일밖에 안 됐거든?! 그리고 만약 잠자리를 같이 할 정도로 관계가 더 깊어진다고 쳐도, 강제성 없이 샤이닝의 의견을 존중할 생각이니까 그렇게 알아둬! 내 말 잘 알아듣겠어?!"


물론 선셋과 샤이닝의 관계가 그 정도까지 진척될 전망은 전무했으니, 선셋의 울화는 더 치밀어 올랐다. 그래도 선셋이 이퀘스트리아를 떠나기 전에 샤이닝 아머에게 '공주가 먹다 버린 놈.'이라는 오명은 지워내고 가야 했다.


이번엔 캐이댄스도 선셋이 성질을 부리는 걸 막지 않았다. 그저 선셋의 옆에서 눈앞의 바들바들 떨고 있는 세 필의 암말을 노려볼 뿐이었다. 캐이댄스도 선셋만큼 단단히 화가 난 것일까.


"나랑 선셋이랑 매우 친밀하게 지낸다고 해서 그게 꼭 우리가 사귄다는 이야기는 아닌데, 왜 다들 바보 같은 착각을 했는지 원.. 너희들. 이 루머를 해명하는데 꼭 협조해줘. 알았지?"


선셋에 비해선 꽤 점잖은 어조긴 했지만, 이 서중 그 누구도 사랑의 공주에게 저런 당찬 면모가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으리라.


선셋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옆에서 캐이댄스의 말을 거들었다. 따지고 보면 근본적인 원인은 너무 들이댄 선셋에게 있었지만, 그렇다고 캐이댄스랑 선셋을 커플로 엮어버린 건 질 나쁜 바보짓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게다가 캐이댄스는 순수하고 자상한.. 어쨌든 선셋과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는 모범적인 포니 그 자체였다. 그런 포니가 선셋에게 연애 감정을 품는다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지...!


"아..알겠습니다.. 캐이댄스 공주님... 저..전..그저 너무 말이 되는 것 같기에 그만-"


허겁지겁 변명을 하는 어퍼 크러스트의 모습을 보자니 선셋의 분노는 또 한 번 치밀어 올랐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아 선셋은 캐이댄스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너 미쳤어? 뭘 믿고 저런 얘한테 일을 맡겨?!"


"너 미쳤어? 그럼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지는 걸 그냥 보고만 있자고?"


캐이댄스는 곧바로 선셋의 말을 받아쳤다.


"너도, 샤이닝 아머도 내 소중한 친구야! 말도 안 돼는 이유로 모함을 당하고 있는데 가만있으라고? 그래선 안 된다고 아까 가르쳐준건 너잖아! 안 그래?"


할 말이 없어 선셋은 몇 발짝 물러났다. 캐이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퍼 크러스트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좋아. 사과 받아들일게. 그런 만큼 너희도 노력해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캐이댄스의 표정엔 여전히 떫은 기운이 역력했다.


당연히 그렇겠지. 선셋도 뭐 싸고 뒤 안 닦은 기분인데, 선셋과 사귄다느니 하는 어이없고 근거 없는 루머에 무고하게 희생된 캐이댄스의 심정은 오죽할까.. 하지만 이미 대화는 끝났고 본마가 사과를 받아준다고 한 이상 별 수 없었다. 넘어가는 수밖에.


"자.. 그럼 사과도 받았고, 다짐도 받았겠다.."


선셋은 이야기를 꺼내며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사실 이 시점에서 캐이댄스가 갈갈히 뛰며 난동을 부린다고 한들 사태가 더 나아질 리도 없었으므로, 오히려 캐이댄스가 대단한 자제심을 발휘한 것에 대해 선셋이 감사를 해야 할 지경이었다.


"..가서 밥이나 먹자고."


이렇게 말하고서 선셋이 발굽을 땔까 하는 순간, 옆에서 캐이댄스가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흠..! 한 가지 또 해야 할 일이 남았어. 너희 셋. 학교에서 너희 정도 위치라면 교내에 떠도는 온갖 소문들을 다 접할 수 있겠지? 거기에 관해 물어볼 게 좀 있는데."


캐이댄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요새 신치 교장이 좀 과도하게 총애하는 학생들에 관해 떠도는 소문들이 있으면 전부 말해줘."


세 필의 암말은 잠시 동안 난처한 시선을 공유하다가, 곧 다시 캐이댄스를 쳐다보았다.


"학교 스포츠 팀이 중요한 경기에서 이기면 그 학기 시험은 무조건 최고점을 준다는 소문이 있던데.." 플뢰르가 먼저 운을 때었다.


"학부모가 학교에 돈을 기부하거나 혹은 영향력 있는 포니한테 추천서를 써줄 경우, 그 학부모에게 시험 답안을 알려준다는 소문도 있고요."  새시 새들스가 한 마디 더했다.


"학교 이사회원들 몇몇이랑 은밀히 회담을 가진다고 들었어요.." 어퍼 크러스트가 유난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셋은 얼굴을 찌푸렸다. 처음 두 개야 그렇다 쳐도, 세 번째 것은 절대 일개 학생이 캐낼만한 소문은 아닌데?


"어쩌다 그런 걸 다 알게 된 거야? 근거 있어?"


"..어퍼 크러스트의 부모님이 이사회 회원이시거든요 .." 


지래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나고 있는 친구 대신 플뢰르가 대답해주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캐이댄스는 고개를 좌우로 한 번 저은 후 목청을 가다듬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흥미로운 사실인걸... 너희들. 신치 교장에 대해서 어떻게들 생각해?" 


세 필은 또 한 번 난처한 시선을 공유했다. 대표해서 말을 꺼낸 건 플뢰르였다.


"저... 아.. 아뢰옵기 황송하지만.. 그동안 별 생각 없었어요. 우린 학교에서 혜택을 많이 받고 있는 축에 속하는 학생들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제가 심화반에 들어가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이런 특별대우 때문이었지 순수한 내 실력은 아니라는 걸 저도 잘 알고 있는지라... 언제나 떳떳한 기분은 아니였어요.."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하시지. 지금 나랑 캐이댄스가 정면으로 쏘아보고 있지만 않다면, 신치가 자기들 눈앞에서 그 어떤 부정이나 패악질을 부려도 옳다구나 더 해라고 부추길 년들이... 특히나 쟤네들의 부모라는 작자들이 내 자식좀 잘 봐주십사 하고 신치에게 돈을 바친 정황이 뚜렷해진 지금, 선셋은 저 셋을 결코 곱게 봐줄 수가 없었다.


"그래, 신치가 더러운 짓을 해대는데도 자기에게 떡고물이 떨어지니 나 몰라라 했다? 그리고 신치의 애완동물중 하나가 다른 학생을 쥐어 패고 다니는데 안 보이는 척 하고 무시하면 다야? 그러고도 니들이 포니새끼야?"


"저-저흰 고작 학생인걸요.. 여전히 상당 부분을 부모님에게 의존하고 있는지라.."


샤이닝, 혹은 벅에게 괴롭힘을 당한 다른 학생들, 그리고 교내 여러 차별행위에 대한 비난이 자신들에게 향하자 새시는 자기변호를 하기 시작했다.


"부-부모님들이 학교에 말을 넣어둔 이상. 저희라고 뭘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선셋에게 자중 좀 하라는 의미가 담긴 예리한 눈빛을 쏘아준 뒤, 캐이댄스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3마방을 보았다.


"그래. 신치를 실각시키는 것까지 직접적으로 도와주기는 힘들겠구나.. 적어도 너희들이 신치의 모든 걸 다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겠어." 


또 한 번, 세 필은 난처한 시선을 공유했고, 선셋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친구를 돌아보았다.


"잠깐. 네가 그걸 왜 신경 쓰는 건데? 신치는 아까 분명 내가 알아서 처리한댔지?"


"그래. 알아. 그래도 너한테만 짐을 떠맡길 생각은 없어. 그리고 비록 우리에게 교육부 장관에게 직접 연락을 해서 신치를 사퇴시킬 권한이 있다고 해도, 그냥 우리 둘이서 쌩으로 압력을 넣는 것 보단, 이렇게 신치가 부정을 저질렀단 증거나 증언들을 수집한 뒤에 언질을 넣는 게 더 바람직할거야. 만약 신치가 이건 정치적 복수라고 나한테 오명을 씌우려고 한들, 적절한 정황을 공개하며 내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면 오명 정도야 빠르게 씻을 수 있는 거고."


선셋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훨씬 빠르고 또 선셋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왜 일부로 돌아가는 길을 택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캐이댄스를 설득하는 건 아무리 선셋이라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나 며칠 뒤에 다른 세상으로 건너갈 테니, 뒷감당은 그냥 나한테 맡겨라.'라고 쉽사리 까발릴수도 없는 처지였다. 게다가 캐이댄스는 묘한 곳에서 바보같이 고집을 부리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당초에 선셋이 세웠던 다짜고짜 교육부 장관실에 쳐들어가 신치를 해임시키라고 으름장을 놓는 것보단 캐이댄스의 방법이 더 이성적인 해결법 같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좋을 대로 해. 그럼.."


마지못해, 선셋은 힘 풀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굴에는 싫은 티를 팍팍 내면서 말이다.

 

"자. 이야기 끝났지? 밥 좀 먹으러 가면 안 될까? 점심시간 고작 15분밖엔 안 남았거든? 게다가 어제처럼 웬 무식한 놈 하나가 샤이닝에게 해코지라도 할까 봐 걱정돼서 죽겠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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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 아머는 지금 매우.. 혼란스러웠다.


극도로 말이다.


아까 멈춘 시간 속에서 선셋 공주와 보낸 2시간 동안에 일어난 일 때문이었다. 선셋 공주는 샤이닝을 어디론가 데리고 가더니, 분위기를 잡다가 갑자기 그만두고는 못 알아먹을 소리만 늘어놓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신경 쓰였던 건 여신이나 다름없는 포니가 마음이 꺾인 채로 자기의 품 안에서 목 놓아 울었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도저히 예전의 샤이닝 아머를 두 앞발로 들고는 당당하게 키스를 한 그 포니와 같은 포니라고는 연상하기 힘든, 절망에 빠진 초라한 한 포니의 모습이었다.


'엄청.. 슬퍼보였어..' 샤이닝 아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선셋이 트와일라잇이랑 이야기할 때나, 샤이닝 아머와 같이 학교에 걸어갈 때만 보면 분명 선셋은 평소의 선셋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아까 샤이닝 아머랑 단 둘이 같이 있을 때 선셋이 으레 짓던 당당한 표정은 깡그리 사라졌고, 침울한 표정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샤이닝 아머는 더욱 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종을 잡을 수가 없었다.


"샤이닝. 공주님들은 안 오신 데냐?"


늦게야 가퍼가 자기를 불렀다는 사실을 알아챈 샤이닝은 눈을 끔뻑거리며 입을 땠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는데?"


"풉..! 야. 학교에 두 공주님 끼고 등교한 포니에게 물어봐야지, 그럼 누구에게 물어보겠냐?"


"아, 별 사이 아니라니까! 요놈들이 진짜...!"


질시에 찬 친구들의 시선을 온 몸으로 맞아가며 샤이닝은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캐이댄스는 말 할 것도 없고, 심지어 선셋이랑도 쟤네들 앞에서 대놓고 제대로 키스한 적도 없는데..! 


그러니까 전날에 침대에서 한 것 같은 그런...


아차! 아차! 진정하렴 주니어. 착한 생각. 착한 생각. 


"그냥 공주님들끼리 할 이야기가 있어서 안오는가보지 뭐. 안 그래도 선셋 오늘 아침에 무슨 일을 할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나한테도 설명 안 해 주더라."


시간을 멈출 수 있는데도 말이지.. 그렇담 못해도 10초 내에 대화 끝내고 올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어쩌면, 우리랑 같이 다니는 게 자기 평판만 더럽히는 일이라는 걸 드디어 깨닫고 거리를 두고 있는 거 아냐?"


8-비트가 날개를 가볍게 털며 자기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흠... 그게 제일 말이 되는 소리인 것 같네만.."


포인덱스터가 나비넥타이를 바로잡으며 8비트의 말을 거들었다.


"...그럼 왜 너희들은 나랑 한 자리 건너 띈 곳에 앉아 있는 건데?" 


샤이닝 아머는 뚱한 표정으로 건너편 자리의 친구들을 쳐다보며 질문했다.


"아무리 우주의 질서가 회복되어 네가 다시 공주님 관심도 못 받는 찐따 신세로 돌아왔다지만, 혹시 모를 만에 하나의의 가능성이 있는 이상, 공주님들 소유의 수말 옆 두 자리는 비워두어야 될 것 같아서 말이지."


여전히 질투심 어린 가퍼의 빈정거림을 듣자, 샤이닝 아머는 대꾸할 기력도 없어 의자 등받이에 털썩 몸을 기댔다. 


"그런 사이 아니라고 했잖아 진짜..."


"여기 설득력 없는 말을 하는 포니가 있네요.." 8비트가 건조한 목소리로 그 말을 받아쳤다.


그 때, 왼쪽 구석에 앉아있던 한 어스 포니, 치어릴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 캐이댄스 공주님이 점심시간 때마다 너를 선셋 몰래 어딘지 모를 곳으로 끌고 가니까 말이야.. 누구도 그렇게 생각할걸?"


샤이닝 아머의 친구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여 동의의 뜻을 표했다.


"끙...! 캐이댄스는 그냥.. 나 데이트 어떻게 할지 코치해주는 거라고. 걘..어... 내가 선셋이랑 어떻게 해야 하나 점심시간에 와서 알려주는 것뿐이야."


물론 조언은 태반이 쓸모없는 거였지만 차마 면전에서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어이구, 우리가 그 말을 잘도 믿겠다.." 가퍼가 퉁명스럽게 툭 쏘았다.


샤이닝은 또 한 번 짜증 섞인 신음소리를 흘렸다. 선셋이 '사실은 캐이댄스도 너한테 마음이 있다.'고 귀띰해준게 생각나 마음이 더 심란했다. 샤이닝 아머는 선셋과 사귀고 있었...던가?


최소한 아까까지만 해도 샤이닝은 서로 사귀고 있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지금 더 혼란스러웠다.


샤이닝이 고민에 빠져있을 때, 가퍼는 옆자리에 앉은 암말을 쳐다보며 질문을 던졌다.


"아. 잠깐, 미안. 너 이름 뭐였더라?"


"발음하기 되게 어려울 텐데. 그냥 짧게 '치어'정도로만 불러 줘. 대부분 그렇게 부르니까."


어두운 자주색 털가죽에 핫핑크색 갈기를 단 암말은 보철을 단 이빨을 드러내며 싱긋 웃었고, 8-비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대답했다.


"하긴, 이름 부를 때마다 혀가 베베 꼬이는 것보단 나으니-"


바로 그 때 두 필의 알리콘이 쟁반에 음식을 담고 식탁으로 걸어왔다. 그러더니 각각 샤이닝 아머의 양 옆에 있는 빈자리에 앉는 것이 아닌가? 우주의 질서가 아직 회복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물론 샤이닝의 친구들은 이게 무슨 조화인지 따지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입을 싹 닫고 있었다. 까딱 입을 잘못 놀리다가 두 필의 알리콘의 노여움을 자초하긴 싫었겠지.


그리고 질문 공세는 고스란히 나중에 샤이닝의 몫이었고 말이다. 샤이닝의 골치가 지끈거렸다.


"늦어서 미안. 무슨 일이.. 잠깐 있어서."


중간에 약간 머뭇거리면서 선셋 공주가 먼저 말을 꺼냈다. 샤이닝은 별 거 아니라는 듯 웃으며 화답했다.


"아냐. 뭐... 괜찮아."


선셋의 기분이 아침보다는 좀 나아졌나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샤이닝을 보자마자 선셋은 왠지 모르게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또 성질만 돋우기 전에 샤이닝도 덩달아 텅텅 빈 자기의 음식 쟁반 쪽으로 고개를 내렸다.


'어쩐지, 선셋 기분은 여전히 꽝인 것 같네..'


갑자기 이 덕후 집단이 모인 식탁 바로 옆자리에 쟁반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려, 일동은 일제히 왼쪽을 바라보았다. 연청색의 털에 휘향찬란한 색 조합의 갈기를 단 암말 한 필이 자리에 막 앉는 중이었다.


"..앉아도 되지?"


가퍼는 바짝 얼어 고개만 끄덕였고, 새시는 다른 자리에 앉아있는 치어릴리를 쳐다보며 말을 시작했다.


"치어릴리. 저번에 있었던 일에 대해 사과하려고 왔어. 내가 약간.. 아니, 약간 못되게 군 수준이 아니었었지... 이유 없이 네 친구 앞에서 너를 깔본 것.. 너한테 못할 말 한 것.. 진짜로 미안.. 진심으로 미안해..."


눈앞에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 공주들을 제외한 그 자리에 있는 나머지 포니들은 학교 최고 서열을 자랑하는 포니 중 하나가 자기보다 명백하게 서열이 낮은 포니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며 자기들의 두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쉴 틈도 없이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플뢰르까지 사과하러 온 것이 아닌가?


"그래.. 그.. 내가 봐도 간혹 주제넘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날 일, 전부 다 사과할게 치어릴리. 미안."


그 다음에 온 포니는 어퍼 크러스트였다. 나머지 둘과는 다르게 확연히 싫어하는 낯빛이 얼굴에 역력했다.


"끙... 미.. 미안..."


마음에도 없어 보이는 사과를 끝낸 뒤 어퍼 크러스트는 두 공주를 돌아보며 애원하는 어조로 말을 꺼냈다.


"공주님! 정말 여기서 점심시간 내내 쟤들이랑 같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래도 평판이란 게-"


"그럼, 안 할 거야?"

"그럼, 안 할 거야?"


두 알리콘은 단호한 낯빛으로 어퍼 크러스트의 불평을 일소했다.


다섯 암말들이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할 무렵, 샤이닝과 친구들은 곁눈질로 새로 온 포니들의 눈치를 살피며 대체 쟤네들이 뭐가 아쉬워서 우리 같은 찐따들이랑 앉아있는지 자못 심각하게 고찰에 빠져있었다. 그러던 무렵, 문득 새시가 샤이닝의 친구들을 쳐다보며 질문을 하나 건넸다.


"너희들, 이번 가을 무도회 참가할거야?"


샤이닝 아머의 친구들은 잠깐 동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가 곧 입을 모아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다. 선셋이 물을 마시다가 갑자기 사례가 들려 켈록켈록 기침을 하는 바람에 맥이 끊기고 말았지만. 샤이닝 아머는 선셋의 등을 기침이 좀 잦아들 때가지 다독거렸다. 약간 괜찮아진 선셋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새시 새들스를 올려보았다.


"가-가을 무도회라고?!"


플뢰르가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요. 폴로 경기 후에 무도회가 열리는데요. 여타 다른 학교 무도회와는 달리 모든 포니들이 참석 가능하죠."


약간 우수에 찬 표정으로 플뢰르는 말을 이었다.


"사실.. 그것 말곤 다른 학교에서 열리는 무도회나 다를 것 없긴 해요. 올해의 왕자와 공주 투표도 하거든요."


선셋은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 새로 합류한 세 필의 포니와 샤이닝 아머를 떨리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언제 하는데?"


"2주 후에요. 물론 공주님 같은 분이야 굳이 공 들여 준비하시지 않아도 무대를 빛내시겠지만요.." 새시 새들이 선셋의 물음에 대답했다.


'덜컹'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선셋은 의자에 주저앉았다.


"2주라..."


그 다음에 선셋이 찡그린 얼굴로 중얼거리는 말은 샤이닝 아머만 겨우 들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별로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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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의 나머지 학교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일단 남은 점심시간은, 학교 식당에서 자기 패거리들이랑 잡담을 하는데 정신이 팔린 벅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감시하는데 소비했다. 만약을 위해 벅에게 몰래 주문까지 걸어놓았다. 샤이닝에게 걸어놓은 주문과 비슷한 주문이었는데, 저 깡패 놈이 샤이닝 아머한테 5보 이내로 가까이 다가갔다간 알람을 받고 달려온 선셋에게 쓴 맛을 보게 될 테다.


학교 수업은 지루하고, 재미없고, 유치할 정도로 단순했다. 원래부터 유니콘 학교에 가져다 댈 깜녕도 안 될 뿐더러, 심지어 인간 세상의 캔틀롯 고교보다 훨씬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인간 세상의 과학시간에 비하면 이퀘스트리아의 과학 수업은 그저 기초적인 수준에 불과했으므로, 선셋이 마음만 먹으면 공부 안 하고도 일주일 만에 모든 과목 탑을 찍고 조기 졸업을 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나마 이 학교가 좋은 점이 있다면 월력(月曆)식 달력을 확인하기 편하다는 점이었다. 달이 차고 기우는 주기와 언제 어느 시기에 무슨 위치에 있을지 자세히 표기된 달력이었다. 이 달력에 의하면 다음 주 금요일이 만월이었다. 트와일라잇이 처음으로 인간 세계에 발을 디뎠던 때까지 넣어 계산을 해 보면 그 무렵이 아마 운명의 시간일터였다. 아주 예전 일이라 정확히 언제 이퀘스트리아를 떠났는지 기억이 잘 안 났지만, 시기가 어긋나지 않도록 심도 깊게 계산을 마쳐놓을 필요가 있었다.


다만 모든 요소를 대입해 계산을 할 때 가장 대입하기 어려운 요소가 하나 있었다. 바로 지금 시간대의 트와일라잇의 나이가 심각하게 어리다는 사실이었는데...


마지막 수업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선셋, 캐이댄스, 샤이닝 아머는 약속된 장소에서 만난 뒤 약간 같이 걸어가다가 가는 길이 갈라질 즈음 작별 인사를 하며 해어졌다.


이퀘스트리아를 떠날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가 되었다. 문제는, 캐이댄스가 계속 옆에 달라붙어 크리스탈 왕국의 마법서를 들이밀며 이론 설명을 해달라고 졸라댔다는 거지만, 캐이댄스랑 같이 해 둘 일도 있었으므로 선셋은 크게 신경 쓰지는 않기로 했다. 어차피 떠나는 김에 캐이댄스를 위해 신치 교장건도 처리해둘 생각이었으니까.


공교롭게도 정작 캐이댄스와 함께 만나야 할 보드 교육부 장관은 장관실에 없었고, 그 비서가 말하길 장관은 중요한 선약이 있어 오늘 내로는 돌아오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하릴없이 둘은 장관과 내일 만나기로 약속만 잡아두고 교육부 장관실을 나섰다.


선셋은 캔틀롯 중앙은행에 들렀다.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묻는 캐이댄스에겐 '그냥'이라고만 대답했을 뿐, 자기의 진정한 목적에 대한 건 아무것도 발설하지 않았다. 선셋이 공식적으로 공주 자리를 인정받는 대관식까진 2주하고도 며칠이 더 남았지만 어떻게든 공주 이름을 빌어 돈을 당겨 쓸 일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트와일라잇의 학비 때문이었다. 만약 선셋이 떠나도 예정대로 트와일라잇이 유니콘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은행에서 볼 일이 끝나고, 둘은 샤이닝과 나중에 보기로 약속했던 작품의 극장표까지 예매해두었다.


"실체 같은 환영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검은 조끼를 입은 페가수스와 금색 갈기 유니콘, 석궁을 든 야크와, 척 봐도 포니세계의 다스 베이더 역할임이 분명한 검은 헬멧을 쓴 포니가 그려진 포스터를 보며 선셋은 홀로 중얼거렸다.


"영화 홍보멘트치고는 좀 독특... 어! 아 맞다.. 그랬었지.."


이퀘스트리아의 기술 발달 수준에 대한 자각이 이제야 선셋의 뇌리를 스쳤다.


이미 익숙한 마법이라는 매체가 있었으므로, 이퀘스트리아의 영상 관련 기술은 여전히 흑백 영사기 수준에서 머물러 있었을 뿐 더 이상 진보하지 않았다. 이퀘스트리아의 영화를 상영하는 방법은 대개 환영 마법에 능통한 유니콘 몇몇이 영화의 주요 장면을 환영 마법으로 촬영한 뒤, 다른 지역의 영화관으로 이동해서 환영 마법을 관중들 앞에 시전하는 그런 구조였다.


분명 인간 세계의 방식에 비해선 지독히 비효율적인 구조였지만, 선셋이 이퀘스트리아에 있는 시간 동안 바꿀 수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인간 세계의 지식을 바탕으로 개선을 시도한다고 쳐도, 마법이라는 개념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이퀘스트리아의 포니들이 빠르게 받아들이리라는 보장도 없고 말이다.


'허.. 그래서 이퀘스트리아와 인간 세계 사이에 기술력 차이가 있는 건가..'


표를 끊고 있는 캐이댄스를 보며 선셋은 생각을 이어갔다. 선셋이 인간 세상에서 과학과 수학 수업을 빠르게 따라잡은 걸 보면 이퀘스트리아와 인간 세계의 기술력 격차는 생각보다 심각하게 벌어진 건 아닐 수도 있었다. 마음잡고 계획을 세우면 아예 메울 수 없는 틈도 아닐 것이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사실처럼 이미 마법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이퀘스트리아의 포니들에게 기술 발전의 필요성을 성토하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게다가 이퀘스트리아는 큐티 마크라는 운명론이 지배하는 사회였으므로 이미 운명이 정해진 포니들에게 인간들과 같은 유연성은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건 더 이상 선셋이 상관할 문제가 아니었다. 이퀘스트리아에 기술 혁명이 필요하다면 그건 진정 자격 있는 공주,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장차 알아서 할 일이었다. 인간 세상에서 거처하며 약간 정도 기술적 자문을 주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만 더 이상 내가 이퀘스트리아의 일에 간섭할 자격 따윈 없다고 선셋은 스스로 생각했다.


"무슨 생각해 선셋?"


일을 끝낸 캐이댄스가 선셋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질문했다.


선셋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 맞다...! 학용품 사러가야 되는데."


크리스탈 마법서를 슬쩍 꺼내 읽고 있는 캐이댄스를 보며 선셋은 허겁지겁 변명했다.


"잠깐만. 가기 전에 나 좀 도와주고 가면 안 될까?"


그 말을 하며 캐이댄스가 가리킨 건 크리스탈 덩어리를 창조하는 기초적인 주문이 적힌 구간이었다.


이후에도 캐이댄스는 계속 선셋을 졸졸 따라다니며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선셋에게 물어보았다. 그 동안 선셋이 학용품이랍시고 산 건 '마체 무자극성 윤활용 젤' 같은 심히 그 용도가 수상한 연금술 용품들, 보건체육시간 성교육 준비물이라며 산 여러 민망하게 생긴 기구들 몇몇이랑, 인간 세상에서도 유용하게 쓸 수 있지만 학용품이라기엔 초점이 좀 어긋난 물건들뿐이었다. 다행히 캐이댄스는 선셋의 말을 믿어주었다. 아니.. 믿는 척 하는 건가? 어쨌든 잘 된 일이다. 어떻게 변명해야 되나 선셋도 내심 갑갑하던 차였다.


이렇게 시간을 보낸 후 둘은 성으로 돌아왔다. 셀레스티아 공주는 이미 일몰 의식을 끝내고 만찬실에 와 있었다. 아직 차려진 건 없었지만 주방장이 주문을 받기 위해 미리 대기 중이었으므로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캐이댄스. 분명 내가 오늘 교육청장이랑 회담 자리를 마련해주겠다고 했었잖니? 그런데도 모습을 보이지 않은 그 이유가 궁금하구나."


선셋과 캐이댄스를 보며 셀레스티아가 하는 말에, 두 필의 작은 알리콘들은 서로 어리둥절한 시선을 교환했다.


"어...그게... 오늘 교육청에 직접 찾아가긴 했는데... 에헤헤.. 깜빡했네요..."


캐이댄스는 멋쩍게 셀레스티아의 질문에 대답했다. 교육청장 비서가 이야기한 중요한 일이라는 게 이거였나..


"하긴, 엄밀히 따지자면 너보단 내 실수가 크구나. 네가 처음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설 줄은 모르고 대뜸 왕궁으로 교육청장을 소환했으니."


그렇게 둘 사이에 대화가 오갈 무렵, 선셋은 이퀘스트리아의 미래가 걸린 막중한 문제를 심각하게 고심중이였다. 과연 선셋이 자리를 비워도 원래 시간선의 이퀘스트리아처럼 모든 게 원만히 흘러갈 수 있을까?


트와일라잇이 바른 공주로 자랄 바탕은 이미 깔아놨고 실행만 하면 됐지만, 샤이닝 아머 문제는 좀... 복잡했다. 물론 샤이닝 아머에게 나 없어도 캐이댄스가 있다는 암시를 은연중에 넣어두기야 했지만, 2주일이라는 시간은 둘이 잘 될지 확인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기간이었다.


신경 쓰이는 점 한 가지 더. 캐이댄스의 개입이 트와일라잇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도 미지수였다. 선셋이 온 평생을 다 바쳐도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준 은마의 과거를 당장 선셋 혼자서 엉망진창 휘저어버린것도 끔찍한데, 또 다른 알리콘이 새언니 비슷한 포지션으로 끼어든다라? 트와일라잇의 삶에 또 한 번 대격변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새 친구들을 사귀었어요."


캐이댄스의 이 말 한마디에 선셋은 잠시 고민의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분명 어머니의 성격상 이런 화재에 대해선 선셋에게도 말을 시킬게 분명하니, 선셋은 미리 선수를 처 간략히 설명해두기로 했다.


"유니콘 세 필이에요. 그중 두 필은 그나마 괜찮아 보이지만, 나머지 하나는 제가 보기에도 좀 속물 같던데요."


어퍼 크러스트. 점심시간에 사과를 하라고 시켰는데도 도리어 뻔뻔한 태도를 보였던 그 유니콘을 선셋은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근데 걔네들 말고 또 한필 있었는데..


"아 맞다. 또 어스포니 한 필이 있었는데, 어... 이름이 잘 기억 안 나네.. 다음에 확실히 물어볼게요."


셀레스티아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새로 맺게 된 우정을 축하해주며 대견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선셋의 예상대로였다. 기분이 더 우울해졌다. 선셋이 그나마 주변을 살필 수 있게 된 건 다 트와일라잇 스파클 덕분이었다. 그 얘의 잔상만 허겁지겁 따라가고 있는 선셋은 이런 칭찬을 받을 자격 따윈 없었다.


"걔네들도 이번 금요일에 같이 극장에 갔으면 좋겠는데요. 가고 싶어 하려나?"


캐이댄스의 대책 없는 낙관주의에 선셋은 퉁명스럽게 두 눈을 옆으로 굴렸다.


"고작 사과 한번 받았다고 갑자기 친한 친구가 되는 거 아냐, 캐이댄스. 장담하는데 걔네들, 내일 우리랑 뭘 같이 하자고 물어보면 정색부터 할 걸?"


캐이댄스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이렇게 말다툼이 시작되려나 하던 차에 셀레스티아가 불쑥 끼어들었다.


"잠깐. 방금 이번 금요일이라고 했니?" 태양의 공주는 자기의 수양딸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금요일에 그리폰스톤의 대사가 이퀘스트리아에 도착하거늘..."


"뭐라구요?!"


캐이댄스가 깜짝 놀라 외치는 말에 덩달아 선셋도 깜짝 놀랐다.


"부..분명 이모님이 주말 때나 온다고 이야기하셨잖아요! 금요일이 아니라!"


셀레스티아는 한숨을 쉬고 한 쪽 발굽을 들어 흥분상태인 사랑의 공주를 진정시켰다.


"본격적인 회담이 주말에나 시작된다는 이야기였지, 오해를 했나 보구나. 그래도 너무 걱정은 말거라 캐이댄스. 너더러 회담에 참여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그저 대사의 환영식에 잠깐만 같이 있어주기만 하면 되니, 금요일에 친구들과의 약속은 지킬 수 있을게다." 


공주는 넌지시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흠.. 저렇게 갈갈히 뛰는 걸 보니 네가 마음에 두고 있던 사내와도 같이 가는가 보구나?"


캐이댄스는 당장 반박을 하려다가 선셋과 한 약속이 생각난 듯 머뭇거렸다. 한 시름 놓았다고 선셋은 생각했지만, 동시에 슬프기도 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추억 하나 정도는 만들고 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아니.. 미련은 확실히 끊어버려야 했다. 어머니가 좋은 핑계를 마련해준거나 다름없었으므로 선셋은 이 기회를 십분 이용하기로 했다.


"아..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구요! 선셋은 어쩌구요?"


"나랑 가까운 자리에서 외교대사들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직접 시범을 보여줄 생각이란다."


공주는 해명을 시작했다.


"..어쩐지 너만 냉대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 나도 잘 안다. 허나 선셋은 몇 년 동안 나를 따르면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잘 봐왔고, 그리폰들같은.. 뭐랄까.. 성정이 거친 자들에게 주눅이 들 포니는 아니니, 이번이 귀중한 경험을 쌓을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생각되어 내 일부러 그리 하는 것이다. 혹시 더 불만이 남았거든 당초에 우리가 했던 약속을 떠올려보거라. 지금 다니는 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캐이댄스 네가 국사에 관여하는 건 잠시 미루어두기로 했잖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전-"


"알겠습니다. 어머니."


허튼생각이 들기 전에 선셋은 재빨리 캐이댄스의 말을 막고 셀레스티아의 말에 순종하겠다는 자세를 취했다... 친구들과 영화를 보는 대신, 보나마나 돈 구걸하러 온 게 뻔히 보이는 그리폰 대사와의 회견을 나가기로 한 것이다.


"선셋... 왜..."


캐이댄스는 선셋이 예상외로 쉽게 포기하자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고는 다시 셀레스티아 공주를 쳐다보았다.


"이모님. 회담을 조금이라도 연기할 순 없는 건가요? 그동안 선셋에게 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셨잖아요! 그런데 선셋이 친구들을 사귀자마자 그런 곳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하시다니. 왜 이제 와서 말을 바꾸시는 거죠?"


선셋은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와 캐이댄스 사이에 싸움이 붙는 걸 눈 뜨고 보고있을수만은 없었다.


"캐이댄스.. 그러지 마.. 난 괜찮으니까.."


사실 괜찮지 않았다. 당초에 잡았던 계획을 셀레스티아의 말 한마디 때문에 갈아엎게 생겼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있을까..


아무리 나라의 외교가 영화를 보는 것보다 중한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물론 선셋이 내 말을 받아들여 새 친구를 사귀게 된 건 기쁜 일이다만, 무릇 모든 것에는 순서라는 게 있는 법이다."


"그래도 선셋은.. 이런 법이 대체 어디 있어요?!"


셀레스티아는 무게감 있는 시선으로 잠시 동안 사랑의 공주를 내려 보았다. 주방장이 주문한 음식을 가져오자 셀레스티아는 아예 식탁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말했다.


"공주의 의무가 막중하니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황금빛 마력으로 샐러드를 집어 들며 셀레스티아는 지엄한 어조로 선언했다.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끊도록 하자꾸나. 어차피 따진다고 해서 달라질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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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시간이 끝났다.


하루 내내 쌓인 피로감이 선셋을 짓눌렀다. 어머니한테 행여나 자기의 속셈을 들킬까봐 조마조마한 상태로 이퀘스트리아의 미래를 보전할 계획을 짜고 있자니 심리적으로 녹초가 되도 이상할 건 없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샤이닝과 캐이댄스를 완만하게 이어줄 수 있을지부터가 막막했다. 친한 친구의 전 애마랑 기꺼이 사귀려는 포니는 거의 없을 테니까.. 설령 캐이댄스가 샤이닝을 진짜로 좋아한다고 쳐도 선셋이 먼저 침을 발라놨던 이상, 그냥 다른 포니를 찾던지 혹은 실종된 선셋과의 의리를 지킨다는 (쓸데없기 그지없는)명목으로 포기할 공산도 높았다.


선셋은 지금 셀레스티아 공주 너다섯은 너끈히 들어갈 욕조 안에 양 앞발을 탕의 가장자리에 올려놓은 채로 축 늘어져있었다. 뜨거운 물은 복잡한 심정을 풀어주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뭉친 근육정도는 풀어주었다.


별안간 욕실의 문이 열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캐이댄스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욕실 안으로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같이 목욕해도 돼?"


짖궃은 미소를 지으며 선셋은 답했다.


"설마 같이 한다고 이 넓은 욕탕이 미어터지기나 하겠어.. 들어와."


선셋은 날개 하나를 벌려 들어오라는 몸짓을 취했다. 역시, 팔과 손에 비해선 날개는 좀 엉성한 감이 있단 말이야.. 물론 날개 외에도 마법이라는 아주 우월한 손의 대체제가 있긴 했지만, 손가락은 손가락만의 장점이 명확했다.


대답을 들은 캐이댄스는 서서히 선셋이 들어가 있는 욕탕 안으로 계단을 타고 들어왔다. 청명하고 따뜻한 물에 캐이댄스의 털이 아래부터 위까지 축축이 젖어 몸에 척 달라붙어가고 있었고.. 선셋은 그 장면에서 눈을 쉽사리 땔 수 없었다. 그냥 물에만 좀 들어왔을 뿐인데도 흠뻑 젖은 캐이댄스의 모습은 안 젖었을 때보다 더 관능적이었다.


선셋은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매끈하게 빠진 미 아모레 카덴차의 완벽한 신체적 굴곡을 보고 있자니 다시 한 번 치기 어린 질투심이 고개를 들었다. 선셋의 육체가 조금 전투적이고 드센 면이 있는 반면, 캐이댄스는 여러 방면에서 선셋을 한참 초월하는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육체였고, 선셋도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날개.. 할래?"


갑자기 나온 캐이댄스의 질문에 선셋은 잠시 두 눈을 끔뻑거렸다.


"...엉?"


"네 날개 빗질해 줄 테니, 너도 내 날개 빗질해주라구."


뭐라고 설명하기 애매한 미소를 살포시 지으며 캐이댄스는 선셋 쪽으로 몇 발짝 더 다가왔다.


"어제 저녁에 내가 해준 것처럼만 하면 돼. 난 너와 달리 마법은 좀 서투니까 아직 혼자서는-"


굳이 더 설명을 덧붙일 필요는 없었다. 여전히 캐이댄스가 마력으로 무언가를 잡을 때마다 덜덜 떠는걸 선셋도 익히 잘 알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선셋은 살짝 웃으며 캐이댄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아."


캐이댄스는 아까 선셋처럼 욕조에 몸을 비스듬하게 기대고 자세를 잡았고, 선셋은 뒤로 돌아 욕실 안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날개용 빗을 마력으로 집어 들었다. 그 다음, 캐이댄스가 전에 보여줬던 것처럼 분홍색 알리콘의 날개에 빗을 올린 뒤, 오늘 하루 내내 돌아다니면서 깃털과 날개사이에 끼인 먼지를 마디마디마다 살살 쓸어내기 시작했다.


곧, 캐이댄스는 오묘한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선셋은 이게 그저 캐이댄스가 따뜻한 물에 들어와서 기분 좋아서 내는 소리이길, 절대 선셋이 날개를 쓰다듬어서 내는 소리가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물론 날개가 꽤 민감한 부위인 건 선셋도 이젠 잘 아는 사실이긴 했으나...


"으음... 좋아.."


보통 날개를 마력으로 좀 건드렸다고 해서 포니가 저렇게 좋아할 리는 없을 것이다.


"으응.. 응. 거기.. 바로 거기..."


....아닌가....


"저, 캐이댄스."


어쩐지 캐이댄스의 성감대를 건드리고 있는 것 같다는 낯뜨거운 생각이 고개를 들어, 선셋은 재빨리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릴 다른 말이라도 해보기로 했다.


왜냐면 극도로 섹시(언제까지나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렇다는 거고!!.... 라고 선셋은 애써 생각했다.)한 친구가 지금 민망한 신음소리를 뱉고 있는데, 거기에 더해 선셋이 인간 세상에서 생활하며 무의식에 각인시킨 '나체=섹스' 라는 개념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으므로, 이 이상으로 갔다간 오늘 아침 샤이닝 아머에게 했었던 일 이상으로 나중에 후회할 일을 벌이게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선셋은 아까 떠올린 문제에 새로 집중하기로 했다. 대관절 선셋의 전 남친.. 이 될 뻔 했던 포니랑 캐이댄스를 어떻게 엮어줘야 된단 말인가.. 선셋은 캐이댄스와 이야기를 하며 조율해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젯밤, 네가 나한테 그랬었잖아. 샤이닝 아머가 마음에 든다고.."


"으~음."


긍정의 의미가 담긴 탄성을 입에서 흘리면서 캐이댄스는 온수에 한층 더 몸을 담갔다. 그리고 그 귀여운 엉덩이로 선셋의 몸통 앞부분을 툭 건드렸다.


선셋은 마른침을 삼키고 심호흡을 하며 간신히 평정을 유지했다. 이제 2주일밖에 시간이 없었으니 망설일 여유도, 돌려 말할 여유도 없었다.


"그러니까.. 나대신 샤이닝 아머랑 금요일에 데이트 해줬으면 하는데, 어때?


"웅~뭐..뭣?! 잠깐만!"


사랑의 공주가 별안간 날개를 활짝 펼친 바람에 빗은 날개에 맞고 튕겨져 욕실 바닥을 뒹굴었다. 캐이댄스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믿을 수 없다는 눈길로 선셋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날더러 네 남자친구랑? 지금? 그-그-그리고 분명히 말했잖아! 샤이닝이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특별히 끌리는 점은 없다고!"


맹렬한 질문 공세와 해명 요구에 선셋은 약간 몸을 움츠렸다.


"근데, 그.. 결국 데이트라는 건 이런 거 아냐? 그 수말이 자기랑 어울리는 포니일지 아닌지 가름해보는 거... 게다가 한번 데이트했다고 평생 그 포니랑만 살아야 된다는 법도 없고.."


선셋의 어조에선 평소와 같은 자신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걔랑 데이트도 한 번 했고, 9일 동안 붙어 있기까지 해서 하는 말이야 캐이댄스. 망할.. 그리고 솔직히 따지자면 걔랑 너랑 같이 있었던 시간이, 나랑 걔랑 같이 있던 시간보다 더 많지 않아? 그리고 샤이닝이랑 난 아직 진도도 키스까지밖에 못 뺐을 정도로 지지부진하고.."


캐이댄스는 성난 콧김을 푸르륵 뿜으며 성난 목소리로 대꾸하기 시작했다.


"몰라! 그딴거 신경 안 써! 네 입으로 네 남자친구를 뺏어달라니, 지금.. 제정신이야?!"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선셋은 언성을 높였다.


"내가 걔랑 안 어울려서 하는 말이다. 왜?!"


분노, 초조함, 이 모든 게 선셋이 자신도 모르게 활짝 펼치고 있는 두 날개에서 표출되었다. 왜 선셋보다 캐이댄스에게 더 어울리는 포니를 선셋이 양보하겠다고 하는데도 이렇게 완강하게 거부하는 걸까? 심지어 저도 샤이닝이 마음에 들긴 한다는 걸 부정하지도 않았으면서!


"저기.. 들어봐. 처음에 너한테 연애 상담을 할 때 내가 한 말이 있었지? 걔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만약 내가 샤이닝이랑 이대로 계속 사귀게 된다면 걘 분명 상처받고 말 거야. 그럴 수밖에 없어."


캐이댄스의 일그러진 표정이 약간이나마 도로 펴졌다.


"왜 또 그런 말을 해? 물론 넌 여전히 약간 제멋대로고 난폭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넌 좋은 포니야! 내가 알아! 샤이닝도, 너도, 서로 노력만 하면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데, 왜 굳이 나한테-" 


"그게 걔한테 최선이니까! 됐어?!"


귀가 먹먹하게 울리는 선셋의 외침에, 캐이댄스는 겁을 먹고 몸을 잔뜩 움츠렸다... 내가 또 왜 그랬을까.. 선셋은 후회하며 몸을 약간 쪼그렸다.


"..저기..."


마음을 약간 진정시킨 후, 선셋은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잘 모를 거야.. 내가 샤이닝을 볼 때마다 무슨 추잡한 생각들을 하는지.. 내가 전에 인간 세상에서 옷의 의미에 대해서 알려준 적이 있었지?"


'갑자기 웬 뜬금없는 소리람?'라는 캐이댄스의 생각을 선셋은 그 얼빠진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어... 인간 세상에선 항상 옷을 입는 게 에티켓이랬고-"


"성 관계를 할 땐 나체로 하는 게 기본 상식이랬지."


성급하게 캐이댄스의 말을 자르며 선셋이 언성을 높였다.


"봐봐.. 그 개념이 내 뇌리에 너무 확고하게 박혀버렸어! 왕궁 안을 쏘다닐 때는 그나마 괜찮아! 경비병이나 거들먹거리기 좋아하는 귀족들 중에 옷을 안 걸친 작자는 단 한 필도 없으니까! 캔틀롯 시내조차도 옷을 안 입고 다니는 포니는 찾아보기 드물지. 하지만 학교는? 이야기가 완전 다르다고! 특히나 샤이니랑 있을 땐.. 평범한 포니처럼 옷을 안 입고 다니는 모습만 봐도... 아..."


잠깐 숨을 고른 뒤, 선셋은 횡설수설 말을 더 쏟아내었다.


"정말 내가 나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어! 어제, 걔가 맞아서 다쳤을 때 그 다음에 내가 어쨌는지 알아? 집으로 데려간 다음 단 침대에 눕혀놓고 와락 달려들었지! 5분후에 걔 부모님이 돌아오셔서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요란하게 사고를 치고도 남았을 거야 내가! 심지어 오늘 아침에도 너 떠나보내고 나서 샤이닝을 억지로 공원으로 데리고 나왔어. 의도? 뻔했지!"


그 순간 캐이댄스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럼, 샤이닝이랑 결국-"


"뭐-뭣?! 아냐! 아냐!"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선셋은 버럭 외쳤다. 그렇게 잠깐 동안 굳어 있다가, 서서히 고개를 저으며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해명하기 시작했다.


"겨..결국.. 어떻게든 참아내긴 했어.. 돌이킬 수 없기 전에.."


그리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을 때가 되었다.


"샤이닝만 보면 좋아.. 행복해... 하지만,"


선셋은 자신의 몸에 기댄 샤이닝의 체온을 회상했다. 너무나 사려 깊고, 상냥하고, 따뜻하고.. 너무나도... 완벽한..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선셋 쉬머가 뭘 하고 싶냐.'가 아닌, '샤이닝 아머에겐 과연 뭐가 최선일까.'야. 그리고 샤이닝 아머에게 가장 어울리는 최선의 포니는 내가 아닌.. 다름아닌 너고."


"...네가 뭘 말하고 싶은지는 잘 알겠어."


캐이댄스는 입술 가장자리를 핥은 뒤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선셋. 고개를 들어 날 똑바로 바라봐줘."


선셋이 캐이댄스의 말에 따르자, 캐이댄스는 자기 친구의 어께 위에 양발굽을 올려놓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번번이 이야기하는 거지만, 계속 자책만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런 다음, 네가 아까 한 말을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고, 왜 그런 말을 내게 했는지 이유를 정리해서 말해줘.


선셋은 버럭 성질이 났다. 자기 입으로 좋아한다 말했으면서! 알아서 물러나 주겠다는데 대줘도 먹는걸 거부하는 이런 경우가 어디있단 말인가? 심지어 선셋도 미련을 버리...지는 못했지만, 어차피 선셋은 샤이닝이랑 같은 세상에서 살 수도 없...


마지막 생각 때문에 화를 낼 기운도 사라진 선셋은 고개를 축 떨구었다.


"캐이댄스.. 부탁이야.."


선셋의 목소리에선 지금 선셋이 느끼고 있는 극심한 피로감이 물씬 묻어나왔다.


"고작 나 때문에..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았으면 해.."


"선셋.."


캐이댄스도 만만치 않게 피곤한 목소리로 대답을 시작했다.


"겨우 한 번의 데이트가지고 혼자서 모든 걸 판가름 할 수는 없는 법이야. 그 자리엔 사랑의 공주인 나도 있었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또 물 먹고 어디 걸린 수건마냥 축 늘어진 건지 모르겠는데, 다른 세상에서 지내면서 익숙해진 관습 때문에 이퀘스트리아의 포니들이 평범하게 맨몸뚱이로 돌아다니는 걸 보는 게 무서워서 그렇다고 진심으로 우길 요량이라면 확실히 알아둬. 겁난다고 해서 포니 관계를 무조건 도망치듯 벗어날 수는 없는 거라구!"


"아니..! 사실, 샤이닝에게 질려서 그러는 걸 수도 있지! 내가 착한 남자보단 나쁜 남자에게 끌린다는 걸 이제야 알아챈걸 수도 있고!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냐?" 


하지만 캐이댄스는 싸늘한 눈길만 보낼 뿐, 하나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또 화내네.."


"미안.."


"흠. 화를 낸다는 건 네가 이걸 진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겠지. 그러니 잠깐만 진정하고, 내 질문에 대답해줘."


이번엔 선셋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차례였다.


"어... 알았어." 마지못해하며 선셋은 대답했다.


캐이댄스는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쉰 후 선셋을 보며 다시 말을 걸었다.


"선셋. 나 섹시해?"


선셋의 덜컥 막힌 말문이 뚫린 건 수십 초가 지난 다음이었다.


"이건 또 무슨-"


"다시 질문할게. 나 섹시해?"


캐이댄스는 다시 자세를 잡으며 재차 질문을 던졌다... 누가 봐도 질문의 취지와 딱 어울리는 포즈였다.


다시 한 번 선셋은 캐이댄스의 육체에서 눈을 땔 수 없었다. 원래부터 눈부시게 아름답기도 아름답거니와, 물에 젖어 축 내린 갈기와 털들이 고혹스러움을 한층 더해주고 있었다. 몸의 모든 부위 부위마다 시샘이 안 가는 부분이 없었고 보고 있노라면 묘하게 가슴이 뛰는 것만 같았다.


-'꿀꺽' -"그-그런데?"


"그럼 지금 당장 날 침대로 끌고 가서 마음대로 해 보는 건 어때?"


질문의 강도에 비해 캐이댄스의 목소리는 묘할 정도로 침착했다.


아까부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선셋은 얼굴을 바짝 찡그리며 대답했다.


"야! 설마 내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캐이댄스의 얼굴에 일견 상심한 듯한 표정이 스쳤지만 그건 잠시뿐, 재빠르게 덤덤한 표정으로 원상 복구되었다.


"왜 안 해?"


비록 목소리엔 미세하게나마 감정이 섞여있었지만 말이다.


"나도 샤이닝만큼이나 헐벗고 있는데다가, 너랑 침대에서 같이 자기도 했잖아. 왜 나는 안 돼?"


캐이댄스가 담담한 어조로 말하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선셋은 이 말을 장난 비슷한 걸로 치부해버렸을 거다. 하지만 사랑의 공주의 어조는 무언가.. 아주 진지했으므로 선셋은 순순히 대답하기로 했다.


"왜냐면.. 난 너한테 있어서 괴물이나 다름없는 포니니까.."


캐이댄스의 덤덤한 태도는 그 말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뭐...뭣?"


"여전히 네가 속으로 날 약간 무서워하고 있다는 거 나도 잘 알아. 그리고.. 맞아. 너 되게 섹시해. 나마저도 엄한 생각이 약간 들 정도로.. 근데 내가 너한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지를 잘 아는 이상, 그리고 내가 전에 너한테 저질렀던 짓을 나도 잘 알고 있는 이상, 절대로 그렇게 할 수는 없어."


캐이댄스는 잠깐 동안 벙찐 표정으로 선셋을 바라보다가,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땠다.


"...나를 섹시하다고 생각하고.. 나랑 같이 자고 싶은 욕구도 없는 건 아닌데. 내가 상처입을까봐 하지 않는다...라..."


캐이댄스는 말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결국 샤이닝이랑 나랑 뭐가 다르다는 건데?"


"..장난해? 샤이닝이랑 달리 너랑 나는 지금 사귀고 있는 사이도 아니잖아."


선셋은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랑의 알리콘이라는 포니가 이렇게 기초적인 사실을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닐 테고..


"그럼, 네가 샤이닝이랑 더 이상 안 사귄다고 하면, 걜 보고 더 이상 음란한 생각 안할 자신 있어?"


일부로 그러는 건지, 분홍빛 공주는 한 쪽 눈썹을 올리며 허술한 논리의 질문을 던졌고, 선셋은 짜증 섞인 신음소리를 뱉으며 캐이댄스의 말에 대답했다. 


"끙..! 지금만큼 심하기야 하겠어?!"


거의 캐이댄스 공주의 코앞에 대고 선셋은 큰 소리를 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는 걸 깨닫고는 곧바로 고개를 뒤로 젖혔지만..


"연마관계가 아닌 친구로서 새로운 선이 하나 생기는 거지. 지금 캐이댄스 너와 나 사이처럼." 


샤이닝의 친구도 샤이닝만큼이나 헐벗고 다니고 덕후 기질도 다분했지만, 선셋이 어디 걔네들에게 한눈이라도 판 적이 있던가? 여러가지로 일이 복잡해지기 전, 샤이닝 아머는 선셋의 분류 상 '애마' 그룹에 속했으므로 '성관계 가능'이라는 옵션에 체크를 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했지만, 나머지는 그런 게 아니었으므로 딱히 다른 마음을 품지도 않았다.


만약 샤이닝에게 애마가 이미 있었더라면 선셋은 샤이닝을 캐이댄스와 같은 맥락에 두고 취급했을 것이다. 즉, '친한 친구 : 눈으로 보되, 건드리지는 말 것.'


말을 끝낸 뒤로 몇 분간 욕실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알았어.."


캐이댄스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 전까지 선셋은 캐이댄스가 눈을 뜨고 잠에 빠진 건 아닌지 살짝 걱정을 하고 있었다.


"...샤이닝 아머랑 데이트 해볼게.. 단 조건이 하나 있어."


"무슨 조건?" 섣불리 생각했다간 위험하겠는걸.. 선셋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금요일 날, 샤이닝이랑 같이.. 솔라 워즈인가 하는 영화를 보러가기로 했었지? 넌 사정이 생겨서 못 가게 됐지만. 어우~ 이모님도 참! 왜 일정을 그렇게 애매하게 알려주셔가지고..."


선셋이 고개를 끄덕였고, 캐이댄스는 콧김으로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룹 데이트 자리니까, 그 자리에서 샤이닝이 내게 관심이 있나 넌지시 떠볼게. 만약 걔가 너보다 날 더 좋아하는 걸로 판명 났을 땐.. 너 대신 내가 걔랑 사귀는 걸로 하겠어."


선셋은 캐이댄스가 건 조건에서 캐이댄스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교묘하게 조작할 수 있는 허점이 있는지 따져보았다. 그런 건 없었다. 캐이댄스가 결과를 대놓고 조작하기로 작정했다면 또 모르지만, 어디 캐이댄스가 선셋에게 그런 짓을 할 포니였던가..


"좋아."


"그러기로 한 거다?"


캐이댄스는 인상을 약간 찌푸리며 입을 다시 열었다.


"하지만! 걔가 날 거부한다면? 그 쓸 대 없는 노출에 관한 관념을 무슨 방법을 써서든 깨트리고, 샤이닝이랑 사귀어야 되는 거다? 알았지? 계속 생지라..ㄹ... 아니, 생지옥에 들어간 포니처럼 호들갑 떨지 말고! 알아들었어?!"


"어... 방금 너... 분명 생지랄 이라고-"


"그게 중요해?! 샤이닝이 여전히 너랑 사귀고 싶어 하기만 해봐라! 확 그냥, 샤이닝이랑 같이 좁은 방에다가 가둬놓는 충격요법을 써버릴 테니까! 말로는 샤이닝을 위한다 뭐다 하지만, 네가 한 말만 따지고 보면 결국 네가 무서워서 샤이닝을 피하는 거잖아! 정신좀 차려!"


캐이댄스의 호된 질책을 받으며 선셋은 자기도 모르게 점점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캐이댄스는 선셋을 점점 욕조 구석으로 둘의 몸이 바짝 닿을 때까지 몰아넣었다. 지금 선셋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양 날개를 활짝 핀, 전에 없이 호전적인 태세를 보이고 있는 사랑의 알리콘뿐이었다.


"아..알았어.."


난생 처음으로 선셋은 캐이댄스에게 완전히 압도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기분.. 어쩐지 나쁘지 않았다. 선셋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기백을 내뿜는 캐이댄스는 희한하게도 매력적이었다.


"알았으면 빨리 내 날개나 마저 빗질해."


콧방귀를 뀌며 캐이댄스는 뒤로 돌았다. 선셋 앞에 자기의 둔부를 훤하게 드러내면서.


잠깐 동안. 캐이댄스의 뒷부분을 넋 놓고 쳐다보던 선셋은, 잔말 없이 캐이댄스의 날개를 다시 빗질하기 시작했다.


'망할. 쓸데없이 섹시해가지고는 말야..'


절대 입 밖으로 발설할 엄두 따윈 내지 못한 채, 선셋은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


캐이댄스는 침대 위에 누워 자신의 연마가 방으로 들어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캐이댄스가 언제나 우러러보고 동경하던 그 포니.. 아아.. 그 포니는 강인하고, 자신감 넘치고, 이지적이고, 마생의 목표와 방향이 뚜렷하고, 결단력도 있지만 수단과 방법은 적당히 가릴 줄도 알았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위해 자기의 행복마저도 기꺼이 희생할 줄도 알았다.


그 포니.. 선셋 쉬머가 지금 오직 캐이댄스만을 위해서 막 침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사랑의 공주는 등을 대고 누울 수 있도록 자세를 돌렸다. 그리고 선셋이 침대로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애를 태우려는 것일까... 선셋은 큰 침대의 끝부분에서부터 천천히 캐이댄스에게로 기어오고 있었다. 마치 차분히 먹잇감을 살피며 확실한 기회를 노리는 포식자와도 같은 유연하고 관능적인 몸동작으로..


불현듯 그 포식자는 와락 캐이댄스에게 달려들더니, 캐이댄스의 입술부터 게걸스레 탐닉하기 시작한다. 길고 긴 맛보기가 끝난 후, 먹이를 붙잡은 사냥꾼과 도망할 생각 없는 사냥감은 음심 가득한 시선을 서로 오랜시간동안 교환했다. 평생 이대로 눈을 맞추고 더 이상 때지 않아도 좋으리라.


"사랑해. 캐이댄스."


"나도야. 선셋 쉬며."





"?.. 어라? 잠깐! 그럼 나는?!"


들릴 리가 없는 샤이닝 아머의 목소리가 캐이댄스의 방 멀찌감치에서 들려왔다.


두 필의 암말은 어리둥절하게 서로의 표정을 살피고 일제히 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보았다.


"어..."


기괴하게도 그건, 하트 모양에 그 모양을 따라 루비로 장식된 액자 안에 놓인 샤이닝 아머의 초상화에서 난 소리였다. 전에 계산해 본 바론 캐이댄스와 샤이닝 아머는 천생연분이라는 결론이 나왔었더랬다.


캐이댄스는 선셋을 돌아보았다. 선셋은 캐이댄스의 절친한 친구이며 수호자이자.. 짝사랑 상대...일까?


분명 샤이닝 아머가 캐이댄스의 짝이라는 계산이 나왔거늘, 자꾸 선셋에게 마음이 가는 건 또 무슨 경우란 말인가?


"좋은 질문이다."







사랑의 공주는 서서히 눈을 떴다.


꿈이었네..


캐이댄스는 짜증과 열망의 비율이 각각 1:3정도 비율로 섞인 신음소리를 뱉었다. 그 열망하는 대상과 같은 침대에서 자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중요한 걸 못 얻는 이기분.. 아..! 정말 불만족스럽기 그지없었다!


선셋은 꿈을 꾸는 듯 잠꼬대를 하며 무의식적으로 캐이댄스의 몸을 더듬고 있었고, 캐이댄스의 가슴은 또 한 번 콩당콩당 뛰었지만, 어차피 아직은 그림의 떡이라는 걸 안 이상 기분은 오히려 더 최악으로 치달았다.


"잘 한다.. 사랑의 공주라는 포니가 짝사랑에 빠져 정신 못차리고 있고 말야..."


캐이댄스는 여전히 곤히 잠에 빠진 선셋을 힐끗 돌아보았다.. 꿈속에서 적극적인 선셋의 모습만 떠올라 괜스레 마음만 더 복잡해지고 말았다.


"끙... 너희 둘이랑 나.. 진짜 어떻게 해야 되는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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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물대서 죄송합니다. 꾸벅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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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공주가 자봉단까지 서주는데도 낙선이라...


여기서 우리는 트와일라잇의 정치적 영향력은 쥐뿔도 없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아, 시청 직원들은 FF 15권에서도 등장했었군요. (http://kysslave.tistory.com/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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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중.46 그리고 작업중.reset

Posted by 졸역쟁이 기뮤식의노예



경 스타라이트 글리머 코믹스 첫 출현 축


..사실 오즈의 마법사 패러디 표지에 출현한 적이 있지만, 본 내용에서는 안 나와서 제외합니다. 게다가 선셋 표지로 교체도 가능한거였고..


각설하고, 공식 코믹스 46권 작업 착수합니다. 미국 대선철을 맞아, 공식 코믹스도 선거에 관한 내용이군요.


내일, 모래쯤이면 다 될지도요?






선셋 리셋 14장 파트 2도 순조롭게 하고 있습니다.


이건 여전히 7000단어 이상 남았으므로, 금방은 안 끝날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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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1~8   9~10 11~15 16~20

2부 : 1~5 6~10 11~15 16~20 21~26

3부 : 1~5 6~10 11~15 16~20 21~25 26~30 31~32

4부 : 1~5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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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1~8   9~10 11~15 16~20

2부 : 1~5 6~10 11~15 16~20 21~26

3부 : 1~5 6~10 11~15 16~20 21~25 26~30 31~32

4부 : 1~5


이번엔 특별히 2배 더 했습니다.


아참 그리고..





이번 건 좀 많이 음탕합니다.


네, 아주 음탕합니다.


감상하실 땐 주변에 아무도 없는지 확인하고 보는 게 좋습니다.



분명 경고했습니다.




그럼 재밌게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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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장 : 어여쁜 포니 공주님은 빛나는 것을 좋아해



캐이댄스가 얼굴을 붉히며 멀어져가는 걸 선셋은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똑같이 멍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샤이닝 아머를 돌아보며 선셋은 질문했다.

"쟤 대체 왜 저래? 희한하네.."

엄청 뭘 창피해하면서도 걱정하는 눈치던데.. 선셋이 뭘 아주 잘못한 것 같진 않지만.. 영 신경 쓰이기는 매한가지였다. 캐이댄스가 저러는 걸 선셋은 보기 싫었고 말이다.

이제야 생애 첫 순간이동의 충격에서 헤어 나온 샤이닝 아머는 선셋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글쎄, 화장실이 급해서 그런 건가.."

'얘가 진짜..' 말도 안 되는 추론에 선셋은 불만스럽게 두 눈을 옆으로 굴렸다. 하여간, 암말 한번 안 사귀어본 티를 내요 티를 내.. 키스하는 것도 어설프고 말이야. 연습 많이 시켜야겠네..

그래도 샤이닝 아머의 입술이 선셋의 볼에 닿을 때의 그 기분은.. 정말 좋았다.

자기가 직접 샤이닝을 침대 위로 밀어붙일 필요 없이 샤이닝이 자발적으로 해준 키스는 그런 기분이었다. 처음 캐이댄스가 샤이닝 아머에게 자격미달이니 어쩌느니 딴죽을 걸 때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결과만 따지고 보면 오히려 캐이댄스에게 감사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샤이닝이 이렇게 노력해준 만큼 보답을 해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동적인 성격인 얘 치곤 이정도면 엄청 애를 쓴 거였다. 공공장소에서 공주에게 키스하는 배짱 좋은 일을 저질렀다는 것도 잊지 말자. 이런 위업(?)을 이루었는데 고작 볼에 쪽 하고 키스해주는 걸로 퉁치기는 싫었다.

적어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을 서로 착 밀착시켜가면서 입속에 혀까지 들어가는 진하디 진한 키스와 함께 엉덩이도 마음껏 더듬게 해 줘야지... 선셋은 타들어가는 욕망을 서로의 포옹으로 발산하며 자신의 체취를 샤이닝에게 영원히 남기고만 싶었다.

흐뭇한 상상이 선셋의 뇌리를 가득 체웠다. 샤이닝 아머와 선셋의 거리는 점점 아찔해질 정도로 가까워지고 있었고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선셋의 정욕은 점점.. 해소되기만을 갈망하고 있었다.

만약 지금 샤이닝 아머가 관계를 요구한다면, 선셋은 거절할 용의가 전혀 없었다.

"샤이니. 1교시 쨀래?"

선셋은 샤이닝의 귀에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지금 나랑 같이 가면 보건시간 성교육 만점 받게 해줄 수 있는데.."

뜬금없는 선셋의 요구 탓인지, 아니면 귀가 유독 민감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샤이닝의 몸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저..서-선셋..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그러나 선셋을 막을 만큼 멍청한 자 그 누가 있으랴. 누가 보든 말든.. 아니, 사실은 누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던 차였다. 학교의 학생들 앞에서 대놓고 샤이닝 아머가 선셋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당당히 각인시켜주고만 싶었다. 이 학교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유명하고, 가장 욕망이 넘치는 암말의 옆자리는 바로 학교의 멋쟁이들도, 운동선수들도 아닌, 귀여운 덕후: 샤이닝 아머의 차지였노라고.

하지만 샤이닝 아머는 명백히 불편해하고 있었으므로, 선셋은 샤이닝 아머의 심정도 약간 헤아려주기로 했다. 1교시까지는 시간이 약간 남았으니, 순간이동으로 다른 데로 가 볼까..

선셋은 짓궂게 웃으며 거의 일주일전, 샤이닝 아머와 만난 바로 그 주간에 학교 주변 여기저기에 심어놨던 비전 표식중 한 곳을 연상하며 뿔에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청록색 섬광과 함께 둘의 모습은 어느덧 학교 내에서 사라졌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선셋은 녹음이 우거진 곳의 잔디를 밟고 있었다. 나무의 그늘에 가려 주변에 건물 하나 안 보이는 한적한 곳이었다.

바로 이 곳, 캔틀롯 시 공원은 인간세계의 그것의 규모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했다. 하긴, 이 캔틀롯은 산 위의 도시인만큼 부지를 따로 내기도 어려웠을 테지만 말이다. 그래도 공원은 이른 아침 햇살을 받은 덕분인지 상당히 수려한 경관을 자랑중이어서 딱히 불평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날개 아래 바짝 껴안은 샤이닝 아머를 플어준 뒤 선셋은 미소를 지으며 샤이닝 아머를 돌아보았다. 아주 게슴츠레한 미소였다.

"자. 네가 불편해할까봐 공원으로 왔어. 아주 깊숙한 곳으로.."

이젠 공원에서 뭘 하면 좋을지에 대한 생각만이 선셋의 뇌 속을 가득 채웠다. 옥상의 딱딱한 바닥이나 빈 교실에서 하는 것보단 잔디 위에서 뒹구는 게 더 나은 선택일는지도 모른다.

선생님의 책상 위에서 몰래 하지 못한다는 게 영 아쉬웠지만 말이다. 위험부담이 높았지만, 그래도 선셋이 인간 세상에서 했던 것 중 가장 스릴 넘치고 아찔한 성관계 경험중 하나였다. 물론 인간세계에서 했던 그것은 무언가가 하나 빠진 기분이었다만, 그 무언가를 이제 샤이닝 아머가 채워 주게 되었으니까 뭐..

작은 태양의 공주는 유니콘에게 서서히 접근했다. 

"너와 나. 둘 뿐이야."

그럼 할 일은 딱 하나밖에 없지.

"엿볼 포니도 없고... 좋지?"

"서-선셋! 왜...왜 그런..."

샤이닝 아머가 황급히 부끄러워하는 목소리가 퍽 귀엽다... 곧 좋아 죽는 비명을 지르게 되겠지만...!

대답 대신 선셋은 아랫입술을 핥았다. 주어진 시간은 15분, 만약 샤이닝이 키스만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면 선셋은 키스보다 더.. 본격적인 일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선셋의 몸도 본격적인 해소가 필요했고 말이다. 아예 송두리째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셋 쉬머는 원하는 게 있으면 취하는 포니였다.

상대가 되는 포니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간에.... 잠깐...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자마자, 쌓아올려왔던 흥분이 거짓말같이 사라지고 죄책감만이 남았다. 지금 숫기 없는 얘를 잡아다가 의견도 제대로 묻지 않고 선셋 멋대로 휘두르고 있는 꼴이 아닌가? 어찌 보면 인간 세상에서 했던 짓보다 질이 나빴다. 전에는 없었던 물리력, 마력으로 억지를 부린 거나 다름없었으므로, 선셋의 심정은 더욱 더 참담해져만 갔다.

한숨을 쉬며, 선셋은 미안함으로 고개를 숙였다.

"미안.. 난 그냥..."

그냥 뭐? 널 이 자리에서 강제로 따먹어서 내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설명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그리고 애초에 왜 이런 식으로 샤이닝에게 '보상'을 해주겠다고 생각했던 걸까? 지만 좋자고 꾸며낸 허율 좋은 핑계가 아닌가?

"진짜 미안해 샤이니.. 학교로 돌아가자.. 미안.. 나도 모르게 예전.."

선셋은 고개를 좌우로 세게 저으며 말을 이었다.

"시-신경 쓰지 마. 가자. 빨리."

'진짜 이래서는 안 돼.' 선셋은 속으로 언성을 높여 자기 자신을 호되게 질책했다. 

예전 선셋도 이 정도로 막 나가진 않았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기만, 유혹, 조작, 위협 등의 수단을 가리지 않고 썼긴 해도, 언제나 넘어가선 안 될 일정 선을 그어두고 있었다. 때때로 물리적 수단도 쓰긴 했지만, 그건 언제나 강도나 빈집털이 같은 놈들에게서 자기보호수단으로 썼을 뿐, 인간 학생들이나 포니들을 협박하기 위해 대놓고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샤이닝 아머가 진지한 표정으로 선셋에게 물었다. "왜 그래? 선셋?"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거짓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런 자신에게 엄청난 거부감이 들었다. 샤이닝 아머에게 보답을 해준답시고, 순간의 성욕에 휩싸여 평생 용서 못 받을 짓을 저지르려고 했었으니까.

'아냐.. 그 정도는 아닐 거야...'

선셋은 속으로 자기변호를 시작했다. 전에도 이거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샤이닝 아머는 별 말 없었고, 그리고 스스로 너무 심하다 생각했을 때 그때처럼 알아서 제동을 걸었으니까. 예전과 달리 선셋은 권력욕에 심취해 모든 걸 차지하려고 눈이 벌게진 그런 괴물이 아니었다.

그렇게 선셋은 우두커니 서 있다가, 마침내 샤이닝 아머를 쳐다보았다. 아무 일 아니라고 그냥 은근슬쩍 넘어가고 싶었지만, 선셋의 마음 한편에서 크게 자라난 양심이 선셋의 이런 태도를 호되게 질타 중이었다. 결국 별 일 없이 끝났고, 또 선셋이 스스로 자제심을 발휘했다고 하더라도, 이걸 그냥 옆으로 치워두고 없는 일 취급하는 건 싫었다.

그래서.. 선셋은 긴 한숨을 내쉰 뒤, 힘이 풀린 눈으로 샤이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샤이니.. 이야기좀 할래?"

"저.. 근데.. 시간이.. 몇 분밖에.."

샤이닝은 쭈뼛쭈뼛 확답을 하지 않았고, 그 까닭에 선셋의 기분은 한층 더 가라앉았다.

"하-하-하지만.. 개근하는 것보단 네가 더 중요하니까.."

샤이닝은 선셋에게로 다가가 자기 몸을 착 붙였고, 선셋은 깜짝 놀라 샤이닝을 쳐다보았다.

"...빨리 끝낼 수 있지? 1교시 수업 종까지 약 10분남은 것 같으니, 빨리 안 들어가면 지각-"

더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선셋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무슨 새나라의 어린이신가, 어떻게 저리 멍청해 보일정도로 순진할 수 있는지...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아까 선셋이 느꼈던 자책감까지 섞어서 감정 섞인 앞발굽 한 방을 자기 머리에 내려찍어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리고만 싶었다.

물론..!

진짜 그런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선셋은 입으로 큰 숨을 들이쉰 뒤 내뱉었다.

일단은..

지금 닥친 문제부터 집중하는 게 좋겠다.

호르몬이 널뛰기하는 알리콘의 문제가 아닌, 오롯이 샤이닝의 문제 말이다. 일단 학생이라는 신분 상 출석 자체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테니 그 점은 이해해야했다. 그리고 샤이닝은 선셋이 빨리 이야기를 끝내주길 원했지만, 지금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다 하려면 시간을 멈추지 않고서야...

선셋은 잠깐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런 방법이 있었군!

"빨리 끝내줄 수 있어."

이렇게 말하고 나서 선셋은 잠깐 필요한 주문의 유효 범위를 대충 측량한 후, 뿔에 마력을 모아 샤이닝 아머와 자신의 주변에 마력의 막을 쳤다. 시전하는 중간에 운 없는 동물이 막 사이에 행여나 끼지 않도록 약간 신경을 쓰면서 말이다.

주문 시전이 끝나고, 선셋은 주문이 제대로 작용했는지 마력장 바깥을 살폈다. 제대로 된 것 같아 선셋은 벙찐 얼굴로 멍하게 서 있는 샤이닝 아머를 돌아보았다.

샤이닝 아머는 얼떨떨한 어조로 겨우겨우 말을 꺼냈다. "바...방금 뭐한 거..."

과학을 논할 시간이로군. 선셋의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음욕 같은 어두운 감정에 비해, 과학은 이성적이고 또 이론 자체만 두고 보면 순수했으니까.

"네가 지각할까봐 걱정하는 것 같기에, 한정 지역 시간 지체 마력장을 우리 주변에 걸어두고, 그 효력을 1000배로 증폭시켰지."

이렇게 대답하고 선셋은 이해를 도와줄 예시를 두런두런 찾기 시작했다. 그냥 주변에 널린 나뭇가지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 보다 더 확 와 닿는 예시를 찾아야만 했다.

"저.. 알아먹게 좀 이야기해줄래?" 샤이닝 아머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어조로 되물었다.

논문으로 내자면 100장 이상은 우습게 넘어가는 복잡한 내용을 요약하자니 갑갑했지만, 주문의 작동 원리를 세세히 설명하느니 차라리 결과만 딱 때서 설명하는 게 좋겠다고 선셋은 생각했다.

"시간을 멈췄어."

별 것 아니라는 어조로 말하며, 선셋은 마력장 밖에 보이는 공중에서 멈춘 새를 앞발굽으로 가리켰다.

선셋이 가리킨 쪽에 있는 멈춘 시간 속의 울새를 바라보며, 샤이닝 아머는 경악에 찬 표정으로 선셋을 쳐다보았다. 겁에 질린 표정인지, 아니면 그냥 대단해서 그러는 건지 선셋은 알 수 없었다.

둘 중 뭐가 되었든 선셋은 불편했다.

샤이닝 아머가 마치 범접 못할 걸 쳐다보는 것처럼 선셋을 쳐다본다는 이 사실이 말이다.

"이-이-이게 가능해?"

평소대로라면 기쁘게 대답해줄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지금은 별로 기쁘지만은 않았다.

"뭐... 최근까지만 해도 불가능하긴 했지."

전학 수속을 기다리는 동안 하릴 없이 새로이 얻은 마력을 이래저래 굴려보다가 알아낸 사실을 이야기하며, 선셋은 잔디밭 위에 앉았다.

"근데.. 어.. 절대 이 막 바깥으로는 나가지 마. 위험하거든.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어."

마력장의 경계면을 약간 더 확장시키며 선셋은 말을 이었다. 

"힉! 알았어!"

샤이닝은 겁이 난 듯 선셋의 곁에 바짝 붙었다. 이 얼어붙은 시간의 속에서, 둘의 체온과 호흡만이 고립된 듯 흐르고 있었다.

"그나저나.. 뭘 이야기하고 싶다는 건데?"

샤이닝 아머의 질문에 선셋은 하마터면 주문의 제어를 약간 흐트러뜨릴 뻔 했다. 대체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좋을지 이걸..

이야기해야할 게 너무나 많았다. 캐이댄스의 일부터, 선셋도 이퀘스트리아에 계속 있고 싶지만 떠나야만 한다는 거랑 트와일라잇의 일, 그리고.. 샤이닝 아머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게 머저리 같은 이유까지.. 꾹 눌러 담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옛 성격이 샤이닝 아머랑 같이 있을 때 튀어나온 바람에, 선셋은 '내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나.' 하는 회의감까지 들 정도였다.

그래서 선셋은 특히 샤이닝 아머를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에 대해서는 꼭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다.

샤이닝 아머도 꼭 알아야 했다.

"네가 널 여기 왜 데리고 왔을 것 같아?"

영 종을 잡을 수 없는 듯, 샤이닝 아머는 대답했다. "어... 이야기 하려고?"

처음에 선셋은 내 볼에 뽀뽀한 용기가 가상해서 상 삼아 한번 대주려고 했노라라고 있는 그대로 말하려고 했다. 제대로 키스하는 법도 가르쳐주려고 했었다. 볼에 쪽 하고 끝내는 건 선셋 입장에서는 키스도 뭐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것도 중요한 거 싹 뺀 자기변명에 가까웠다. 정작 샤이닝 아머를 구석에 몰아넣고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길 대놓고 유도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던 건 선셋 본마였다. 아무리 그동안 머뭇거리기만 하는 샤이닝에게 애간장이 다 녹았어도 이건 할 짓이 아니었다.

그래서, 선셋은 샤이닝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응당 그래야만 했었으므로.. 

다 끝나고 샤이닝이 선셋을 혐오하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샤이니는 선셋의 곁을 떠나 캐이댄스에게 선셋에 대해 말할 테고, 그렇게 캐이댄스와의 우정도 끝장나는 거고, 결국 셀레스티아는 선셋을 '다시' 한 번 쫒아낼테고, 그러면...

아니.. 단계적으로 몰락하는 미래에 대한 미친 예상은 일단 접어두자.. 선셋은 심호흡을 하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여기서 같이 섹스하자고 온 거야."

샤이닝은 화들짝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선셋은 헛웃음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날 싫어하기 시작했군..

"키스로 시작해서, 서로 몸 좀 더듬거리다가.. 분위기 타면 제대로 한 판 해볼 생각이었지 원래는..."

강제로 범하는 대신 유혹이라는 방법을 썼다고 해도, 결국 선셋이 원하는 방향으로 강제하는 거나 다름없으므로 순전히 선셋의 잘못이었다.

샤이닝 아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얼굴은 이미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있었다.

"뭐-뭣?!"

저 두 눈동자에 가득 담긴 경악도 곧 멸시와 분노로 바뀌겠지.. 하긴, 눈앞에 선 진면목을 알게 되었는데 무얼 더 바라겠냐만은..

작은 태양의 공주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판이 엎어진 걸 상관도 않고 여전히 육욕을 요구하고 있는 자신의 육체가 한심했던 까닭이었다. 

"더 최악인 게 뭔 줄 알아? 여전히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는 거야.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심지어 까딱 잘못했다간 널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당장 너랑 이 자리에서 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다고 지금!"

선셋은 공중에 멈춰 있는 날씨 관리 페가수스를 올려보며 말했다. "망할.. 나 진짜 한심하네.."

곧, 선셋의 어께에 가벼운 무게감이 느껴졌다. 측은한 표정으로 샤이닝 아머가 선셋의 어께에 앞발굽을 올린 거였다. 선셋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샤이닝을 쳐다보았고, 샤이닝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선셋.. 왜 이런 이야기를 해? 한심하다니 누가? 너 같이 멋진 포니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데."

저 바보, 난 너를 구해주려고 이러는 건데 왜 자꾸 달라붙고 난리야! 아 정말 짜증나!

"너, 나에 대하서 잘 모르는구나?"

선셋은 네 다리로 일어나 표정을 있는 대로 찡그렸다.

"고작 일주일 만난 것 가지고 아는 체 하지 마! 너, 전에 나 만나봤어? 아주 괴물새끼가 따로 없었거든?! 남이 괴롭든 말든 내가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다 가져갔고, 다른 포니들을 순전히 재밌다는 이유로 부려먹고 쓰레기 내버리듯 버렸다고! 근데 제 버릇 못 버리고 또 이러고 있으니.. 내가.. 아 씨발!"

아침 이슬에 잔디가 상당히 축축히 젖은 것도 아랑곳 않고 선셋은 자리에 푹 주저앉았다. 하필 꼬리를 깔고 주저앉는 바람에 황급하게 꼬리를 뺐고 대단히 쪽이 팔린 나머지 온 몸을 잔뜩 움츠렸다.

시간이 멈춘 세계는 바람조차 불지 않았다. 나직하게 깔린 적막함을 뚫고 샤이닝이 머뭇거리며 운을 떼었다.

"저.. 요점을 벗어난 것 같은데.."

문득 샤이닝 아머가 던진 말에, 선셋은 샤이닝 아머를 돌아보았다. 사려 깊은 눈빛으로 샤이닝 아머는 선셋을 살피고 있었고, 그 바람에 선셋의 가슴은 또 한 번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계속 날 신경 써 주는구나.. 난 그럴 자격도 없는 포닌데.. 

"대체 왜 그래? 왜 자꾸 그런 말을 내게 해주는 거야?"

혹시나 이러면 그만둘까 싶어 선셋은 샤이닝 아머를 노려보았지만, 샤이닝 아머는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샤이닝의 눈빛을 못 이기고 고개를 숙인 건 선셋이었다.

선셋은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 중이었다. 왜 샤이닝에게 자신의 본질에 관한 진실을 털어놓았을까? 샤이닝 아머랑 헤어지려고? 만약 선셋이 그걸 진심으로 원했으면 그냥 깔끔히 해어지고 말았지 이런 궁상은 떨지 않았을 것이다. 샤이닝을 속여온 죄책감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데 쓸데없이 육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선셋의 이성의 최후통첩인 것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미-미-미안."

선셋은 사과를 하며 뿔에 마력을 집중했다. 둘을 둘러싼 차원이 이지러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말 못해.. 당장 학교로 돌려보내줄게."

겁 주는 게 안 통한다면, 마법을 사용하면 잠깐 동안은 샤이닝 아머가 깊게 알려고 드는 걸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래도 점심심간에 샤이닝은 물론이고 캐이댄스까지 가세해 또 이거 비슷한 소동이 반복되겠지. 하긴, 고민 있는 친구의 고민을 해결해주는게 친구가 할 일 아니던가..

하지만... 선셋은.. 샤이닝 아머가 필요치 않았...

'아냐!' 눈을 깜빡여 눈가에 어린 눈물을 숨기며 선셋은 속으로 외쳤다.

'샤이닝 아머가 필요해. 진심으로. 친구도 되고 싶고, 애마도 되고 싶어. 걔의 모든 걸 가지고 싶은데 왜!'

그렇다. 언젠가는 샤이닝 아머랑 헤이질 수밖에 없었지만, 샤이닝 아머가 과연 선셋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에 관해서 자기 자신을 계속 속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샤이닝 생각으로 선셋이 정신이 흐트러져서 주문의 시전이 평소보다 더 늦어진 덕분에, 샤이닝 아머는 시전이 완료되기 전 아슬아슬하게 선셋의 뿔을 앞발로 감쌀 수 있었다. 아주 강하게 끌어안은 건 아니었지만, 주문을 취소시킬 정도로는 충분했다. 선셋의 시야는 순식간에 샤이닝 아머의 흰색 몸통으로 가려졌다.

"이러지 마."

굳건한 어조로, 샤이닝 아머는 선셋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네 곁에 있어야 될 것 같으니까. 자. 자. 괜찮아. 괜찮아. 화낼 필요 없어. 괜찮아."

저 차분한 목소리.. 선셋의 등골이 왠지 모르게 오싹했다. 샤이닝은 뿔에 올렸던 발굽으로 선셋의 갈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전에도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있는 듯한 발놀림이었다. 샤이닝 아머의 체취가 선셋의 감각을 휘감았다. 하지만 음습한 욕구는 더 이상 없었다. 저번에, 샤이닝 아머의 방에서 단 둘이 있었던 때처럼 샤이닝 아머의 품에 평생 안겨있고만 싶었다.

물론 둘의 관계가 어떻게 끝날지는 선셋 본마가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비단 이것뿐만이 아닌 어머니가 주는 사랑, 가장 친한 친구, 마법, 선셋의 삶의 목적까지.. 한 달 조금 못 되는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걸 다 놓고 떠나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으니까. 트와일라잇이 원래대로 우정의 공주로 자라나려면, 선셋 쉬머는 원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했으니까..

막막한 절망감이 선셋의 심리를 압도했다. 다시금 눈앞이 흐려졌다. 코를 훌쩍이며 고통에 가득 찬 탄식을 내뱉은 뒤, 선셋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샤이닝 아머는 어께를 내밀었고, 선셋은 그 어께에 기대 목을 놓아 울었다.

모든 게 다 불공평했다. 여러 고생을 해 가며 다시 찾게 된 행복은 순식간에 사라지게 될 헛되고 뒤틀린 환상에 불과했다. 어머니도 잃게 될 것이고 친구들과 샤이닝도 잃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걸 희생하는 대가로 선셋이 얻는 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싸구려 임대 아파트? 세계의 존망보다 게임의 승패를 더 중요시하던 멍청한 유인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세계? 허울뿐인 학교 공주의 직위? 싫어.. 가고 싶지 않아.. 선셋은 한사코 마음속으로 거부했다.

샤이닝은 계속 선셋을 껴안고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모든 게 괜찮게 풀릴 거라고 계속 선셋의 귀에 대고 속삭여주었다.

그럴 리가 없었지만.

상반된 두 개의 감정 사이에서 선셋은 갈등 중이었다. 괜찮을 리가 없잖아! 라고 버럭 소리 지르고 싶었다. 절대 샤이닝의 말 대로 괜찮게 끝날 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샤이닝의 따뜻한 품 안에 안겨 단호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를 받고 있자니.. 이 상황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선셋은 차마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몇 분.. 아니, 몇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선셋은 울음을 그쳤다. 선셋의 격한 감정 표현이 좀 잦아들었어도 샤이닝은 계속 선셋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선셋을 달래고 있었다. 이윽고, 선셋이 숨을 좀 고른 것 같아서 샤이닝은 선셋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기분 좀 풀렸어?"

선셋은 대답을 미루고 눈을 감으며 잠깐 동안 샤이닝 아머와 함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즐겼다. 샤이닝 아머의 심장이 뛰는 소리는 그 가슴에 품고 있는 마음씨만큼이나 자상하고 잔잔했다.

"약간은.."

자신의 눈물로 이미 흥건한 샤이닝 아머의 털에 얼굴을 묻으며 선셋은 대답했다.

그리고 선셋은 샤이닝 아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어떻게 저렇게 완벽한 대처를 할 수 있는 거지?

"샤이니.. 저...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 아니.. 그게 있잖아.. 엄청 익숙한 일인 것처럼 막 그러길래..."

"내 동생 정신과 상담의에게서 배운 거야. 트와일리는 일주일에 2번 정도 공황 발작을 일으킬 때가 있거든.. 그럴 때마다 꾸준히 옆에서 자기가 도와주겠노라고 응원을 해주는 게 좋다고 하더라.. 그리고.. 미안.. 네가 힘든 걸 빠르게 눈치 채지 못해서."

선셋은 한숨을 쉬며 샤이닝에게 자신의 몸을 완전히 기댔다. 왜 쟤가 나한테 사과를 하는 거람?

"사과는 뭘.. 바보짓 한 내가 먼저 사과해야지.."

샤이닝은 말없이 선셋의 콧잔등에 짧은 입맞춤을 해 주었다. 깜짝 놀란 선셋은 수줍게 양 볼을 붉혔다.

"선셋... 그럼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차근차근히 이야기해 줄 수 있어?"

이번에는 속절없이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왜 아까까지 목 놓아 울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직접적인 답변은 할 수 없었다. 제발 떠나지 말아달라고 선셋을 붙잡는 포니들을 무시하면서 인간 세계로 떠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미안.. 못 하겠어 샤이니.. 공주님들만의 일이야. 이해 좀 해줘."

샤이닝 아머는 대답이 없었다. 묵묵히 선셋을 끌어안고 있을 뿐이었다. 샤이닝이 옆에 있는 게 선셋은 마냥 좋았다. 펑펑 울어 감정적으로 완전히 지친 상태였으므로 타오르던 성욕은 이미 불이 다 꺼진 상태였다. 그냥 샤이닝과 함께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을 뿐...

"그나저나.. 아까 너의 말에 대답하자면, 솔직히 난 네가 일주일 전 어떤 포니였는지는 전혀 신경 안 써. 내가 아는 선셋 쉬머는 누구도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날 구해줬고, 속은 썩이지만 사랑스러운 내 동생의 평생소원도 들어줬고, 그 누구보다 우리 엄마를 공손하게 대해준 포니니까."

침을 꼴깍 삼키며, 샤이닝의 말은 잠시 멎었다.

"저..그...그리고.. 좀 야한 주제로 넘어가자면... 아깐 거짓말 안 하고 나도 속으로 은근히 바라고 있긴 했었거든."

샤이닝은 잠깐 눈을 깜박거리며 말을 이었다. 

"허.. 캐이댄스 말 대로네. 생각 하고 말을 하니까 말이 더 잘 나오네. 어-어쨌든, 너 혼자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건 아니니까.. 음.. 너무 죄책감 느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야. 기왕 말이 나와서 하는 이야긴데, 가끔가다 머릿속에 네 모습만 떠올라 주체를 못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난.. 음.. 알지?"

다행히 선셋의 정욕에 다시금 불이 붙기엔 선셋은 이미 감정적으로 녹초가 된 상태였다. 이미 내면의 갈등으로 인해 선셋의 내면은 만신창이인 상태였으니까. 게다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샤이니.."

선셋은 속으로 할 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비록 평소보다 오래 걸렸긴 했지만 말이다. 포니끼리 껴안고 있는다는게 이렇게 좋은 일일 줄이야..

하지만 이런 편안한 상황에서도, 선셋은 여전히 긴장 중이었다. 샤이닝에게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에 담고 있던 생각을 폭로해버린 이후로 계속 그랬다.

"무슨 소리야? 간단하지 않다니?"

선셋은 한숨을 쉬고 두 눈을 꾹 감았다.

'제발.. 이 이야기가 다 끝나고 날 무서워하지 말아주길..'

물론 이러면 샤이닝과 헤어지는 일이 더 쉽겠지만, 가급적 샤이닝 아머가 곧 떠나게 될 선셋에 대해 좋은 기억만 남겼으면 하는 게 선셋의 바람이었다.

"...내가 얼마나 강한지, 너도 잘 봐서 알지?"

"하하.. 응."

"내가 알리콘이 된 이후 얼마나 육체적 능력이 강해졌는지 스스로 실험해봤어. 뭐, 너도 오늘 아침에 내가 약한 지진을 일으키는 걸 봤겠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야.. 변화하면서 내 육체의 마력 연결이 어떻게 꼬였는지는 몰라도, 내가 격한 감정을 느낄 때마다 마력으로 강화되는 육체의 물리력을 잘 제어할 수가 없어. 까딱 화가 나서 발굽이라도 내려쳤다간 뭐... 사비로 재난복구기금을 마련해야할 정도이고, 하늘을 날면서 약간 흥분이라도 했다간 내 날개에서 터져 나오는 풍압 때문에 날씨가 바뀌고 말아."

선셋이 제체기 한번 잘못해도 샤이닝 아머가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고 있는데도 샤이닝 아머는 미동조차 없었다. 심지어 샤이닝의 몸에 기댄 선셋의 귀를 타고 들려오는 맥박도 전혀 변함이 없었다.

"..정말.. 종이로 만든 세상 속에서 사는 기분이야.."

샤이닝은 가만히 선셋의 갈기를 쓸어주었다.

"너무 네 자신에게 엄격한 것 같다. 나도 다친 적 없고, 트와일리도 다친 적 없는데."

싱긋 미소를 지으며 샤이닝은 말을 계속했다.

"쯧, 심지어 그 때 벅도 그냥 의식을 잃는 선에서 그친 것 같구만 뭐."

하지만 선셋의 속은 전혀 편해지지 않았다.

"그거야 그 땐 확실히 자제 중이었으니까. 널 처음 만났을 때도 자제 중이었고. 근데 우리가 계속 만날 때마다 자제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으니 그게 문제야. 자칫했다간 네가 크게 다칠 수도 있으니까. 망할.. 그냥 내가 가만히 대주고 있는다고 해도, 내가 너무 세게 조이는 바람에..  네... 거기가... 음... 망가질지도 모르고.."

비로소 샤이닝 아머의 온 몸이 공포로 바짝 움츠러들었다.

그럴 만 했다. 선셋도 별로 마음을 두지 않았다.

어떤 수말이라도 저런 반응이었겠지.

"아...!"

여전히 선셋을 쓰다듬고는 있었지만, 샤이닝 아머의 목소리엔 불편한 낌새가 역력했다. 샤이닝은 이제 뒷다리를 기묘하게 오므리고 있었다. 아마 저 안에 숨긴 내용물도 바짝 오그라들었을 것이다.

"아...아직 모르는 거잖아.. 그치?"

거시기가 박살나는 것보다 더 정신 나간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선셋은 까르르 웃었다. 

"그러긴 해. 그래서 학교 끝나고 난 뒤 도구들을 여러 개 사서 실험을 해볼 생각이야. 내가 절정에 달할 때 과연 가해지는 압력은 얼마 정도며, 물체의 강도는 또 어느 정도여야 안 망가지는지."

제 입으로 털어놓고도 정말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선셋은 배시시 웃었다.

"그..그...그... 그거, 정말 좋은 생각 같다...참..."

스스로도 정신 나간 소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샤이닝은 비꼬거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구석 없이 동의를 해 주고 있었다.

"엥?"

"그 실험.. 좋은 생각 같다고. 네가.. 어.. 나랑... 만약.. 할 때를.. 대비해서..."

샤이닝의 두 볼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선셋은 샤이닝이 귀여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흠~ 생각 좀 하고 말하라는 캐이댄스의 조언이, 막상 야한 이야기가 나올 땐 실천이 잘 안 되는 모양인가봐?"

샤이닝의 홍조가 더 깊어지는 걸 보며 선셋은 얇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불현듯 캐이댄스에 생각이 미치자 선셋의 기분은 다시 가라앉았다. 이런 좋은 친구들을 두고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자니 속이 아려왔지만.. 이것만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샤이닝의 실연의 충격을 완화할 방법은 딱 하나 있을지도 모른다.

"...널 진짜 좋아하더라."

"누-누가?"

갑자기 화재가 바뀌어 적응이 안 되는 듯, 샤이닝 아머는 말을 다시 더듬거렸다.

"캐이댄스."

샤이닝 아머의 표정만 봐도 그 생각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걔가?!"

"왜?"

"캐이댄스가 날 좋아한다고?"

눈을 반쯤 감고 뚱한 표정을 지으며 샤이닝 아머는 되물었다.

"불과 2분전만 해도 나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얘가?"

선셋은 쀼루퉁하게 두 눈을 옆으로 굴렸다.

"누군 네 앞에서 소리 안 질렀나.. 자기주장 강한 알리콘을 처음 만난 것처럼 그런다?"

씨익 웃으며 선셋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캐이댄스가 너보고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의미로 애정 섞인 잔소리를 하는 거지."

'지금 그대로도 완벽하긴 하지만.. 독려를 해 줄 필요는 있겠군.' 선셋은 생각했다.

"그리고, 야. 너 경비대에 입대할 생각이라면서? 훈련 교관이 하루 종일 심하게 쪼아댈 텐데, 이 정도도 못 견디면 어떻게 해?"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목소리라도 낮춰줬으면 ... 잠깐... 방금 걔가 날 좋아한다는 게, 네가 날 좋아하는 것처럼 좋아한단 이야기야?"

그렇다고 대답을 하려고 하다가 선셋은 망설이고 있었다.

이게 맞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선셋은 곧바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선을 넘으면 돌이킬 수 없음을 선셋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또 포니간의 관계를 함부로 조종중이군.. 나만 없으면 모두 만사형통이라는 게 사실일지도 몰라.'

하지만 선셋이 떠난다면.. 샤이닝 아머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포니가 꼭 필요했다. 사려 깊고, 자상하고, 끈질긴, 그러면서도 샤이닝 아머가 실연의 아픔을 딛고 제 정신을 차리게끔 독려를 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셋은 주저하는 마음을 털어버리고 명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니까? 어쩌면 나보다 더 널 좋아할지도 몰라."

여러 번 남자들과의 관계를 정리해본 경험에 따라 선셋은 미리 밑밥을 깔아두었다.

"너한테 잔소리를 하는 것도 아마 네가 걔한테 관심을 별로 안 가지니까 답답하고 짜증나서 그러는 거겠지. 내가 너한테 그런 쪽으로 관심이 있는 건, 달리 말하자면 걔도 너한테 그런 쪽으로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니까."

샤이닝 아머는 선셋 쉬머를 더 꽉 끌어안으며 머뭇거렸다. "나...난.. 네가 있는데-"

"알아. 그래도..."

선셋은 몰려오는 감정을 애써 진정시키며 입을 다시 열었다.

"가..가끔 생각하는 건데, 너한테는 나보단 캐이댄스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 걔는 더 예쁘고, 친절하고, 착하기까지 하잖아. 나중에 네가 결국 걔랑 사귄다고 해도.. 뭐 어쩔 수 없지.. 걔가 나보단 훨씬 나으니까.."

샤이닝은 묵묵히 선셋을 계속 끌어안고 있었지만, 캐이댄스에 대한 암시가 어느 정도 먹혀들어갔으리란 걸 선셋은 예상할 수 있었다.

"...아냐. 넌 캐이댄스보다 훨씬 멋진 공주님인걸."

받을 자격 없는 칭찬에 선셋은 한숨을 쉬었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이미 그러기엔 너무나 피곤했다.

큰 하품이 나왔다. 샤이닝의 몸을 배게 삼아 잠에 빠지고 싶었다.

"샤이니.. 잠깐만 이러고 있으면 안 될까? 나 피곤해.."

"어... 그럼,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지.."

"수업 종 칠 때까지?" 선셋은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피곤하긴 했지만, 현재 잔여 마력으로 시간 정지 주문을 얼마나 더 연장할 수 있을지는 충분히 계산할 수 있었다.

"2달 정도 걸릴걸.."

그리고 선셋은 땅 위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처음 부려보는 어스 포니의 마법은 신기하고도 기묘했다. 별로 의식하면서 마력을 조작하지 않아도 선셋의 발 아래로 흘러내린 마력은 땅 위에 돋아난 잔디를 거의 고급 침대나 다름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윤기 있게 변화시켰다. 알리콘으로 승천하기 전엔 미처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너 편할 대로 해 그럼.." 샤이닝 아머는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셋은 샤이닝의 가슴에 얼굴을 더 깊게 파묻은 뒤 바짝 무거워져오는 눈을 감았다. 

이건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 선셋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파국을 맞기 전에 마지막 단 한 번이라도 연모하는 포니의 체온을 가까이서 느끼고자 하는 욕망을 공주는 거부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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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교시 수업 종료 종이 울렸다. 플뢰르 드 리는 책가방에 주섬주섬 교과서를 집어넣고 친구들과 함께 교실을 나섰다. 3교시가 친구와 같이 수업을 듣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그 다음 어퍼 크러스트는 지루하디 지루한 경영학 수업을 들으러 가고, 새시는 약간 좀 뭐랄까.. 잘못 소문이 퍼졌다간 명망 깎이기 딱 좋은 직업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새시의 큐티 마크가 의류 관련이긴 하지만, 왜 한사코 재봉술 수업을 듣겠다는 건지 플뢰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패션 업계가 캔틀롯에서 사회적으로 높은 취급을 받는 집단이긴 했지만, 모델과 의류 제작자 사이엔 매울 수 없는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한 필의 친구가 같은 업계쪽으로 진로를 정해줘서 플뢰르는 안심이 되었다. 같은 업계에 각자 다른 위치에서 서로를 도와가며 같이 올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한 포니가 의상을 제작하고, 다른 한 포니는 그 의상을 입고 마음껏 런웨이에서 그 자태를 뽐내 둘이 서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가는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진정한 절친의 의미가 아닐까?

절친이라.. 옛 기억이 떠올라 플뢰르는 미소를 지었다. 몇 년 전, 플뢰르는 여타 또래 암말들처럼 자신이 성 정체성을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서로 실험을 해 본 적이 있다. 그 결과... 둘은 그냥 친구사이가 편하다는 게 증명되었고, 둘은 그냥 절친사이로 쭉 남게 되었다. 또한, 플뢰르의 부모님도 플뢰르가 캔틀롯 상류층과 선을 봐 결혼하기를 원했고, 거기에 대해선 플뢰르도 별로 반항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다 플뢰르의 미래를 위해서 그러시는 것일 테니.

"지금 무슨 생각해?"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동안, 새시가 플뢰르의 곁에 다가와서 불쑥 말을 건넸다.

새시의 얼굴엔 걱정하는 낯빛이 가득했기에, 플뢰르는 친구를 안심시키기 위해 활짝 미소를 지으며 옅은 웃음소리를 냈다.

"미안. 잠깐 옛 추억 떠올리느라 여념이 없었네."

플뢰르는 방금 말을 건 친구를 쳐다보았다... 누군가가 빠진 것 같았다.

"크러스트는 어디 갔어?"

"그 얘가 가십이라면 사족을 못 쓰잖니. 선셋 공주님에 대해서 새로 뜬 핫 가십이 있다기에 앞뒤도 안 살피고 무슨 일 인지부터 알아보러 갔다니까 글쎄.. 3교시 수업 시간에 보재."

선셋 쉬머 공주. 그 이름만 들어도 플뢰르의 몸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어제 그 '불편한 만남' 이후로 플뢰르는 선셋 쉬머에 대한 여러 가지를 알아봤는데, 들리는 풍문만 해도 뭐 이런 포니가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어마무시했다. 일단,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학교 최우수 성적 학생이었으며, 마력의 강도는 그 학교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수들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는데, 이게 전부 선셋이 공주로 승천하기 전부터 떠돌던 이야기였다! 학교 먹이사슬의 최정점에서 군림했다는 점은 얼핏 플뢰르와 유사했으나 일단, 선셋과 플뢰르는 일단 다니던 학교의 급부터가 달랐고, 군림을 위해 주변마를 이용한 소셜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했던 플뢰르와는 달리, 선셋은 오직 독고다이 뿔 하나로 학교를 휘어잡았다.

선셋에게 도움 따윈 필요가 없었다. 이제 알리콘까지 되고 말았으니 그 힘은 끝 간 데를 찾아볼 수도 없다 하겠다.

하지만 선셋의 마력보다 더 두려웠던 게 뭐냐면 공주로써 선셋이 휘두를 수 있는 사회적 영향력이었다. 사실상 말 한마디만 해도 이퀘스트리아의 정치판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플뢰르의 아버지가 선셋 쉬머 공주의 기자회견이 실린 신문을 보면서 말씀하시기론 이 제법 강단이 있는 공주가 등장한 뒤, 곧 있을 이퀘스트리아-그리폰스톤 회담 때그리폰스톤과의 무역협정을 재조정하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고 했다. 

구토 왕의 쇄국 정책 때문에 그리폰스톤의 경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고, 인접국인 이퀘스트리아는 마도적 차원으로 그리폰스톤에 계속 경제적 지원을 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지원을 해 줘도 이렇다 할 개선 여지를 보여주지 않는 그리폰스톤에 환멸을 느낀 수많은 포니들이,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을 성미의 새 공주가 배째라식으로 나오는 그리폰 사절의 기를 팍 꺾어주기를 바라며 지지입장을 표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플뢰르가 작은 태양의 알리콘의 성질을 건드렸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선셋은 패션계 유명 인사에게 '저 암말 맘에 안 들어요.'라고 한마디만 하면 땡이다. 그 한마디에 플뢰르가 패션 계에 품었던 꿈도, 포부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해서, 공주와의 만남이 상호간에 유쾌하지 않게 마무리된 이후로 플뢰르는 한동안 선셋 앞에서 몸을 사리기로 했다. 이 선셋 쉬머란 포니는 벌레처럼 플뢰르를 밟아버릴수 있기에.

바퀴벌레 밟듯 자신을 밟는 선셋의 모습이 연상되자, 플뢰르는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덜어버렸다. 그리고 여전히 염려하는 얼굴로 자신을 살피는 친한 친구에게 서둘러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럼, 지체 말고 빨리 교실로 가자."

그렇게 두 필의 상류층 포니는 다음 수업이 있는 곳으로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반 정도 가고 있을 무렵, 새시가 문득 플뢰르에게 질문을 던졌다.

"드레스 선물하면.. 받으실까?"

"뭣?" 플뢰르는 의문에 가득한 눈길로 새시를 쳐다보았다.

"선셋 공주님말야."

순간, 플뢰르는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 했지만, 새시가 바로 마력으로 부축을 해준 덕분에 웃음거리가 될 일 없이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네가 선셋 공주에 대해 걱정하는걸 내가 뻔히 눈치 못 챘을까봐.. 그렇게 그 포니가 걱정된다면 선물로 환심을 사 보는 건 어떨까?"

본능과 수없이 쌓여온 습관이 무의식적으로 새시의 제안을 넙죽 받아들이려던 플뢰르의 뇌에 제동을 걸었다. 그랬다간 다들 플뢰르가 선셋에게 먼저 굽히고 들어간다고 오해할 테고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려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수양딸 정도나 되는 포니를 대놓고 적대했다간 국물도 못 찾으므로, 플뢰르는 애써 웃으며 벌벌 떨려오는 몸을 진정시킨 뒤, 억지로 밝은 척을 한 티가 풀풀 나는 목소리로 새시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거. 참. 좋은 생각인 것 같다. 하하."

어느 새 둘은 연금술 교실 앞에 도착했다. 교실 문을 열며 플뢰르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자신이 어쩐지 민망스러워, 선셋의 흠집을 양분 삼아 자신의 자신감을 보충할 생각으로 새시를 돌아보며 물었다. 

"근데 어퍼 크러스트가 들은 가십이라는 게 대체 뭘까? 선셋 공주에 관한 거라고 하던데.."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선셋 공주가 최근에 캐이댄스 공주랑 함께 데리고 다니는 그 수말 있잖아. 그 수말 안색이 지금 영 안 좋은걸 보니 혹시-"

"너흰 그 소문의 장본마 앞에서 대놓고 뒷담화를 하는 아주 대담한 취미가 있나보다?"

둘은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보았다. 두 쌍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졌다. 선셋 공주가 연금술 교실 제일 뒷자리의 구석에 앉아 날카로운 눈빛으로 둘을 째려보고 있었다.

아뿔싸! 제일 뒷자리에 앉아 있어서 눈치 채지 못 했었나?! 왜 하필 이런 곳에.. 하긴, 유니콘 학교에서 최고 수재였다면 굳이 앞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는데 열과 성을 다 하지 않더라도 높은 성적을 받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테니...

제 친구와 긴장에 찬 시선을 교환한 뒤, 플뢰르는 작은 태양의 반신에게로 다가왔다.

"저.. 공주님.. 제 말은 그게 아니고.."

선셋은 꼴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리더니,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둘을 지긋이 쏘아보았다. 그리고 둘 주변을 느린 속도로 돌며 입을 열었다.

"1호기, 2호기는 보이는데.. 3호기 어디 갔어?"

선셋의 어조에는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두 포니에 대한 경멸이 가득 실려 있었다.

압도적인 분위기에 플뢰르와 새시는 완전히 질려버리고 말았다. 공주의 흠집으로 자신감을 보충하려고 하다니.. 내가 대체 왜 이런 생각을 했담?

가까이에서 노려만 보고 있는데도 플뢰르는 졸도할 것만 같았다. 그동안 매우 비싼 연금술 미용요법을 받아 늘씬하게 쭉 뻗은 다리를 가진 덕에 키로는 선셋에 비하면 전혀 꿇리지 않았지만, 키만 컸을 뿐 선셋의 전체적인 체형에 비하면 나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플뢰르는 더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3...3호기라뇨?"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플뢰르가 물었다.

"알잖아. 약간 뚱뚱한 애."

새시와 플뢰르는 동시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어퍼 크러스트는 지금 가십을 수집하고 있답니다. 공주마마. 아마도 그 애의 흥미가 다 충족되기 전 까진 교실에 오지 않을 것 같은데요.."

짜증에 찬 한숨이 공주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둘을 한 대 맞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바짝 움츠렸다.

"..할 수 없군. 야. 너희 둘. 할 말이 있어. 그냥 넘어가줄까 했는데 도저히 기분이 언짢아서 안 되겠다."

공주의 어투는 메마르기 그지없었다.

"어떤..주제로..말씀이지요?"

플뢰르는 곁눈으로 오른쪽에 걸린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수업종이 울리기까지 2분 전. 교수는 그것보다 더 늦게 도착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학기 내내 그랬다.

"일단 내 뒷담화를 깐 것도 깐 거지만 뭐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 내 친구 캐이댄스 이야기부터 좀 하자. 걔가 너희들이 소위 보호해준답시고 설쳐대는 탓에 그동안 기분이 엄~~~~청 안 좋았다더라?"

선셋은 숫째 으르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참 나. 지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아나. 캐이댄스가 다른 포니랑 이야기 하는 걸 멋대로 차단하고 지랄이게. 그렇게들 생각들이 없나? 뇌를 셋이서 세트로 벌레에게 파 먹히기라도 했어? 응?"

플뢰르는 또 한 번 마른침을 삼키며 공포에 가득 찬 눈동자로 작은 태양의 여신을 올려보았다.

"저-저흰 그냥 그분을 도와주려고 했던 거에요 공주님! 천박한 부류의 포니들이 캐이댄스 공주님이 전학 오신 첫날, 단순히 그 분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그 분의 뒤를 계속 밟기에 어쩔 수 없이-"

"흥! 그러시겠지. 그리고 다른 포니들과 대화를 단절시켜놓으면 너희들 입맛에 알맞게 캐이댄스를 조종하기 쉬워질 테고! 내가 바본줄 알아?! 너희 수법은 다 꿰고 있어! 나도 그동안 너희 같은 방식으로 해 온 짓이 오죽 많았으니까!"

공주는 플뢰르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쳤다. 그것만으로도 플뢰르의 몸 전체가 불에 타는 것만 같은 아찔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곧, 선셋은 한숨을 푹 쉬더니 이빨을 부득 갈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뭐.. 그 덕분에 너희 같은 머저리들도 구제의 여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뭐랄까.. 약간 누그러진 어조였다.

"그래서 기회를 한 번 줘 볼까 해. 가서 캐이댄스에게 너희들이 한 짓에 대해 잘못했다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와. 안 그랬다간 아까 감히 내 면전에서 뒷담화를 한 벌까지 포함해서 너희들의 내면의 모습과 외면의 모습이 영영 일치하도록 만들어주겠어."

공주의 선고가 끝나자, 새시는 겨우 용기를 내 마음에 걸리는 것 하나를 공주에게 질문했다.

"저.. 공주님.. 내면과 외면이 영영 일치하도록 만든다는 게 대체..."

"제일 못생기고, 소름 돋고, 사회적으로 영영 외면당할 만한 생물을 하나 상상해봐."

선셋은 플뢰르와 새시를 거의 고개로 찍어 누르다시피 하며 말을 이었다.

"캐이댄스가 너희 사과를 안 받아들이기만 해 봐라. 그 모습으로 평생 살 각오를 해 두는 게 좋을 거야."

경악! 한창 그에 해당되는 생물을 연상 중이었던 플뢰르의 머릿속을 채운 감정이었다.

노새?!?

그러니까, 캐이댄스 공주가 사과를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면 선셋 공주가 그 자리에서 즉시 플뢰르와 새시를 더럽고, 악취 나고, 구역질 날 정도로 못생긴 노새로 바꿔버린다는 이야기인가? 기제류 중 가장 못생겼기로 악명 높은 그 생물로?!

플뢰르와 새시, 누가 먼저라 할 거 없이 공포에 찬 비명을 지르며 교실에서 뛰쳐나갔다. 이제 둘의 명줄은 캐이댄스 공주에게 달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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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정도로 컷.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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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출시될 하스브로의 장난감 상품군인 '가디언즈 오브 하모니.'에 관련된 코믹스의 프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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ㅏㄴ 포



오랜만의 코믹스 번역입니다. 전에 발간된 다른 코믹스는 다른 분께서 하셨으니, 보고 싶으시다면 링크==>http://gall.dcinside.com/board/lists/?id=mlp&s_type=search_name&s_keyword=dummy&g_s1=1&g_s2=&g_s3=


여기에서 봐주세요.



제가 예전에 비해 많이 여유로워져서 코믹스까지 작업할 짬이 생겼는데다가, 저 대신 하시는 분이 제게 다시 바톤을 넘겼으므로 제가 다시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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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뮤식의노예

최근 마이 리틀 포니 국내 방영으로 인해 인터넷 검색으로 이 곳에 찾아오시는 12세 미만 미성년자 여러분들과 부모님들에게 안내말씀 드립니다. 이 곳에 게시된 번역된 만화 및 소설류들은 아직 자아 형성이 덜 된 미성년자들이 보기엔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이 허다하므로, 미성년자 여러분은 열람을 자제해 주시길 바라며, 해당 부모님들은 철저히 관리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근데 이렇게 써 봤자 모바일에서는 이거 못 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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