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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26 | 어떤 군대 종교행사의 타천사 강림 (4)

어떤 군대 종교행사의 타천사 강림

Posted by 졸역쟁이 기뮤식의노예

대한민국 군대에 소속된 장병들의 신앙은 언제나 시험을 받는다. 자신의 모태신앙이나 평소에 가지고 있던 신념이 무엇이건 간에, "~교는 핫도그를 준다더라" "~교는 싸제라면을 끓여준다던데?" 라는 이야기만 나오면, 홀아비 좆이 봄바람 맞은 처녀에게 꼴리듯, 저항할 수 없는 유혹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신의 믿음을 배신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성인(聖人)이나 순교자가 될 기질이 없는 거겠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평소 절에 다니는 어머니 덕으로, 불교쪽으로 성향이 가깝던 나는, 자대에 배속된 후, 주말마다 가는 종교활동을 불교로 가기로 예정을 잡아두고 있었다. 하지만, 상병이 막 꺾인 소대 내 선임이 나한테 이렇게 말을 걸었다.

"우리 막내, 이번 종교활동은 어디로 갈 거야?"

"이병 곽!X!X! 불교로 갈까 생각중입니다!"

"그래?  불교로 갈 거라고? 아. 천주교쪽으로 간다고 하면 부탁 하나 하려고 했는데 아쉽게 됐네 아쉽게 됐어...."

....이건 무언의 압박이다.

보통 내무반에서 꺾인 상병의 지위는, 일선에서 벗어나 평안을 누리고 싶어하는 말년병장들을 제외하면, 거의 절대자나 다름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게다가 말 뒷꼬리를 미묘하게 늘이는 걸로 보아하니, 이건 내가 거절하면 백프로 독박쓰는 제안일게 뻔하다. 내키지 않는 마음을 억누르고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사실 천주교쪽도 한번 가보고 싶었지 말입니다."

그러자 상병꺾인 선임은 보는 사람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한 리액션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음 XX이가 천주교에 가보고 싶다고? 하하하! 거 좋지. 근데 있지. 사실 내가 천주교 군종이거덩? 이번에 부식이 많이 내려오는데, 그걸 군종병들보고 다 운송해오라고 해서 말야. 근데 군종병은 4명밖에 없어서 일손이 많이 부족하거덩?"

라며 말을 잠시 끊더니 본론을 말한다.

"그래서 말인데, 너 아직 이병이라 피엑스도 못 가잖냐, 단거 많이 고프지? 이번에 부식 내리는 거 몰래 꿍쳐 줄 테니까 짐 내리는 거 좀 도와주라? 응? 게다가 불교는 웬간하면 가지 마. 거긴 부식으로 주는 게 녹차 한 캔 밖에 없거덩?"

은근슬쩍 나한테 일을 뒤집어씌우려는 수작이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나쁠 거 없는 거래였다. 이병의 입장에서는,  주말마다 날 갈굴거리를 찾는 고참의 눈을 의식하면서 생활관에서 주말을 보내는 것 보단, 그나마 터치하는 빈도가 낮은 야외에서 작업을 하면서 주말을 보내는 게 심리적으로는 편했고, 상기했던 것 처럼 선임과 동행하는 게 아니면, 이병은 피엑스도 못 가기 때문에, 사회에 있을 떄 단 걸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던 나는 만성 스트레스 중독에 시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선임을 단 거 먹고 싶다고 불러내기엔, 내 생활관 내의 입지는 매우 좁은지라....

"해볼께요. 하겠습니다. 할거예요"

이로써 나도 배교자 명단에 자랑스럽게 이름을 올렸다.

배반의 댓가인 은 삼십냥은 매우 달고도 달았다. 성당에 배속된 부식은, 초코하임, 쿠크다스, 지금은 멸종하고 없는 통크 등등등 내가 죽고 못 사는 과자들로 채워져 있었으며, 작업을 도와준 댓가로 나한테 돌아온 몫은, 군종들을 제외한 천주교 성당을 방문한 장병들 것보다는 월등하게 많았다. 나는 일병때까지 그 과자들을 아껴가면서, 상황을 봐가며 상황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뱃 속에 쑤셔박았다. 불침번을 선 후, 잠이 든 고참들을 깨우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화장실에서 똥을 싸면서 먹었던 달달하면서도 무언가 껄쩍지근한 과자맛은 제대한 지 일년이 지나간 지금에서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후에도 그 군종병 선임과 엮여서, 천주교 관련 일을 많이 도와주었다. 선임은 내가 일을 자주 도와주자 좋았는지, 군 내에서는 먹을 수 없었던 음식들을 자주 줬었다. 선임은 선임대로, 일손을 더니 좋고, 나는 나대로 피엑스 혼자서 갈 짬이 되는 일병을 찍고 나서도, 쥐꼬리 같던 월급에서 과자값을 쓸 일이 없으니 좋았다.

이후 지나가지 않을 것만 같던 세월이 흘러가면서, 나 또한 후임을 받게 된다.

내 맏후임은, 소극적인 쪽으로만 반항끼가 충만한 녀석이었다. 위에서 짠소리를 할 떄, 고개를 푹 숙이고 "시정하겠습니다." 만 반복해대길레 기저 고분고분한 녀석인줄로만 알았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수양록을 쓰는 걸 본의아니게 훔쳐 본 적이 있는데, 자신에게 짠 소리를 한 고참들의 욕을 줄창 적어대고 있었다.

나는 기겁을 했고, 녀석을 불러다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무리 쌓인 게 많아도, 그렇게 문서화된 푸념을 남기다간, 언젠간 불똥이 우리에게 튄다는 둥, 불만이 있으면 나한테 말 해라 절대 비밀로 할 테니 라는 둥, 녀석을 어르느라 가진 애를 다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소극적인 반항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녀석은 또한 종교에 관해선 알러지 반응을 보였다.예수의 예자만 들어도 정색을 했으니 말 다했지. 나랑 친하게 지냈었던 그 군종 선임도, 과거 내가 갓 배정받았을 때의 예의 그 제안을 그 녀석에게 했다가, 시큰둥한 반응만 얻어내었다. 군종 선임은 "저새끼 왜 저러냐?"라며 나한테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적도 있었다.

내 맏후임이랑, 소대 내 실세 고참과의 사이가 벌어져봐야 좋을 게 없으므로 나는 부족한 짱구를 굴려, 둘을 어떻게든 사이를 좋게 만들려고 애썼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같이 힘든 작업을 하면 전우애가 쌓이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결론이였고, 결국 반강제로 내 맞후임을 주말 천주교 관련 잡다한 작업에 데리고 다녔다. 물론 최대한 군종 선임이 보는 대에서 일을 시켰고. 군종 선임에게는 "얘가 일을 이리 열심히 해여." 라고 똥까시 아닌 똥까시를 해 주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내 맞후임의 주말 종교행사는 천주교로 굳어지게 되었고, 녀석은 겉보기에는 고분고분 잘 따랐다. 종교행사 중 조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으며(졸면 싫어하는 선임들이 많다. 하물며, 군종병을 소대 내 선임으로 두었으니 오죽하랴) 성경책을 읽고 있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이렇게 군종 선임과 내 맏후임과의 관계는 개선 되는 듯 보였으나. 어떤 사건을 통해 완전히 틀어지게 된다.


헤브라이 계열 유일신교(이슬람교 제외)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세례식이라는 게 뭔지 알 것이다.  평소 쓰는 이름과는 다른 이름을 붙여 주는 것으로, 특정한 성인의 이름을 붙여줌과 동시에, 그 성인의 수호를 기원함과 동시에 그 성인의 행적을 본받으라는 뜻으로 하는 의식이다. 하지만, 우리 자대 내 성당에서는, 그런 거 없었고,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이름을 세례명으로 지을 수 있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저 건너 중대의 성당 다니는 분대장의 세례명은 우솝이고, 그 후임은 루피,그 동기는 롤로로아 조로, 그 후임은 나미 뭐 이런 식이다.

우리 군종장교는 상당히 독실한 신도였지만, 직접적인 신성모독만 하지 않으면, 이런 일에는 관대했고, 이런 괴상한 이름을 세례명으로 낸 장병들이 영창을 가는 일은 없었다.. 허나..

정기적으로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세례식이 열리는 때가 있다. 대부분 신병들이 그 대상이 되며, 신병들은 나눠준 쪽지에 간단한 인적사항과, 자기가 받고 싶은 세례명을 적어서 내게 된다.

나랑 같이 성당에 다니는 내 맏후임도 예외는 아니라, 쪽지에 자기가 받고 싶은 세례명을 적어내게 되었다. 거기서 참극은 시작되었고 이후 나는 장난으로라도 세례명 뭘 적었냐 라고 물어보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된다.


군대의 세례식은 약식으로 진행된다. 성수(성유?)를 머리에 붓고 세례 대상자가 포도주에 담근 성체를 먹고, 군종장교가 세례 대상자가 적은 세례명을 호명해 주는 게 끝이다. 적당히 덜 불경스러운 선에서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적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대개 이때 성당 내는 웃음바다가 된다.

여러 사람의 세례가 끝나고 드디어 내 맏후임의 차례가 되었다. 나는 뒤에서 군종 선임과 같이 적당히 노가리를 까면서, 맏후임에 관한 관심을 완전 끄고 있었는데,  갑자기 군종장교의 흥분에 찬 외침 소리가 들렸고, 종이가 벅벅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원래는 이 상황에서 청중들의 단란한 웃음이 들려야 정상이거늘, 왜 갑자기 하늘을 꿰뚫을 듯한 기세의 노기가 이 성당을 채우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든 나는 성단 위를 쳐다보았다. 거기엔...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멸할 기세로 노한 대홍수때의 야훼를 보는 듯한 군종장교의 모습과

분위기를 못 읽고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이는 내 맞후임놈의 모습이 보였다.






군종장교는 마치 역귀를 질책하는 듯한 어조로 "이 불경한 자! 이 불경한 자!" 를 외치며 갈갈이 뛰었고,  군종선임은 성단에 뛰어 올라가, 맏후임을 한대 후려치려는 군종장교를 말리느라 사색이 다 되 있었다. 교회의 분위기는, 마치 힌두교의 팔 여러개 달린 악신들이 설치고 다니는 모양새가 되었고, 이 혼란와중에 세례식은 막을 내렸다.

이후 일이 정신없이 돌아가, 나도 분위기 파악이 안 돼는지라 상세한 기억은 없다. 다만 기억나는 거라고는, 맞후임이 헌병대에 끌려갔다는 거랑, 맞후임 교육 못 시켰다고 비난의 화살이 어김없이 나한테 돌아간 것, 세례명을 웃기게 쓴 여러 명이 단체로 시말서를 쓰게 되었다는 점 정도만이 기억에 남는다.

맞후임 교육을 잘 못시켰고, 또한 그 맞후임이 여러 명 독박을 씌었다는 이유로, 내 군생활은 엄청 힘들어졌다. 그때는 정말... 지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내 후임이 영창에 들어간 지 3일째가 되던 날,  군종선임이 나를 불러세우더니 담배를 피우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야... 시발. 그 새끼가 받고 싶은 세례명에 뭐라고 쓴 줄 아냐? 루시퍼라고 썼어! 루시퍼! 시발. 어쩐지 그새끼가 구약 이사야 14절을 뚫어져라 보고있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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